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500달러로 본 한국어
[데스크칼럼]500달러로 본 한국어
  • 이승호 기자
  • 승인 2011.04.07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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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에서 언론인 생활을 하고 있는 선배에게서 현지 소식 한 가지가 전해져 왔다.

선배의 칼럼을 읽은 어느 50대 독자의 이야기다. 이 독자의 아들은 미국에서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조종사로 복무 중으로 군에서 시행하는 한국어 시험에 만점으로 합격했다. 우수한 외국어 성적에 대한 수당으로 매달 400달러를 월급 외에 지급받는다고 한다. 엄마는 그 절반을 달라고 요구했다. 왜냐하면 어릴 때 가기 싫어하던 한국학교에 강제로 다니게 해서 한국어를 반듯하게 말하고 쓸 수 있도록 해 주었으므로, 그 추가 수당의 절반은 엄마의 몫이라는 주장이다.

언뜻 보기에 단란한 한 가정의 일상적인 이야기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내면을 들여다보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그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선배가 머물고 있는 미국 남가주에는 한국학교연합회의 추산으로 어림잡아 많으면 700여 개, 적게 잡아도 500여 개의 크고 작은 한글학교들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교회나 성당, 사찰을 비롯한 종교기관에서 종교교육을 겸해 한국학교를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고 일부 학원 등에서 병행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이야기를 돌려 유럽으로 가보자.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지난 3월 25일부터 사흘간 유럽 한글학교 교장, 교사 세미나가 열렸다. 유럽 17개국 41개 한글학교 관계자 120여명이 모여 한국에서 온 전문가들의 강의도 듣고 아이들을 위한 우리말 교육 문제를 토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 행사를 주관한 밀라노한글학교 서유미(48.여) 교장은 "고국을 떠나 유럽에 살면서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려는 이곳 학부모들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이탈리아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우리말을 잊지 않도록 학부모들이 토요일마다 교사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학교를 운영하기가 너무 힘에 겹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는 한국으로 이주해 살고 있는 다문화가정을 끌어안자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언어 교육으로 중앙정부 및 지자체 단위로 비교적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물론 한국사회가 다문화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드시 해 나가야하는 일임에는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 해외동포들의 2세, 3세에 대한 한글교육지원이 미미하다는 점이다. 각 지자체별로 해외도시들과 자매 결연을 맺고 있다. 이러한 네트웍을 통해서라도 해외동포들의 자생적 한글학교를 정기적으로 지원해나가는 방안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멀지 않은 장래에 한인 3세, 4세가 많이 태어나게 될 것이다. 이들이 한인 후예로서 정체성을 가지게 하는 것을 해외동포들에게만 떠 넘겨서는 안 된다.

어릴 때 엄마의 강요로 한국어 학교에 다녔던 공군조종사 아들은 다시 군에서 시행하는 한국어 필기시험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이 시험에도 합격하면 100달러의 추가 수당을 더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앞에서 얘기한 400달러에 더하면 매달 추가 수당이 500달러에 달한다. 절반을 달라는 엄마의 장난기 어린 요구에 아들은 전액을 모두 주겠다고 했다.

이제 “너는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가 아니라 “한국말을 하면 네가 좀 더 잘 살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해외동포들의 한글교육 지원을 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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