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春秋] 설니홍조(雪泥鴻爪)
[대륙春秋] 설니홍조(雪泥鴻爪)
  • 팽철호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중어중문전공 교수
  • 승인 2018.03.07 09: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남겨놓는 부질없는 흔적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 얼마나 심각한 화두인가. 삶에의 집착은 강렬하나 생명은 유한한 인간으로서 이보다 더 절박한 문제가 있겠는가? 인간이 생겨난 이래로 이것보다 사람들의 관심을 더 많이 끈 문제는 없을 것이다. 역대의 현철과 석학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나름대로의 답을 내놓은 것이 철학이요 종교일 것이다.

그러나 유한한 인생의 그 다음이 어떻게 될지는 그 누가 알겠는가? 그래도 일부 종교적 신념으로 내세를 믿고 윤회를 신봉하는 이들이 인생무상의 비애를 극복하기도 한다. 그리고 수양이 깊은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자신의 죽음까지도 정확하게 예견하고 “옷을 갈아입겠다”라는 말 한 마디 남기고 태연히 숨을 거둔다고 하지만, 아직 그런 신념도 그런 수양도 없는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몰고 오는 허무와 절망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그저 그 문제에 생각을 피하는 것으로써 그 극한의 두려움을 피해갈 뿐인 것이다. 현대의 가장 경건한 인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테레사 수녀조차 신의 존재를 회의하기도 했다고 하는 고백이 최근 세상에 알려지면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영혼불멸이나 윤회는 단지 신념에 불과하고 허무야말로 인생의 실상일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아직 죽음을 뛰어넘을 깨달음을 얻지 못했거나 내세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없으면서도 인생과 죽음의 의의에 대한 의문이 뇌리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데다 이별을 상정하는 것만으로도 큰 아픔이 되는 사랑하는 존재가 있는 경우라면 상황은 더 좋지 않다. 인생의 유한함을 자각할 때마다 애별리고(愛別離苦)에 시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26살의 청년 소동파에게는 그런 조건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었다. 총명한 성품에 철학적 사유능력이 있는데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바로 아래의 동생 소철(蘇轍)과는 각별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동생이 두 살 터울이라 친구 같은 느낌이 있는데다 그 역시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당대 최고의 수재의 한 사람이었으니, 혈육의 정으로 보나 재주를 사랑하는 재주꾼의 눈으로 보나 살갑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 더하여 소동파가 25살 되기까지 멀리 떨어져 본 적 없이 같이 지내며 진한 우애를 쌓아왔으니 동생과의 1년 남짓한 이별은 애별리고(愛別離苦)를 맛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소동파는 동생 소철과 헤어진 지 일 년 정도 될 무렵 인편으로 보내온 동생의 안부 편지에 담긴 시에 화답하여 다음과 같이 그의 회포를 풀어 놓았다.

人生到處知何似(인생도처지하사, 인생이 도달하는 곳은 어떠할까?)
應似飛鴻踏雪泥(응사비홍답설니, 날아가던 기러기가 눈이나 진흙 밟는 것과 같으리)
泥上偶然留指爪(니상우연류지조, 진흙 위에 우연히 발톱 자국을 남겨도)|
鴻飛那復計東西(홍비나부계동서, 기러기 날아가면 어찌 다시 방향을 헤아리리오?)
老僧已死成新塔(노승이사성신탑, 노스님은 이미 입적하여 새로운 부도가 되었고)
壞壁無由見舊題(괴벽무유견구제, 무너진 벽에서는 옛날 쓴 글을 찾을 길 없네)
往日崎嶇還記否(왕일기구환기부, 옛날의 기구했던 일을 아직도 기억할는지)
路長人困蹇驢嘶(노장인곤건려시, 길은 멀고 사람은 피곤한데 절름거리는 나귀도 우네)

<화자유민지회구(和子由澠池懷舊)>라는 제목의 시다. 형인 자신을 그리워하고 이별을 아쉬워하는 시를 읽으면서 소동파는 사랑하는 동생과의 이별의 안타까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생의 궁극적 의미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된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흔적을 기러기가 눈으로 축축해진 진펄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에다 비유하고 있다. “기러기 날아가면 어찌 다시 방향을 헤아리리오?”라는 구절은 두 가지 방면에서의 해석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하나는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이 벼슬아치의 운명이고 보면, ‘지금은 여기에서 근무하지만 다음에는 또 어떤 낯선 곳으로 갈까’ 하는 서글픈 마음의 표현으로 볼 수 있고, 또 하나는 인생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생각하여 ‘사람이 이 세상을 사는 것은 기러기가 눈 진펄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과 비슷한 것인데, 이생이 끝나고 나면 또 어디로 가는 것일까?’라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숙명에 대한 근원적 비애의 발로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옛날의 기구했던 일을 아직도 기억할는지, 길은 멀고 사람은 피곤한데 절름거리는 나귀도 우네”라는 것을 ‘힘들더라도 세상을 열심히 살자’라고 격려하는 뜻으로 보는 이도 있지만, 무겁기 이를 데 없는 전체적인 분위기로 보아서는 내세는 기약할 수 없고 한 번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존재로서의 자각에서 오는 비애라고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철학적 깊이가 남다른 소동파라면 스물여섯 살 청년 때라고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시는 이렇게 멋있는 표현에다 깊은 철학적 의미를 함장하고 있다. 게다가 이 시가 불세출의 대문호 소동파의 작품이기도 하였으니 이 시는 금세 인구에 회자되었다. 급기야 이 시 중의 가장 극적인 대목인 기러기가 눈 진펄에 발자국을 남기는 장면을 ‘설니홍조(雪泥鴻爪)’라는 넉 자의 성어로 만들게 되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남겨놓는 부질없는 흔적’을 가리키는 말이 된 것이다. ‘설니홍조(雪泥鴻爪)’는 ‘설홍유조(雪鴻遺爪)’로 표현하기도 한다.

팽철호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중어중문전공 교수
팽철호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중어중문전공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