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학기행] 실수 유발자, 궁정에 가다
[러시아 문학기행] 실수 유발자, 궁정에 가다
  • 김숙자 한국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8.01.0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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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하늘은 어디에서도 보기 드물게 맑고 짙은 파란색의 하늘아래 솜사탕 같은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첫날 코스였던 이즈마일로보 공원에서는 마치 내가 하늘과 맞닿아 있는 듯 손을 뻗어 구름을 움켜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러시아에서는 산을 보기가 힘들다. 드넓은 들판에 집들이 드문드문 한두 채씩 하늘과 구름과 서로 소통이라도 하듯 서 있을 뿐이다. 여기저기 무심하게 흩어져 마치 자연의 일부가 되어있는 일행들의 편안한 모습을 동영상에 담기도 했다.

공원 옆 풍물시장에서 나의 실수만 아니었다면 그날 그 곳의 풍경은 나의 이미지 저장고에 강렬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의 일정이었던 모스크바 붉은광장에 대한 내 생각의 틀은 크레믈린(그렇게 불렀다)과 함께 피를 연상케 하는 긴장감을 감출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 인식의 무게를 깨어버리게 했던 것은 그 광장 한쪽에 자리한 ‘바실리 대성당’이었다. 바실리대성당은 새파아란 하늘밑에 눈부신 색채로 러시아의 자존심을 내세우 듯 우뚝 솟아있다. 지붕 꼭대기에 양파모양의 8개의 돔이 하늘에 닿을 기세로 권위를 한껏 내세우면서... 그리고 그 옆에 크렘린궁과 연결되어 길게 자리 잡고 있는 다른 건축물들 또한 역사적 대조를 이루고 있다.

붉은광장은 주변을 돌면서 중세, 근현대사의 역사를 느낄 수 있게, 중앙 한복판에 눈을 감고 서면 그동안 익히 알고 있던 톨스토이, 도스트옙스키, 차이콥스키, 고골, 체호프, 그리고 ‘닥터지바고’를 쓴 보리스 파스체르나크 등이 떠오를 것만 같다. 국립역사박물관과 또 한쪽엔 상충돼 보이지만 화려하게 지어진 러시아의 최신식 굼백화점도 있다. 그런 다양성으로 러시아는 촌스럽지 않게 화려한 색채를 그들의 상징성으로 삼아 의미를 부여했다.

정치 문화 상업 역사의 중심지로써 정(正)과 반(反)의 합일(合一)의 이념을 내포한 레닌의 묘가 광장 중심에서 그들의 역사적 패러다임의 변화과정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들은 아직도 레닌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그러한 주변의 건축물을 끼고 그림처럼 서 있는 바실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라고 한다.

러시아를 가보기 전의 그들에 대한 인식은, 축구장에서나 빙판위의 선수들 복장에 초점을 맞춰 흰색의 무채색을 떠올리게 한 것과 반대로 다양한 색채의 자태를 하늘을 향해 발산하면서 한 폭의 그림처럼 멀리서도 그대로 화려함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쉬운 것은 화려함의 진수인 그곳의 야경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첫 날 코스였던 이즈마일로 풍물시장에서는 그러한 상징의 의미를 담은 풍물들이 가는 곳마다 온 상점에 호화롭게 걸려 있었다. 나의 눈과 정신은 내 선택을 기다리는 엔틱(antique) 물건을 찾아 그 속에 풍덩 빠져 들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가 유리공예 상점엘 들어서니 점원이 한국말을 더듬더듬 하면서 나를 반겼다.

그는 한 때 일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살았단다. 그는 영어와 한국말을 섞어서 열심히 단어를 나열하였다. 자신이 ‘대우 컴퍼니에서 일 년 동안 근무를 했었다’고 하는 그의 말을 이해하고 나서는 너무나 반가워서 깎지도 않고 덥석 공예품을 샀다. 앤티크 마니아인 나는 정신을 빼놓고 호젓하게 돌아다니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을 넘기고 말았다.

“아휴, 큰일 났다! 이놈의 호기심, 나는 실수 유발자야!” 중얼거리면서 러시아 이즈마일로보 풍물시장의 바람을 가르며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뛰고 있던 길은 오던 길과 달리 너무나 낯설었다. 그리고 아주 한적했다. 마치 나를 버리고 떠나버린 누군가의 발자취만 남겨져 있는 텅 빈 거리 같았다.

마침내 일행을 발견하고 안심을 했다. 뛰던 다리를 멈추고 여유롭게 주변까지 두리번거리는데 룸메이트가 나에게 웃음 띤 얼굴로 손짓을 했다. 나는 별거 아니었구나 하고 마음을 놓고 여유를 부렸다. 그것은 아마도 애를 끓였던 일행들에게는, 일행을 이끌고 있는 리더나 가이드에게는 미움을 살 일이었다. 생각만 해도 미안함이 밀려온다.

러시아를 갔다 오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이 궁전이다. ‘겨울궁전’은 상트페테르부르크시내에 있다. 현재는 에르미따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예카테리나 2세(표트르대제의 딸)가 서구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226점의 회화작품을 들여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약 300만점의 진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세기를 대표하는 미켈란젤로, 다빈치, 르느아르... 심지어 피카소그림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는 한국말을 너무나 잘하는 젊고 예쁘고 똑똑한 오리지널 러시아가이드(본인 말)가 이끄는 대로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천정 높은 방마다 전시되어 있는 미술품들을 가슴에 새길 겨를도 없이 바쁘게 슬쩍슬쩍 보면서 지나쳤다. 그만큼 너무나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어 렘브란트의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는 방에 들어섰다. 나는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그 진품의 그림 앞에서 ‘스탕달의 신드롬’ 까지는 아니지만 가슴 속에서 왠지 모를 울컥하는 놀라움을 느꼈다. 아마도 그림의 테마인 아버지의 따뜻한 부성애를 렘브란트의 숨결로 직접 느끼면서 가슴 속에서 뜨거움의 전율이 나의 감정선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여행은 그 잠시의 새로운 순간에 느끼는 전율 때문에 또다시 길을 나서나 보다.

지난 번 갔을 때는 성수기여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 작품 앞에는 서보지도 못하고 사람에 치여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바로 앞에 서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는 감동이 두 배로 이어졌다.

표트르대제에 의해서 건설된 ‘여름궁전’에서는 먼저 고위직들과 화려한 여인들이 즐기던 파티장부터 시작해, 그들이 먹고 즐기며 사용했던 그릇과 도자기 가구 등이 전시되어 있는 식당 등을 둘러보았다. BBC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전쟁과평화의 배경을 이곳에서 보았다.

하지만 궁전 내부 보다는 밖에 7개의 공원풍경이 더 볼만하다. 궁정 앞에 서면 그림처럼 내려다보이는 140개의 분수대가 황금색의 조각상들을 끼고 화려하게 물을 뿜어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저쪽 멀리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잔잔한 핀란드만 해안가에 운하를 끼고 근접해 있다. 마치 한 폭의 풍경화 같은 그림을 내 정서의 일부분으로 확고하게 담게 해주었다.

아쉬움이 있었다면 러시아도 자본주의 물결이 점점 더해지고 있는 듯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진다. 분수대 물줄기는 하루 종일 뿜어 올리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었던 상황과 달라져 있었다. 역사와 전통을 유지하고 그대로 두었어야 그 가치를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었을 텐데, 권위의 상징만이 아닌 그들의 지혜로움과 당시의 기술력에 감동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곳의 특화된 상징성은 사라지고 없었다.

5년 전에는 아날로그식 분수 쇼를 보기 위해서 시간에 맞춰 여름궁전에 도착했다. 잔잔하게 일부만 귀엽게 춤추는 분수대의 물줄기가 더 높이 하늘로 뿜어 오를 것을 상상하면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잘 보이면서 좋은 자리를 잡느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클래식 음악과 함께 140개의 분수대에서 순서대로 쉴 새 없이 물줄기가 하늘을 향해 뿜어지는 것을 보면서 모두가 탄성을 질러댔다. 그랬던 여름궁전은 현대의 기술력을 가미시켜 하루 종일 일률적으로 분수는 가동되고 있었다. 여기에도 아날로그는 사라져 버렸다.

전 날 밤부터 다음날까지 물을 받아 모아 두었다가 한 시간에 한 번씩 1분 30초 동안만 음악과 함께 하늘로 물을 뿜어 올릴 때의 그 장관, 기다림은 그 역사적 가치에 희소성의 시너지 역할이 더 해져 보는 이들의 감동은 열 배였던 것 같았다.

여름궁전에서 겪었던 5년 전 악몽이 떠오른다. 가는 곳마다 일정의 끝은 학교를 들러야 하는 것이다. 학교는 화장실이다. 가이드의 생각이 여행객들한테 가장 중요한 부분이 생리작용이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필수적으로 들러야 하고, 수시로 언급해야하는 말을 기왕이면 듣기 좋은 단어로 바꾸었다고 했다.

그때는 학교에 갔다가 일행을 놓치고 말았다. 나는 한 번 화장실 안에 들어가면 남들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치료했지만 그렇게 남한테 피해를 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들어갈 때는 일행들이 줄을 서서 시끌벅적했었는데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살짝 불안감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와 보니 허리사이즈가 40인지 이상 되어 보이는 요금 받는 뚱뚱한 러시아 아주머니만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성격상 극한의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기 전까지는 느긋한 면이 있는 나였다. 설마 밖에서 그렇게 헤매고 다닐 거라고는 감히 생각을 못하고... 나를 발견한 일행이 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왜 이렇게 늦었냐고 타박하듯 나를 반겼다. 당시에는 가이드가 항상 있는 일이려니 하면서 나의 도착 소식이 전해지자 곧바로 아무 말 없이 버스를 출발시키는 노련함을 보였다. 세 번째 러시아 여행을 간다면 혼자 방랑하듯 천천히 위대한 문호들에 인사하면서 걷고 싶다.

필자소개
한국산문(2009년) 등단, 영어영문학 전공, 한국산문 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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