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여 년 전만 하여도 여성이 사법시험에 합격을 하면 홍일점이니 뭐니 하면서 신문에 대서특필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런 시험에도 여성의 합격률이 절반에 육박하고 있고, 선망하는 좋은 보직을 받는 상위 그룹에서는 여성의 점유 비율이 이미 과반을 초과한다.
그 뿐인가 특수 부대 여자 대원이 고공 점프를 하고 로프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한 손에는 소총을 들고서 고층 빌딩을 거꾸로 내려오는 장면이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기도 한다. 남자와 여자는 부여된 기호만 다른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남성 본위의 유가사상에 입각한 전통 사회에서는 남존여비의 관념이 완강하여 여자는 그저 남자의 부속품쯤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론일 뿐이다. 개별적인 상황에서는 남자와 여자 간의 상대성에 따라 얼마든지 특수한 사례가 나타날 수 있다.
여자가 남자를 휘어잡아 맥을 못 추게 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그런 일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것이 아니어서 특수하고, 특수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입에 쉽게 오르내린다.
소동파는 비범한 인물이었던 만큼 교유하는 사람 중에는 특이한 인물도 많았던 것 같다. 그에게는 진조(陳慥)라고 하는 친구가 있었다. 학문이 출중하였던 그는 특히 불교철학에 조예가 깊었다. 명사들 간에 불교에 관한 토론이 있을 때면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발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의 아내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볼품없는 사내가 되고 말았다.
한번은 소동파가 여행을 하다 진조가 사는 곳 가까이를 지나면서 진조가 생각이 나서 진조를 한 번 볼 요량으로 진조의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진조의 집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진조의 집 담 너머로 우레와 같은 여인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자세히 들어보니 진조의 아내 하동(河東) 유씨(柳氏)가 무엇이 불만이었던지 남편 진조를 호되게 꾸짖고 있는 것이었다.
진조의 아내 하동 류씨가 사납다는 말은 대략 듣고 있었지만 직접 확인하고 보니 적지 아니 놀라운 일이었다. 그래서 소동파는 그 사건을 그의 시에 써넣었는데, 그것이 <기오덕인겸간진계상(寄吳德仁兼簡陳季常)>이라는 24구로 되어 있는 시의 제5에서 8구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龍邱居士亦可憐(용구거사역가련, 용구거사도 가련하구려)
談空說有夜不眠(담공설유야불면, 공이니 유니 토론할 때면 밤잠도 안 자더니)
忽聞河東獅子吼(홀문하동사자후, 문득 하동사자의 울부짖음을 듣고는)
拄杖落手心茫然(주장낙수심망연, 짚었던 지팡이 손에서 떨어지고 정신이 아뜩하네)
본래 장편 시의 일부분이지만, 이 네 구를 이렇게 떼어놓으면 그 자체가 칠언절구다. 그래서 이 네 구가 마치 하나의 독립된 작품처럼 널리 알려져 있다. 용구거사(龍邱居士)란 진조의 호(號)이며, 그의 자(字)는 계상(季常)이다. 진계상(陳季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공(空)’과 ‘유(有)’는 불교철학의 중요한 개념이며, 사자후(獅子吼)는 부처의 설법을 백수의 제왕인 사자의 부르짖음에 비유한 말이다.
사자가 포효하면 다른 짐승들은 모두 숨을 죽이듯이, 부처가 정법을 설하면 여러 이단의 사설들은 모두 자취를 감춘다는 뜻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불교학자 진조를 찍소리 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 아내의 사나운 고함소리를 사자후에 비유한 것이 그래서 더욱 해학적이다. 여기서 ‘사나운 아내’를 의미하는 ‘하동사후(河東獅吼)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사람들이 이 재미있는 사건에서 단순히 사나운 아내만을 발견했을 리 없다. 동시에 아내에게 쩔쩔 매는 가련한 남편의 형상을 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이 사건에서 아내를 무서워하는 남편, 즉 공처가라는 뜻을 가진 성어도 만들어 내었다.
진조의 자를 딴 ‘계상벽(季常癖)’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계상 즉 진조의 고질적인 버릇이란 곧 아내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공처가’ 또는 ‘아내를 두려워하는 것’을 에둘러서 ‘계상벽’이라고 한다. 남녀가 평등하고 가정의 실질적인 권한은 대개 무서운 아내가 장악하고 있기 마련인 현대에서는 ‘계상벽’이라는 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특이하게 느껴질 지도 모를 일이다. 판본에 따라서는 위 네 구가 다음과 같이 전해지기도 한다.
誰似龍邱居士賢(수사용구거사현, 누가 용구거사만큼 현명하겠는가?)
談經說法夜不眠(담경설법야불면, 불경과 불법(佛法)을 토론할 때면 밤잠도 안 자더니)
忽聞河東獅子吼(홀문하동사자후, 문득 하동사자의 울부짖음을 듣고는)
拄杖落手心茫然(주장낙수심망연, 짚었던 지팡이 손에서 떨어지고 정신이 아뜩하네)
필자는 이 시에서 진조의 아내의 고함소리에 놀라 짚었던 지팡이를 떨어뜨리고 정신이 멍해진 이를 진조로 보았으나, 사람에 따라서는 소동파가 그 소리를 듣고 놀란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