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산책] 하늘을 날다
[달팽이 산책] 하늘을 날다
  • 현은순 북경한국국제학교병설유치원 원감
  • 승인 2018.01.1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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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북경의 하늘이 맑았다. 가을날 같은 파란 하늘이 밖을 나서게 했다. 읽고 있던 안지위의 ‘모던 북경’에 나오는 798예술의 거리를 가보기로 했다. 책을 읽다가 책 속의 장소를 찾아가 볼 수 있다는 것은 독서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그곳이 가까이에 있다면 네잎클로버 같은 행운이다.

책과 노트, 생강가루를 넣은 따뜻한 레몬차 그리고 작은 스케치북을 챙겼다. 걷다가 쉬고 싶으면 커피숍 앞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면 끄적거리고 싶었다. 버스정류소 부근의 뚜레쥬르에서 브런치로 요플렛과 샌드위치를 먹었다. 찬 음식이 들어가니 기침이 나왔다. 몸은 덥게 느껴지는데 속은 차다. 건강의 핵심은 온도조절이라고 하는데 겉과 속의 기온조절을 하지 못해 석 달째 기침을 하고 있다. 기침 때문에 일상을 침몰 당하기에는 북경 하늘이 너무 예뻤다.

798예술의 거리로 가는 593번 버스를 탔다. 혼자서 몇 번 다녔더니 익숙한 길이 되어가고 있다. 버스에서 내려 동네 골목길 걷듯 구석구석 걸어 다녔다. 코와 귀가 얼굴에 딱 엉겨 붙어 피가 굳어 응축되는 겨울날이다. 5살 아이들에게 오늘의 날씨를 물으면 ‘바람이 해님을 이기려고 막 힘내다 얼굴이 빨개진 날’이라고 할 것 같다.

798예술의 거리 미술관에서 빨간 얼굴을 한 아이들을 만났다. 빨간 말을 탄 아이, 철봉 하는 아이, 골프채를 든 아이, 역도하는 활을 당기는 아이 등등 각기 다른 운동기구를 들고 있는 아이들 얼굴이 빨갛다. 용을 쓰다 붉은 피가 얼굴에 잔뜩 몰려있다. 눈과 볼은 하얗게 반질거리고 있다. 눈두덩이 오랜 시간 눈물을 참아내며 쌓아올린 소금덩이 되어 짠 기운이 더욱 빛나고 있다.

땀이 배어들어갈수록 볼의 고도는 높아지고 종아리와 발바닥은 딴딴해지며 반질거린다. 그림 속 아이들이 얼굴이 빨개지도록 날마다 전쟁을 위한 훈련을 하고 있다. 애잔한 아픔이 깃든 빨강이다.

潘德海의 ‘大战’(2008)
潘德海의 ‘大战’(2008)

이 그림은 중국 화가 潘德海의 ‘大战’(2008)이다. 사실 그림 속의 빨간 얼굴들은 어린아이들이 아니다. 동화적 표현 기법으로 인해 아이들로 보이게 했을 뿐이다. 아이들 뒤로 북경올림픽 주경기장이 보인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새둥지를 닮았다하여 ‘니아오챠오(鸟草)’라고 불리는 국가체육장(国家体育场)이다. 이곳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날마다 제 몸을 빨간 핏빛으로 물들이며 승리를 꿈꿀 것이다. 눈앞의 경쟁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또 새로운 경쟁...경쟁...내가 지쳐 쓰러지거나 그가 죽거나.

남과 경쟁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을까?

경쟁은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끼리 서로 이기거나 앞서려고 다툼을 벌일 때 일어난다. 생물도 먹이나 살아갈 공간에 비해 개체수가 많은 제한된 환경에서 살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아 생활력이 저하되거나 스스로 멸종해 버린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와 경쟁하고 자멸하는 그런 삶이 아니라 행복해지는 삶을 누리길 원한다. 남과 경쟁하기보다 자신의 행복하다고 생각한 길을 향해 기꺼이 달려간 사람은 위대하다. 그러한 새가 있다. 라몬진의 ‘타타타타타타타…타조!’가 그렇다. 타조는 매혹적일만큼 푸른 하늘이 그를 유혹하던 날 한 가지 꿈을 꾸었다.

‘저 하늘로 날아갈 수 있다면…’

타조가 날지 못하는 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정말 하늘로 날아간 타조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타조가 하늘을 날고 싶다는 욕망을 품은 날부터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한 도전은 시작되었다. 타조의 몸은 붉은 색이다. 푸른 하늘과 대조를 이루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 곳에 집중하여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1퍼센트의 재능을 99퍼센트의 노력과 결합시켜 기적을 일구어 낼 수 있다고 한다.

‘난 정말 저 하늘로 날아가 보고 싶어!’

사자가 봄볕 아래 길게 누워 있을 때부터 타조는 날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다. 고개는 앞을 향해 똑바로 세우고 낮이든 밤이든 날마다 자기가 선택한 길을 달렸다.

비가 내려도, 눈이 내려도, 바다를 건너 도시 한복판을 지나 어디든 자꾸자꾸 달리고 달립니다. 타조의 꿈을 알아주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타인의 시선에 주눅들 이유는 없었다. 의심을 품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타조는 아주 빠르게, 누구보다도 빠르게, 더욱 더 빨리 달렸다.

‘다다다다다다다다… 타악!

바람을 일으키며 날아오르기 위한 마지막 도약의 순간!

타조의 목은 하늘을 향해 사선으로 곧게 세우고 다리는 수평으로 길게 뻗어 일직선이 된다. 책을 읽는 이들의 손에도 힘이 들어간다. 이보다 더 힘을 낼 수는 없다.

바다 수평선에서 붉은 해가 불끈 떠오르고 그 기운이 타조의 몸에 닿는 순간, 날개를 활짝 펴고 창공을 향해 힘껏 날아오른다.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 행복해!”

외마디 소리가 창공을 가른다.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 입에서도 “와~~”하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타조가 하늘로 날아가는 순간 아이들도 타조 따라 드넓은 창공 속으로 날아간다. 감동의 순간이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한 편의 멋진 영화가 끝난 뒤 선뜻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할 때의 느낌이다.

인간이 ‘하늘 위를 난다’는 것은 자신의 현실적 한계를 벗어나 한 단계 위로 도약된 성공적인 삶을 상징한다. 남과 경쟁하기보다 자신에게 싸움을 걸어보는 일은 어떨까? 꿈을 꾸고, 꿈을 향해 거침없이 달리고 또 달려가는 타조와 같은 사람은 아름답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도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

이제 “타조는 날지 못하는 새인데....”라는 생각은 접어두자. 친절한 설명을 하려는 마음도 잊어버리자. 감동이 아이들 가슴 속에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여운을 남겨두자. 때로는 침묵이 더 많은 말을 전할 때가 있듯이 책을 읽고 난 후 잠시 동안 정적이 흐르도록 하자.

필자소개
북경한국국제학교병설유치원 원감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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