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배필
[기고] 배필
  • 이영승(영가경전연구회 회원)
  • 승인 2018.02.12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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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29세가 되자 부모님의 안달은 날로 심해지셨다. 서른이 넘으면 장가 못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다고도 하셨다. 38살 미혼 아들을 두고 걱정도 마음대로 못하고 눈치만 살피는 지금의 나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아마도 그해를 내가 장가갈 수 있는 마지막 데드라인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에 사는 팔촌 누님이 내 하숙집으로 불쑥 찾아오셨다. 그리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맞선을 보라고 하셨다. 4백년 종갓집 맏딸이며, 농협에 근무하는 스물셋 규수라고 했다. 혼처가 너무 좋아 내게 미처 물어보지도 못하고 금주 토요일로 맞선 날을 이미 잡았단다. 그리고는 부모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니 올해는 꼭 장가를 가야된다는 말도 곁들였다. 알았다는 말 외에는 무슨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갔다. 

안동 시청 앞에 있는 양지다방으로 나갔다. 그런데 약속 시간보다 30분이 지나도 상대가 나타나지를 않았다. 누님은 안절부절 못하셨다. 요즘처럼 핸드폰이 있는 시절도 아니다. 몇 차례 집으로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누님은 나에게 꼼짝 말고 기다리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이십여 분 거리에 있는 그 댁을 찾아 나섰다. 그 집에도 사람은 없었다. 낙심하며 되돌아오는데 도중에 신부 쪽 일행을 만났다. 그쪽 중매 할머니 왈 아무리 기다려도 신랑감이 나타나지를 않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란다. 

연유를 알아보니 그 할머니의 착오로 만남 장소를 양쪽에 달리 전달한 것이었다. 신부 부녀와 조모 그리고 양쪽 중매자들이 함께 내가 기다리는 다방으로 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막 나가버리려던 참이었다. 인력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 연분일까? 만나고 6개월 만에 약혼을 하고, 3개월 후 결혼을 하였다.

약혼하기로 결정한 후 어느 날 장인 될 어른의 연락이 왔다. 약혼 전 그쪽 집안 어른들을 찾아뵙고 승낙을 받아야 된다고 하셨다. 당사자가 마음을 정했고, 양가 부모님이 허락을 했으면 되었지 또 무슨 승낙이란 말인가? 신부될 사람이 요식행위라고 귀띔해 주지 않았으면 나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종손인 장인은 어려서 아버님을 여의고 홀어머니와 네 분 삼촌 보살핌 속에 성장했다. 20세에 동갑내기 장모와 결혼하여 낳은 첫딸이라 당시 43세로 나와는 14살 차이였다. 어쩌면 사윗감을 사전에 집안 어른들께 선을 보이고 승낙 받는 것은 당연한 도리였는지도 모른다. 

부담 없이 면접을 보러갈 요량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께 사실을 말씀드렸더니 혹여 결례를 저지를지도 모른다며 시골에 들어와 조부님께 교육을 받고 가라고 하셨다. 조부님 앞에 앉으니 첫 질문은 ‘시하신가?’ 일 것이라고 하셨다. ‘부모님 슬하이신가?’라는 뜻인데 부모가 모두 살아계시면 ‘예’라고 하면 될 것이나 바깥부모만 계시면 ‘엄시하’ 안부모만 계시면 ‘자시하’라고 대답하면 된단다. 

다음 질문은 외가댁을 물을 것이며 그 다음은 진외가(아버지의 외가)를 물을 거라 하셨다. 적어도 3대가 양반집과 결혼을 해야 진정한 양반이라 할 수 있는데 두 질문이면 그 집안 내력을 다 파악할 수 있다고 하셨다. 외가와 진외가 집안 내력을 간략히 설명하신 후 그동안 수없이 들었던 우리 가문에 대해서 다시 장황한 설명이 계셨다. 완전히 봉건사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면접장에 당도하니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네 어른이 위엄을 부리는 듯 둘러앉으셨다. 그러나 웬만큼 무장된 나는 면접에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어쩌면 질문 순서와 내용이 조부님 말씀과 한마디도 차이가 없단 말인가? 완전 족집게 과외를 받은 것이었다. 

질문이 끝나고 여타 대화 시에는 수시로 ‘퇴계가 말씀하시기를~’ 하셨는데 그 뒷말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문제는 완벽한 면접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했단다. 어른들 앞에 안경을 벗지 않은 결례를 범했다는 것이다. 

멋으로 쓴 선글라스도 아닌데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어쨌든 그 후 세월은 흘러 39년이 지났다.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셨지만 젊은 시절 처갓집을 갈 때마다 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나는 신혼여행을 가지 못했다. 원래는 1박2일 경주를 다녀올 계획이었다.  호텔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잠시 인사차 우리가 신혼살림을 할 집으로 돌아왔다. 장인어른 형제분이 요객(繞客)으로 오셨다. 큰상을 받으시고 하루 밤을 묵어가게 되어 있었다. 일가친척도 많은 분들이 자고 가겠다며 집으로 몰려들었다. 당시의 당연한 이바지 풍습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갑자기 나를 불러내더니 신혼여행을 가지 말라고 하셨다. 신혼부부를 보고 찾아온 손님들을 두고 주인공이 떠나버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하셨다. 아마도 사전에 말하면 성사가 어려울 것 같아 작심하고 당일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어른의 말씀이라 아무도 우리를 옹호해주지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밤새도록 문구멍을 뚫고 신방을 들여다보며 장난을 쳤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고역스러움과 신혼의 짜릿함이 공존하는 첫날밤이었다. 그 총중에 첫 딸이 허니문베이비라니 참으로 신통도 하다. 맞선을 보던 그날 몇 번이나 메모를 남기고 나가버리려 했었다. 그때 2시간 넘게 기다렸던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하다. 그래서 배필(配匹)은 하늘이 맺어준다 했던가?

필자소개
​수필문학으로 등단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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