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살아가는 삶
[해외기고] 살아가는 삶
  •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2.24 0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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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일이 넘게 하나의 화두처럼 머릿속을 맴돌던 말이 있다. “보여주는 삶보다는 살아가는 삶을 보여주고, 진정한 종교적인 믿음이 있다면 상처란 없고 다만 나의 부족함만이 있을 뿐이다.”

미사 강론 중에 들은 이 말이 왜 그렇게 가슴에 콕하고 박혀오든지 현실적인 나의 삶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매일 매일 부딪혀 오는 일들을 받아들이고 나를 인정 받기위해서 달려가는 시간들은 사실적이며 현실이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일을 하니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완벽함을 추구하려는 성격 탓에 늘 피곤을 달고 산다. 하지만 이 세상에 완벽함이란 존재 할 수 없으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다.

수백 년 된 탑을 만들 때 묘한 틈을 만들어 주어야 긴 세월을 튼튼하게 견딜 수가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탑이 너무 빽빽하게 지어지면 비바람에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도 누군가가 편하게 비집고 들어 올 수 있는 작은 틈새를 만들어 주는 일이 필요할 듯싶다. 내가 발을 딛고 서있는 세상은 다른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늘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이루어지고 또 다른 만남이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지난주에 대부분의 공립학교 12학년들의 졸업식이 저녁에 있었다. 12학년 학생들은 일 교시 수업만을 끝내고 졸업식에 참석할 준비를 위해서 집으로 돌려보냈다. 졸업식장에서 만난 학생들은 항상 익숙하게 봐오던 앳된 십대의 얼굴이 아니라 성인으로 분장한 낯선 모습으로 변해서 나타났다.

무대에 걸린 대형 화면에는 이백여 명이 넘는 졸업생들의 사진이 한명씩 차례대로 나타났다. 한 면에는 입학했을 무렵의 어린 모습과 옆에는 현재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었다. 객석에서는 학생들이 지르는 함성과 박수, 웃음소리로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했다. 인생의 황금기 같은 6년의 하이스쿨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 배움의 시간을 마무리하는 순간에 눈물을 닦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학생들을 바라보는 선생님들의 얼굴에도 진한 감회가 서리는 듯 했다.

초대선배로 참석했던 한 여성 저널리스트는 후배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문자 카드로 만들어서 보여주었다. “You are not going to be Ok”로 시작했던 문장이 다양한 충고를 하면서 단어를 하나씩 빼나가더니 마지막으로 남은 문장은 “You are Ok”로 되었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후배 졸업생들에게 날린 멋진 한 마디였다. “너희들, 괜찮아.”

음악을 좋아하는 나는 유투브 동영상을 즐겨보는 편이다. 2017년을 마무리 하는 ‘아메리카 갓 탤런트 2017 레전드 무대’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게 만든 한 여성의 감동적인 노래를 듣게 되었다. 주인공이 무대에 나타나자 심사위원 중의 한 명인 사이먼이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청각을 잃기 전에 음악을 시작했나요?” 맨디(Mandy Harvey: 29세)는 4살 때 음악을 시작했으며 청각을 잃어버린 이후로 음악을 잠시 포기했으나 근육기억과 튜너로 자신의 음정을 조절하며 다시 음악을 시작 할 수 있었다고 대답했다.

맨발로 무대에 선 이유는 바닥에서 울리는 진동을 발로 느끼며 박자를 맞추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도 덧 붙였다. 그녀는 말을 할 수는 있지만 듣지를 못하니 수화통역사를 통해서 심사위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청력을 잃은 후에 음악을 포기하려 했던 그녀. “그냥 포기하는 것 보다 나 자신의 인생을 더 살아 보고 싶었다.” 라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삶의 기운이 뿜어 나오는 듯했다. 지금부터 빛을 발해 보라는 심사위원의 요청에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자작곡 ‘Try’를 부르기 시작했다. 일부 청중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그녀의 노래 속으로 점점 빠져 들었다.

‘내가 노력한다면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야, 나는 노력할거야, 나는 노력할거야’ 라고 호소하듯이 부르는 청아한 소리는 자신의 삶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관중들은 환호하며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심사위원 사이먼은 “맨디, 지금 내가 할 일은 통역사가 필요 없을 것 같아요”라고 말한 뒤 일어나서 황금 부저를 눌렀다. 황금색 꽃가루가 맨디의 머리 위로 쏟아졌으며 노래를 정말 잘 부른다는 칭찬과 함께 사이먼은 두 엄지를 치켜세웠다.

무대 뒤에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지켜보던 아버지가 달려와서 딸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은 자신의 아픈 삶을 아름다운 노래로 승화시킨 것이다. 맨디는 이미 삶의 한 단계 위에 올라선 사람처럼 보였다.

사람은 자음 한 개로 사랑이 될 수 있고 모음을 빼면 삶이라는 글자가 된다. 어느 작가는 “세 단어가 닮아서 일까. 사랑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사랑이 끼어들지 않는 삶도 없는 듯하다”라는 멋진 메시지를 전해 주기도 한다. 하이스쿨을 끝낸 졸업생들이나 청력을 잃고도 노래를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용기를 보여준 맨디 하비가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멋진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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