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이웃의 아름다운 전등불빛
[Essay Garden] 이웃의 아름다운 전등불빛
  • 최미자 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7.12.2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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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동네를 걷는다. 글로 쓴 편지를 부치려고 우체국까지 서서히 산책을 나선다. 요즈음은 해도 일찍 서산으로 저무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사색하기에 더욱 좋다. 집집마다 이웃들이 꾸며 놓은 크리스마스 장식등들이 이채롭다.

고드름처럼 생긴 것도 있고 가지가지 색깔의 별빛 모양으로 크고 작은 아름다운 전등불들이 정원의 작은 나무부터 집 앞 큰 나무까지 호사스러운 옷을 입고 있다. 어느 집은 가장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높은 지붕의 가장자리 둘레 선을 따라 전등으로 재주도 부려 놓았다.

집집마다 앞 정원의 등불도 장관이다. 썰매를 끌고 가는 루돌프 사슴이며. 아이들이 좋아 하는 가지가지 커다란 인형 동물들이 서 있기도 하고 어느 집은 쌍 오리 부부 전등이 웃고 있다. 지붕위에서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인자한 얼굴의 산타 할아버지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웃집들의 응접실 창문 안에 켜놓은 크리스마스 트리의 고운 등불의 반짝거림을 통해 아름다운 미국을 본다.

집 앞 정원에 꾸며진 아기 예수의 탄생 모습과 커다란 탑을 세워 놓은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나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높아지는 전기 사용료도 아랑곳하지 않고 12월의 아름다운 축제를 위해 마음이 넉넉한 나의 이웃들이다. 나는 게을러 전등불 장식엔 참여하지 못하지만, 그들처럼 세상을 밝히는 새해가 찾아오기를 기원하면서 예쁜 은방울과 빨강 리본으로 현관문을 장식해 본다.

가지가지 장식전등을 보면서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손길을 거쳐 만들어진 산업 현장의 장인들의 손길도 생각해본다. 그 창작 예술품들은 상가의 진열대를 통해 뽑혀와 집주인의 가지가지 창의적인 솜씨로 또 다른 예술적인 꽃으로 피어나 이렇게 밤마다 별빛처럼 뿜어내고 있다. 이 아름다운 풍습은 11월부터 시작하여 새해를 맞이하는 1월까지 진행된다.

또 동네를 걸으면서 해마다 겨울을 장식하는 이웃들은 누구인지 궁금한데, 만나보면 반드시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손자와 손녀 아이들이 찾아오는 집, 친구와 친척들이 모여 파티를 여는 집, 나이든 어른들이건만 그냥 어릴 적 추억으로 즐기는 연례행사로 하는 집들이다. 아이들 데리고 혼자 사는 중년의 여인이 사다리를 놓고 나무에 올라가 전선을 칭칭 감고 있는 강인한 모습을 보며 난 놀랍고도 겸허한 인생을 배운다.

유난히도 화려한 한 이웃의 정원 앞에 서서 사진을 찍는데 마침 집주인이 현관문을 열고 나온다. 수년 만에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친절하게 자동차를 현관도로에서 빼주며 나에게 사진을 잘 찍으라고 도와주었다.

그의 금년 나이가 87세여서 지붕에는 못 올라갔지만, 50세 먹은 장애자 딸을 데리고 아내랑 꾸몄노라고 활짝 웃었다. 34년 초등학교 교사를 은퇴한 후로도 그는 실험실의 혈액을 운송하는 일을 하고 있는 이웃이다. 비록 걸음걸이가 오리처럼 뒤뚱거리지만 테니스를 여태 친다면서 나에게 그의 건강을 자랑했다.

이웃집 밥 선생님.
이웃집 밥 선생님.

더욱 나를 감동시키는 말은 핏덩이 두 딸을 입양하여 길러 하나는 애 낳고 잘사는데 다른 아이는 이렇게 우리하고 함께 늙고 정신장애자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까마는 그의 삶을 솔직하게 들려주는 미국사람에 나는 놀라면서 또한 생각한다.

세상에는 그처럼 부지런하고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기에 이 지구가 아직도 존재할 것이라고. 그렇지만 봡(Bob) 선생님은 이제 나이 탓인지 다음 달에 크리스마스 장식등을 다시 철거하는 일이 좀 힘들다고 털어 놓는다. 그날을 알려주시면 나도 와서 돕겠다고 말했다.

올겨울은 얼마 전 샌디에고 북쪽 라이락 동네와 로스엔젤러스의 부촌 벨에어가 무서운 바람 속 불길로 사라져버리는 아픔을 보았기에 희생자들의 쓸쓸한 겨울을 생각게 한다. 또한 세계가 여전히 불경기이다. 나도 크고 작은 사고를 종종 치면서 한해가 그만그만 지나가는 가 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여러 사람의 은혜를 입고 살아감에 감사한다. 나를 키워 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영혼을 향해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고 허망한 욕심을 탐하지 않으며 사람답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집집마다 고운 장식의 전등불이 세상의 희망의 불빛이 되어주기를 기원하면서 어느 사이 나는 우리 집 문 앞에 서있다.

(월드코리안 신문의 여러 직원 분들과 제 칼럼 글을 애독해주시는 여러분의 가정에 만복이 깃드시기를!)

필자소개
미국 샌디에고 30년 거주 수필가
저서 세번째 수필집 '날아라 부겐빌리아 꽃잎아'

최미자 미주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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