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고 싶은 한국의 역 21] 전라선 서도역
[가보고 싶은 한국의 역 21] 전라선 서도역
  • 구리하라 가게리(栗原景, 일본 포토라이터)
  • 승인 2018.02.1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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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역사, 얄궂은 운명

전라북도 남원 시내 버스 정류장에서 시내 버스를 탔다. 버스 정류장에는 시간표가 적혀 있지만, 제 시간에 맞춰 버스가 오기는 지방도시마다 다르다. 국도 17호선을 북상해 춘향터널을 벗어나면 작은 길로 들어선다.  좁은 포장도로다. 논과 인삼밭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을 돌아간다. 마을 입구에는 '○ ○ 마을'라고 적힌 돌표지석이 있다.

버스정류장을 알리는 표식도 없는 곳이지만, 난데없이 아줌마가 나타나서는 훌훌 타고 내린다. 지인도 많아 할머니 오늘은 어디로 가냐는 등 덕담도 들린다. 이윽고 도로 아래에 낡은 철로가 보였다.

 "손님, 여기서 내리면 됩니다." 운전기사한테 재촉을 받고 내린 것은 인적이 드문 삼거리였다. 숲 한켠으로 몇채의 민가가 보였다. 걸어가니 낡은 목조 역사가 나타났다. 역사의 기와 지붕이 마치 일본의 시골 역사를 보는 듯했다.

 전라선 서도역. 구내에는 선로 옆에는 구식의 신호전환 레버가 나란히 있지만, 열차가 오가는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서도역은 2002년 전라선의 선형 개량으로 이전해 폐지된 옛 역사다. 익산에서 전주 남원을 경유하여 여수에 이르는 전라선은 커브가 많아 시간이 많이 걸리는 노선이었다. 거기에 구름다리와 터널을 주체로 한 직선의 새로운 선로를 건설했다. 근본적으로 스피드업을 도모한 것이다. 최근 이런 고속화가 각지에서 시도되고 있지만, 전라선은 그 시작이었다.

폐지된 옛 서도역은 문화재로 등록되지도 않은 채 신속하게 철거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주 출신의 소설가 최명희의 대하 소설 '혼불'의 무대가 된 덕분에 남원시가 부지와 설비를 약 3억원에 구입하고 5억원을 들여서 1932년 개업 당시의 모습을 복원해 기념 공원으로 개방했다. 현재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에도 자주 사용되고 있다.

선로보수 작업원들의 대기소나 태블릿(한 구간의 주행을 허용하는 통행증) 장비도 보존돼 있어, 금방 열차가 달려올 분위기다. 벽면을 몰탈로 바르지 않고 단순한 맞배지붕의 목조 역사도 한국에서는 드물다. 역사 내 관광객이 낙서를 해놓은 것들이 아쉬울 따름이다.

마을 반대편에는 신칸센 같은 훌륭한 고가 선로가 달린다. 현재의 호남선이다. 재래선로 규격이면서도 최고속도가 시속 160㎞로, 고속철도인 KTX나 관광열차 S‐TRAIN(남도해양관광열차)도 운행되고 있다.

잘 지어진 콘크리트의 역사는 2002년의 선로 이설시에 개업한 현재의 서도역이다. 하지만 그 역사에도 지금은 열차가 한편도 정차하지 않는다. 이전 개업으로부터 불과 2년 후인 2004년 여객 취급을 중지했다. 2008년에는 운전관계 직원도 철수한 역무원 무배치 역으로 됐기 때문이다. 등록 상으로는 지금도 현역 역이지만 역사 입구는 봉쇄돼 출입할 수가 없다.

점심이 다가오면서 옛 역에 드문드문 관광객의 모습이 보였다. 모두 승용차로 와서는 역사나 선로를 스마트폰이나 카메라로 찍어 간다. 폐쇄된 새 역과 지금도 사람들이 찾는 옛 역. 2개의 서도역은 참으로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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