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春秋] 자두연기(煮豆燃萁)
[대륙春秋] 자두연기(煮豆燃萁)
  • 팽철호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중어중문전공 교수
  • 승인 2018.02.28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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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간의 골육상쟁

소설 <삼국지>의 간웅 조조(曹操)는 꾀가 많았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조조 스스로도 머리가 좋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피를 타고났기 때문인지 그의 아들들도 비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아들 중에는 비록 13살에 요절했지만 5~6세에 코끼리의 무게를 재었다고 하는 조충(曹沖)이라는 천재성이 돋보이는 아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총명함으로 이름을 크게 떨친 이는 그의 셋째 아들 조식(曹植)이라고 할 것이다.

부친의 어떤 질문에도 뛰어난 기억력과 재빠른 두뇌회전으로 즉석에서 유창하게 응대했던 조식은 항상 아버지 조조를 흐뭇하게 만들었다. 조식의 재능은 문학 방면에서 빛을 발했는데 시(詩)와 부(賦)에 있어서는 누구라도 조식을 당대의 최고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조식보다 조금 늦은 시기에 활동한 시인으로 자신의 재능에 대하여 자부심이 매우 강했던 사령운(謝靈運)조차도 “천하의 재주가 한 섬 있다면 여덟 말은 조식이 차지했고, 한 말은 내가 차지했고, 나머지 한 말을 세상 사람들이 나누어 가졌다”고 할 정도였다. 재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재고팔두(才高八斗)’라는 말이 조식의 재능에서 유래됐던 것이다.

그렇지만 둘째 아들 조비(曹丕)도 결코 녹록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 역시 문학 방면에서 대단한 성취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전론(典論)>이라는 책에 들어 있는 <논문(論文)>이라는 글을 써서 중국문학사상 최초의 본격적인 문학론을 개진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그였지만 그는 아무리 애를 써도 동생 조식에게는 미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조식이 있는 자리에서는 제대로 말을 못할 정도로 주눅이 들어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그의 마음속에는 동생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질투심이 자라고 있었다. 특히 부친인 조조가 그의 후계자로 동생인 조식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낌새를 알아차리고서는 동생에 대한 증오심마저 생겼다.

재능을 자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부친의 총애마저 함 몸에 받고 있던 조식은 이제 아무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러자 자신처럼 재능 있으며 성격이 비슷한 이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다소 방종한 행태를 보이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다.

머리가 좋아 조조의 계륵(鷄肋)이라는 말의 뜻을 즉석에서 간파한 것으로 유명한 양수(楊修)같은 인물들이 조식의 주위에 있었다. 그러던 중에 조비 측의 첩보에 의해 조식의 몇 차례 실수가 조조에게 알려지면서 조조의 조식에 대한 신뢰는 점차 예전 같지 않게 됐다.

게다가 형제간의 서열이 지켜져야 집안이 평안해진다는 부하들의 권고가 있기도 하여, 조조는 조식에 비해 다소 재능이 떨어지기는 하나 항상 조신하게 행동했던 조비를 후계자로 결정하게 됐다.

자신보다 강한 동생과의 피 말리는 후계자 경쟁을 치르고서 위왕(魏王)에 오른 조비는 마침내 가슴 속에 맺힌 원한을 풀기로 작정했다. 자기보다 유능한 동생을 죽여서 후환을 없애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뚜렷한 이유 없이 친동생을 죽인다는 것은 그에 대한 양심의 가책은 없다고 하더라도 남들의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만약 천륜을 저버린 행위를 빌미로 누군가가 소요를 일으킨다면 어렵게 쟁취한 왕위마저 위태롭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참모들의 자문을 얻어 조식에게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시를 짓게 했고, 짓지 못하면 능력도 없는 주제에 당대 제일의 문호로 행세하며 백성들과 군주를 기만했다는 죄명을 붙여 처단하기로 했다. 조식이 그 때 일곱 걸음을 걸으며 썼다고 하는 시가 그 유명한 <칠보시(七步詩)>다.

煮豆持作羹(자두지작갱, 콩을 삶아서 콩국을 만들고)
漉菽以爲汁(녹숙이위즙, 콩국을 걸러서 콩물을 만드는데)
萁在釜下燃(기재부하연, 콩깍지는 가마솥 아래에서 타고)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콩은 가마솥 안에서 울고 있네)
本是同根生(본자동근생, 본래 한 뿌리에서 났는데)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어쩌면 그렇게 못살게 구는가?)

책에 따라서는 조식이 그 때 지었다는 시가 다음과 같이 4구로 되어 전해지기도 한다.

煮豆燃豆萁(자두연두기, 콩 삶는 데에 콩깍지를 태우니)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콩은 가마솥 안에서 울고 있네)
本是同根生(본자동근생, 본래 한 뿌리에서 났는데)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어쩌면 그렇게 못살게 구느뇨)

형제간의 골육상쟁을 콩을 삶기 위해 콩깍지를 태우는 것에다 비유한 것이다. 조식은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일곱 걸음을 채 걷기도 전에 이 시를 읊었다고 한다. 그러자 양심의 가책을 느낀 조비는 몸 둘 바를 몰라 했다고 한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멋진 시를 짓는 동생이 자신보다 훨씬 낫다는 사실을 재삼 확인한 것도 있지만, 자신이 인지상정에 어긋한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시의 내용을 통해서 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콩깍지를 태워서 콩을 삶는 것을 빌어 형제간의 골육상쟁의 어리석음을 풍자한 것이 살려달라고 애원하거나 형의 부도덕함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호소력을 가졌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일이 워낙 유명한 사람들 사이에 벌어졌던 특이한 사람들 사이에 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이 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식의 이 <칠보시>는 금세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리고 이 시는 형제간의 골육상쟁을 쉽게 연상시키기 때문에 이 시로써 흔히 형제간의 이익이나 주도권 다툼을 풍자하게 됐다.

그리고 이 시에서 시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암시함으로써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시구, 특히 4구로 된 시의 첫 구 ‘煮豆燃豆萁(자두연두기)’는 그대로 형제간의 골육상쟁을 나타내는 성어로 쓰이게 됐다. 성어로 쓰일 때에는 이 다섯 자의 구는 표제어처럼 한 자를 줄여 ‘煮豆燃萁(자두연기)’로 쓰기도 한다.

팽철호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중어중문전공 교수
팽철호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중어중문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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