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기고] 서안 화산에 오르는 것은 미친 짓이다
[해외 기고] 서안 화산에 오르는 것은 미친 짓이다
  • 현은순 북경한국국제학교병설유치원 원감
  • 승인 2017.12.0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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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듯 화산을 다녀왔다. 밤이라서 오를 수 있었다. 밤에 산에 오른다는 것은 어두운 기운에 홀린 채 걷는다는 것이다.

흔히 드라마에서 그러하듯 높은 산에 몽롱한 안개가 자욱했다. 사진에서 본 천 길 낭떠러지는 보이지 않았다. 바람소리만이 그 깊이를 짐작하게 했다. 참으로 다행이다. 어둠 속이라서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앞 사람의 발끝을 따라 바닥만 보고 걸었다. 어느 순간 엇박이 거친 숨소리에 발장단을 맞추며 걷고 있었다.

새벽 한 시 반. 끝이 어디쯤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았다. 순간! 허공 속에 점점이 이어진 가느다란 불빛이 보였다. 누군가 산의 능선을 따라 줄 연을 날리고 있는 것 같았다.

불빛은 대략 70도 경사로 뻗은 채 저 높은 곳을 향해 이어지고 있었다.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 끝이 어디일지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이건 꿈이야. 설마 저게 우리가 오를 산이라는 걸까? 그랬다.

믿고 싶지도 않고 믿을 수도 없는 까마득한 길은 고개를 뒤로 90도 정도 젖혀야 비로소 어슴푸레 보이는 불빛이 끝자락을 볼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러한 길은 2090미터 동봉 정상까지 이어져 있었다.

서안에 가면 절대 화산만큼은 오르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제정신으로는 화산에 오를 수 없다. 암만. 오를 수 없지.

새벽 여명을 보고자하는 탐욕에 빠진 무리들이 떼를 지어 허겁지겁 밤길을 걷고 있었다. 수백 명의 무리들은 집단으로 밤기운에 취해 있었다. 종종 어둠은 사람의 정신을 무더기로 앗아갈 때가 있지.

밤이라는 그림자는 사람의 시야를 지극히 좁게 만든다. 어둠이 짙을수록 발아래의 일만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밤기운을 틈타 서안의 화산 등반을 용맹하게 마쳤다. 미친 짓이었다.

밤 11시부터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안개 덩어리들이 어둠 속을 황망히 떠돌고 있었다. 간간히 가랑비가 내려앉은 화강암 계단은 가로등 불빛에 더욱 번들거렸다. 두 갈래의 오르막 계단 앞에서 스스로 담력을 시험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90도 경사로 보이는 계단 쪽으로는 차마 발을 내디딜 수 없어 조금은 더 낮아 보이는 쪽으로 줄을 섰다. 이 계단은 경사로가 70도 정도 된다고 했다. 암벽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나는 서서히 미처 가기 시작했다. 입술을 야무지게 다물고 10계단씩 세면서 스스로를 격려하며 오르고 또 올랐다. 내리막길은 전혀 없었다.

수백 계단을 세다 잊어버리기도 하고 337계단이 끝날 때까지 세어보기도 했다. 계단이라도 세지 않으면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다가 날밤을 세었을 것이다. 70도의 경사로가 끝나면 두 번 다시는 이런 공포의 계단이 없겠지 수없이 위로했다. 위로와 기도는 정상 갈 때까지 멈출 수 없었다.

계단의 폭은 내 발의 3분의 2정도였다. 그러니까 12에서 14센티미터 정도이다. 군데군데 그 반쪽만큼의 것들도 있었다. 커다란 화강암 바위 덩어리를 층층이 깎아 만들었다고 한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양 옆에는 쇠로 만든 고리를 벽에 박아 놓았다. 철렁철렁 거리는 이 고리를 잡지 않으면 올라가지 힘들다. 이런 계단 앞에 설 때마다 산 입구 가게에 무더기로 진열된 검정, 파랑, 무명 장갑들이 떠올랐다.

직각에서 약간 기울어진 수직경사로의 좁은 계단을 두 발로 꼿꼿이 서서 걸을 수는 없다. 누구나 진화된 직립보행의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네발로 기어가야 한다. 이런 경사로를 오르고 있다는 건 이산이 얼마나 가파른지를 말해주고 있다. 여명이 시작될 무렵 혹이라도 새벽별이 화산의 날카로운 암벽능선을 비췄더라면 난 그 자리에서 굳은 채 바위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환한 대낮에 이 산을 오른다는 것은 더더욱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꿈꾸듯 밤사이로 해발 387미터부터 시작된 대화산을 동봉 2066미터 일출전망대까지 다녀왔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부산을 떨며 북경서역에서 6시 58분 기차를 타고 6시간 달려 서안 북역에서 내렸다. 밤 11시부터 등반하기 시작하여 이튿날 새벽 6시에 동봉정상 일출전망대에 도착했다. 힘든 걸음이었던 만큼 ‘혹시나’ 하는 마음도 간절했다. 끝내 산신이 허락하지 않았다.

키 작은 나는 수백 명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배꼽이 숨만 쉬다 하산하고 말았다. 7시 40분 서봉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는 길은 구름으로 연출된 한 폭의 산수화 무릉도원 풍경 같았다.

옛 도시 서안의 시내를 잠시 구경하다 저녁 5시 20분 기차를 타고 북경에 있는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조금 넘었다. 무박 2일 46시간이 긴 여행이었다. 살점이 몇 군데 떨어져 나갔다. 어둠의 그림자가 눈 아래로 반호를 그렸다. 그래도 뿌듯했다. 행복했다. 3999계단을 오르려 화산을 다녀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밤에 화산을 오르는 건 미친 짓이었다.

필자소개
북경한국국제학교병설유치원 원감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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