[대륙春秋] 후문여해(侯門如海)
[대륙春秋] 후문여해(侯門如海)
  • 팽철호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중어중문전공 교수
  • 승인 2017.12.05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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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한 사람은 만나기 어렵다

당(唐)나라 시대에 최교(崔郊)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총각 시절에 과거 준비를 하느라고 집을 떠나 고모댁에 얹혀살고 있었다. 그 고모댁에는 아리따운 젊은 하녀가 한 사람 있었는데, 최교는 운명처럼 그 하녀와 신분을 초월한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사랑의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지 고모댁의 가세가 갑자기 기울어서 집안에서 부리고 있던 하녀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으면 안 되는 형편이 됐던 것이다.

최교와 사랑을 속삭이던 하녀는 권세가의 집으로 팔려갔다. 예나 지금이나 재물이 많고 권세가 높은 사람의 집은 담도 높고 경비도 삼엄하다. 외부인들의 출입뿐만 아니라 집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내왕도 자유롭지 못했다. 최교와 하녀는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것은 고사하고 얼굴조차 볼 길이 없어 애간장을 태우게 됐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시내를 걷던 최교의 눈에 새 주인마님을 모시고 바깥나들이를 하고 있는 하녀가 눈에 띄었다. 최교는 단숨에 하녀에게로 달려갔다. 그리움에 사무쳐 있던 두 청춘 남녀는 남의 눈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를 끌어안고 재회의 기쁨에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만남의 시간은 길 수 없었다. 잠시 후 하녀는 주인마님을 따라 주인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최교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녀의 뒤를 쫓아가보지만 끝내 부질없는 짓이 되고 말았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도 헛되이 두 청춘 남녀는 또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하고 만 것이다. 이때 최교는 다음과 같은 시로써 그 쓰라린 마음을 표현했다.

公子王孫逐後塵(공자왕손축후진, 양갓집 자제는 수레가 남긴 먼지를 쫓아가고)
綠珠垂淚滴羅巾(녹주수루적라건, 아리따운 처녀는 눈물이 흘러 비단 수건을 적시네)
侯門一入深似海(후문일입심사해, 귀족 집안은 한 번 들어가면 바다처럼 깊어서)
從此蕭朗是路人(종차소랑시로인, 그로부터 낭군은 길가는 남처럼 됐네)

‘公子王孫(공자왕손)’은 말 그대로로는 ‘공작(公爵)의 아들과 왕의 손자’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작자인 최교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서 ‘양갓집 자제’ 정도로 해석하면 좋겠다. ‘뒤 먼지를 좇아가다’라는 뜻의 ‘逐後塵(축후진)’은 ‘수레가 떠나면서 남겨 놓은 먼지를 좇아가는’ 상황을 묘사한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승용차나 기차를 타고 떠날 때 그게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뒤를 좇아 뛰는 영화나 TV드라마의 한 장면과도 같은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동작에는 별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綠珠(녹주)’는 본래 진(晋)나라 시대의 거부 석숭(石崇)의 애첩 이름인데, 여기서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의 대명사로 쓰였다. ‘侯門(후문)’은 ‘후작(侯爵)의 집 대문’ 또는 ‘후작(侯爵)의 집안’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그냥 ‘권세가의 집’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

‘蕭朗(소랑)’은 양(梁)나라 무제(武帝) 소연(蕭衍)을 일컫는 말이다. 소연은 준수한 외모에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다고 하는데, 황제가 되기 전 젊은 시절에 관상가에게서 ‘장차 말할 수 없이 귀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그 후로 소연은 잘생기고 재능 있고 전도유망한 젊은이의 대명사가 됐다. 여기서는 작자인 최교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路人(노인)’은 ‘길가는 사람’ 즉 ‘서로가 아무런 상관없는 남남’이라는 뜻이다.

애끓는 사랑을 노래한 이 시는 금세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급기야 새 주인에게까지 알려지게 됐다. 시를 읽은 새 주인은 최교와 하녀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감동했다. 그래서 ‘이런 사랑을 갈라놓은 것은 인지상정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 하녀를 최교에게 보내주었다. 그렇게 하여 최교와 하녀의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은 결실을 맺게 됐고, 그들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는 이 시와 함께 수백 년을 이어 전해지고 있다

‘후문여해(侯門如海)’란 성어는 이러한 애틋한 이야기를 배경으로 지어진 시 <贈婢>에서 나온 것을 알 수 있다. 문자 그대로 ‘귀족의 집안은 바다처럼 깊다’라는 말이다. 깊은 바다는 자유로운 통행을 가로막은 장애물이므로 앞서 이야기했듯이 ‘재물이 많고 권세가 높은 사람의 집은 드나들기 힘들다’는 말이 된다.

이 성어는 이처럼 신분이 높은 사람은 쉽게 만날 수 없다는 객관적 상황을 나타내는 말이기는 하지만, 실제 사용에 있어서는 약간 비꼬는 듯한 어감을 담기 쉽다. 어릴 적 한 동네에서 허물없이 지내다가 그 중 하나가 출세를 하여 지위가 높아지면 당연히 옛날처럼 쉽게 만날 수 없는 처지가 된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만나야 될 사람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아지기 때문에 우정이 변하지 않았다고 해도 한 친구에게 할애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은 적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출세한 친구의 그런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쉽게 만날 수 없게 된 친구를 두고 ‘후문여해’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출세하더니 사람이 거만해졌다’라는 비꼬는 의미가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문맥에 따라서는 신분이 달라진 친구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말로도 쓰일 수가 있겠다.

팽철호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중어중문전공 교수
팽철호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중어중문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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