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코리안 문단] 아들의 눈물
[월드코리안 문단] 아들의 눈물
  • 이복희 수필가
  • 승인 2017.12.23 05: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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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희 수필가
이복희 수필가

강아지를 포대에 넣어 생매장한 사건이 TV에 보도되고 있다. 아침을 먹다가 아들이 수저를 놓고 TV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비정한 이야기에 분개하며 어떻게 저럴 수가 있냐며 반려동물의 대변인이라도 되는 양 흥분한다. 반려동물을 키울 자격조차도 없는 사람들이라며 눈에 쌍심지를 켠다. TV를 쏘아보던 아들이 어느새 새콤이가 있는 베란다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새콤이는 아들이 애지중지 키우는 애완용 고슴도치다. 분양되어 온 지 올해로 6년째다. 고슴도치의 평균수명이 6~8년 정도라니 사람의 나이로 치자면 여든에 가까운 고령이다. 녀석은 세 번의 출산으로 우리 가족에게 기쁨을 주었고, 죽을 고비를 넘길 때마다 아들의 지극정성으로 다시 깨어나기도 했다.

이번에는 상태가 예사롭지 않다. 녀석의 목 언저리에 혹 같은 것이 생겼다. 먹이도 잘 먹고 행동도 재바르기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며칠 사이에 혹이 불룩하게 튀어나왔다. 인터넷을 검색하던 아들이 고슴도치에게 생기는 종양이라며 큰일이라도 난 듯 휴대폰을 코앞까지 들이밀었다. 병명을 알고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새콤이를 살피던 아들이 심각한 상태라며 병원에 가야한다고 다그쳤다. 내가 아플 때는 별로 신경 쓰지 않던 녀석이 고슴도치에게 온 정성을 쏟으니 은근히 심통이 났다.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동물병원을 찾았다. 내 마음 같아서는 그냥 저러다 죽으면 잘 묻어주면 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들이 동물을 키우고 아끼는 마음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남달랐다. 하물며 장래 희망이 수의사가 아니던가. 새콤이를 주의 깊게 살핀 의사는 아들의 말대로 종양이라고 했다. 수술을 한다고 해도 살 가능성이 희박하단다. 아들의 긴 한숨소리가 진찰실의 분위기를 침울하게 만들었다.

고슴도치용 마취제가 따로 없기에 개나 고양이용의 마취약을 소량 투입해야 하는데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종양이 워낙 커서 다른 장기로 전이됐을 수도 있다. 종양을 제거한대도 목을 다 덮을 만큼 이식할 표피도 없다. 얼키설키 꿰매 놓았다가 감염되어 피부가 괴사할 수도 있다. 사람으로 치자면 칠팔십 노인인데 수술을 하다가 잘못될 가능성도 높으니, 자연사를 할 때까지 잘 돌보아 주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최종적으로 수술이 잘되었다고 하더라도 2차, 3차 피부 수술도 들어가야 하고 비용도 만만찮다는 것이다.

의사 선생님이 양심적으로 잘 진료해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들의 얼굴은 점점 굳어만 갔다. 어느 시점에 왔으면 살릴 수 있겠나, 지금 새콤이가 어느 정도의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 통증을 줄여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더 나빠지면 어떤 증세가 나타나는지, 등등 아들의 질문은 의사가 귀찮아하지 않을까 염려될 만큼 이어졌다. 안락사를 생각해 봤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병원 문을 나서는 아들은 더위 먹은 해바라기처럼 어깨가 축 처졌다. 차 밖은 무더위로 열기가 들끓는데 차 속에는 서늘한 정적이 흘렀다. 아들의 품에 안긴 새콤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쥐며느리처럼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잔뜩 가시를 세우고 있다. 평소에도 경계가 심한 녀석인데 낯선 병원을 데리고 갔으니 오죽했을까. 아들과 새콤이는 교감을 나누듯 서로 마주하고 있었다. 연인과 이별이라도 하는 양 애틋했다. 새콤이를 한참 내려다보던 아들이 눈가를 슬쩍 훔쳤다. 쑥스러워할 거 같아 모르는 척했다. 아들의 따뜻한 마음에 왠지 가슴 한쪽이 짠했다.

내게도 강아지 때문에 눈물을 흘렀던 어린 기억이 있다. 언니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어른 손바닥보다 더 작은 녀석은 땅강아지 같았다. 흰털에 검정 점박이인 녀석을 ‘땅콩’이라 이름 지었다. 겨우 젖을 뗀 녀석은 안고 있으면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저를 좋아하는 것을 아는지 녀석도 내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땅콩아!’ 하고 부르면 쪼르르 달려와서 조그만 꼬리를 냅다 흔들어댔다.

그러던 녀석이 체했는지 전날 저녁부터 밥을 먹지 않았다. 아침에는 맥없이 축 늘어져 애처롭게 누워있다. 학교를 다녀오면서 땅콩을 불렀는데 달려오지 않았다. 녀석이 세상을 달리 한 것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아예 대놓고 펑펑 울었다. 제대로 보살펴 주지 않아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자책과 하루아침에 떠난 땅콩의 빈자리가 너무 허전하고 서러웠다. 그 후로 땅콩만큼 예쁘고 사랑스런 강아지는 보지 못했거니와 내 품에 제대로 안겨본 강아지는 없다.

앞으로 새콤이가 우리 집에 머물 날이 얼마나 될까. 세 마리의 고슴도치 중에 새콤이를 끔찍하게도 아끼는 아들의 정성은 갸륵하다. 추우면 드라이기로 따뜻한 바람을 쐬어주고, 더우면 얼음주머니에 대리석까지 제 용돈으로 구입해서 깔아줬다. 아들의 보살핌으로 새콤이가 오래오래 살다가 고통 없이 자연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편은 녀석들을 금오산에 가서 다 풀어주라고 엄포를 놓는다. 산과 들에 애완용으로 키우던 햄스터, 청거북이, 하물며 금붕어까지도 저수지에 풀어 놓는 경우를 봤다. 자연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거니와, 주는 먹이만 먹던 녀석들이 살아 갈 수 있을까. 한때는 인간의 사랑과 관심을 받던 유기견이나 고양이들이 거리를 떠돌고 있다. 그 고양이를 돌봐주고 집을 지어주는 사람에게 벽돌을 던져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세상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SNS로 인해 인간관계의 폭은 넓어졌으나 깊이는 얕아졌다. 각박한 현실에 면대면의 인간적인 만남은 날로 줄어들고, 그 만남 자체도 자기중심적이다 보니 친밀감도 예전 같지 않다. 그 외로움을 동물을 통해서라도 달래보고자 반려동물을 들이지만, 처음 들일 때의 마음이 키우다 보면 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반려동물은 필요할 때만 찾는 물건이 아니라, 선택한 이상 끝까지 돌보아주는 책임감도 따라야하지 않을까.

버려지는 것이 동물뿐이겠는가. 부모도 자식도 매정하게 버려지는 세상으로 변했다. 고슴도치 때문에 눈물을 훔친 아들의 따뜻한 마음, 그 마음의 샘이 마르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사랑이라는 엄마표 밥상을 차린다.

필자소개
2010년 문학시대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수필가협회, 금오산문학회, 형상시문학회, 구미낭송가협회, 구미사진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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