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산책] 네 꿈을 보여줘!
[달팽이 산책] 네 꿈을 보여줘!
  • 현은순 북경한국국제학교병설유치원 원감
  • 승인 2018.02.01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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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꿈을 꾸었던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스스로 행복한 길을 찾고 싶어 했다. 레오 리오니의 ‘그리미의 꿈’이란 책 속 주인공인 그리미 이야기이다.

이 그림책은 시간 경과와 생각과 감정이 함께 이동하는 직선 구조로 되어 있다. 공간의 구성은 1절을 다 부르고 난 다음 맨 처음으로 되돌아와 다른 가사의 2절을 부르는 동요 같다고 할 수 있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일직선으로 쭉 뻗은 강가를 걸어가듯 이야기 줄거리만을 따라가기 쉽다. 그러면 단조로운 책읽기가 되고 만다.

매력적인 책은 나만의 책읽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책은 따뜻한 봄 날, 산책을 하다 새싹들이 이 제 막 올라와 제 색을 갖추지 않은 채 신기함으로 시선을 멈추게 될 때를 기억하며 읽으면 좋다. 글과 그림을 번갈아 읽어가다 마음을 잡아끄는 곳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리미의 마음을 공감해본다. 그리고 그 장소에서 그리미가 되어 깊은 생각에 잠겨본다. 글자 그대로 읽기보다 그림을 보면서 덧칠하듯 나만의 언어로 읽어본다.

그리미의 부모는 가난했지만 여느 부모들처럼 자식에게 거는 기대만큼은 컸다. 아들이 훌륭한 의사가 되면 치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리미는 부모와 생각이 달랐다. “자라서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물으면 늘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라고만 할 뿐이었다.

처음으로 미술관에 가던 날, 그리미는 그림 앞에서 눈동자가 커지고, 심장이 쿵쾅거리며, 미각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리미가 보고 싶었던 모든 세상이 그림 속에 다 있었다. 그날부터 그리미의 눈앞에는 그림들이 아른거리고 걸음걸음마다 색깔들이 밟혔다. 밤이면 음악소리에 맞춰 해와 달은 알록이 달록이가 되어 춤을 추는 꿈을 꾸었다. 그림이 가득한 그런 나라에 살고 싶었다.

꿈속에서 그리미는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행복했다. 그러나 꿈에서 깬 그리미 눈앞에는 다락방 구석에 오래된 거미줄이 갈래갈래 늘어져 있고, 오래된 신문, 책, 잡지, 깨진 전등, 버려진 인형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마치 자신이 꼬깃꼬깃한 낡은 종이 같았다. 쓸쓸하고 눈물이 쏟아지려 했다.

꿈을 실현하지 못한 사람은 늘 오늘이 버겁기만 하다. 그리미는 자신의 꿈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무엇이 나를 가슴 설레게 하는가?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포기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르게 하기로 결심했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허리를 곧추세워 다시 쓰레기 더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림의 세계를 상상을 해본다.

다락방에 쌓여 있던 더러운 물건들이 하나 둘 변하기 시작했다. 선이 되고 점이 되고 도형이 되어 서로 껴안고 어우러졌다. 칙칙한 색은 밝아졌다. 아이가 포근하고 따뜻한 방 안에서 꿀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미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부모도 그런 그리미의 꿈을 응원했다. 그리미는 자신이 생각하는 꿈을 따라 열심히 걸어갔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너무나 기뻤다. 그 마음을 담은 그리미의 그림을 보는 이도 행복했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이들에게 그리미처럼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려보라고 한다.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는 공룡박사가 되어 공룡 뼈를 찾아다니는 그림을 그린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지휘자가 가운데 있고 관객이 꽉 찬 무대에서 바이올린 연주에 맞춰 노래 부르며 춤을 추는 그림을 그린다. 어떤 아이는 고래 등 위에 타서 바다를 달리는 그림을 그리는 아이도 있다.

한 해를 기원하는 새해가 되었다. 이맘때면 유치원에서는 졸업식을 한다. 유치원 아이들이 졸업을 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묻는다. “얘들아,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니?” 올해도 30명의 졸업생들에게 인터뷰를 하며 동영상 촬영을 했다. 미래에 어떻게 하고 있을지 보여 달라고 하자 나름대로 흉내를 내기도 했다. 아이들의 꿈은 다양했다.

남녀 전체로는 화가가 가장 많았다. 남자아이들은 곤충이나 물고기를 연구하거나 기계를 발명하는 과학자가 1위, 축구, 태권도 같은 운동선수가 2위였다. 그 외에는 파일럿, 요리사, 블록 연구가, 공룡연구가, 게임제작자, 소방관, 군인이 되겠다고 했다. 여자 아이들은 화가가 1위. 배우가 2위였다. 그 외에는 선교의사, 수의사, 경찰, 가수, 발레리나, 피겨스케이트 선수 등이 되겠다고 했다.

아이들이 이런 사람이 되고 싶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자신이 ‘재미있으니까, 좋아하니까, 신나니까, 잘 하니까, 생각하면 두근두근하니까’였다‘. 아이들에게 꿈이란 가슴 설레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남들에게 ~을 해주고 싶어서‘이었다. 즉, ‘뭐든지 해결해주기 위해서, 편하게, 안전하게 해주고 싶어서, 좋아할 것 같아서, 즐겁고 재미있게 해주고 싶어서, 보기 좋게 꾸며주고 싶어서, 고쳐주고 지켜주고 싶어서, 만들어서 나눠주고 싶어서‘ 등과 같은 소원 때문이었다. 아이들에게 꿈의 출발선은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잘 하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의 재능은 남을 위해 잘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세상에 태어난 지 5~6년밖에 되지 않은 인생들인데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지 벌써 다 깨달은 것만 같다.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이런 인생관을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을 믿고 맡기기만 한다면 ’사슴벌레와 친구가 되고, 물고기 등을 타서 바다를 누비고, 날마다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 일어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만든 기분 좋은 음식을 먹고, 몸은 아파도 마음은 아프지 않는 세상‘이 될 것만 같다. 이러한 꿈들이 이루어지는 나라에서 나도 살고 싶다.

무엇이 되겠다는 꿈을 꾸는 것은 중요하다. ‘꿈은 살아갈 희망이다’라는 말을 공감한다. 꿈을 꾸고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질 때가 있다. 꿈은 세상으로 나가는 끈이 되기도 한다. 끈을 따라 뚜벅뚜벅 걷어간 자리에는 인생의 무늬가 새겨진다. 달팽이가 지나가 지욱처럼.

내가 만난 아이들은 남이 정해놓은 꿈을 쫓아가려 애쓰기보다 스스로 꿈을 찾아갈 수 당당한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위풍당당하게 걸어가는 발걸음 걸음마다 ‘참 보기 좋은’ 무늬가 또박또박 새겨졌으면 좋겠다. 먼 훗날 자기가 그린 무늬를 보고 ‘참 보기 좋구나!’하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필자소개
북경한국국제학교병설유치원 원감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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