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산책] 빨강이 어때서!
[달팽이 산책] 빨강이 어때서!
  • 현은순 북경한국국제학교병설유치원 원감
  • 승인 2018.03.26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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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읽다보면 확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말이 있다. ‘빨강이 어때서!’라는 말이 그랬다. 처음 이 책 표지를 봤을 때 마치 고양이가 책 밖으로 튀어나오면서 카랑카랑한 소리로 ‘빨강이 어때서’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빨강 고양이의 소리가 화살처럼 나의 귓속 울림통을 지나 심장에 탁 꽂히는 듯했다. 당당한 표정에 반하고 말았다.

빨강이는 태어날 때부터 빨강이었다. 빨강이는 자신의 털 색깔이 마음에 쏙 들고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검정고양이 아빠와 하양고양이 엄마는 자신들을 닮지 않은 빨강고양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검정이, 하양이, 줄무늬, 얼룩이 형제고양이들도 색깔이 다른 빨강이를 불쌍하게 여겼다. 가족들은 빨강고양이가 자기들과 ‘다르다’는 사실이 몹시 불편했다. 눈에 보일 때마다 ‘우리와 같아져야해, 검정이거나 하양이 아니면 줄무늬, 얼룩무늬가 되어야 해’라고 억지를 부리며 ‘닮기’를 강요했다. 빨강이는 이런 가족들 때문에 몹시 슬펐다.

빨강이는 ‘다른 고양이들이랑 똑같으면 시시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결국 빨강이는 집을 떠난다. 자신의 모습을 인정해주는 곳을 찾아 나선 것이다. 드디어 파란색, 회색, 노란 얼굴무늬, 회색 점박이 등 다양한 고양이들이 사는 마을을 찾았다. 그들은 빨강이를 보고 “네 빨간 털, 정말 예뻐”라고 말해주었다. 각기 다른 색을 가진 고양이들이 함께 섞여 사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였다. 오히려 다양해서 더 풍요롭고 행복해 보였다. 빨강이는 집을 떠나온 것을 참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이 마을에서는 서로서로 다름을 존중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이들 곁에 산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존중은 서로의 마음을 열게 한다. 파랑이는 파랑이라 좋았고, 빨강이는 빨강이라 서로 좋았다. 다르다는 것만으로 배척의 대상일 수는 없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서로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할 수 있다는 다른 표현일 뿐이다. 빨강이가 찾은 마을에서는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유연하게 열려있었다. 그런 공동체였기에 무지개 색의 고양이가 태어날 수 있었다.

6살 아이들에게 이 책을 들려주었다.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아쉬운 듯 “또 듣고 싶다”라고 했다.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림책을 읽어주는 일이 행복하게 느껴진다. 아이들은 이 이야기를 왜 좋아할까?

이 이야기를 듣는 동안 아이들은 어떤 경험을 떠올렸을까?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을 받고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경험을 기억하고 있을까? 혹은 유치원에서 ‘누구는 싫단 말예요’라고 할 때 그 누구에 속했던 경험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아니면 부모들이 형제들을 비교할 때 ‘형은 안 그런데 너는 왜 그러니?’, ‘누굴 닮아서 저러는지 모르겠다’라는 가슴 아픈 말이 생각났을까?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내가 뭐, 내가 어때서?”라고 수없이 말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이 책을 다 읽어준 후 앞장의 표지를 다시 보여준다. “고양이의 표정을 잘 봐. ‘빨강이 어때서!’라는 말을 어떻게 말했을까? 흉내내보자”라고 한다. 아이들은 고개를 꼿꼿하게 세우고 아주 당당하고 큰 소리로 “빨강이 어때서!”라고 외친다. 소리크기만큼 아이들은 이 책을 잘 이해한 것이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다.

빨강이는 남과 다르게 태어나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 모습이다. 학급마다 회색 고양이처럼 있는 듯 없는 듯이 조용한 아이가 있고 황토색 고양이처럼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아이도 있다. 반면에 빨강이처럼 도드라지게 눈에 띄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은 제 각각의 색깔 그대로 살고 싶어 한다. ‘빨강이 어때서!’라고 큰소리로 외치는 아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이들은 남들과 조금 다르게 살 권리가 있다.

그림책을 다 읽은 후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서로가 똑같으면 어떻게 될까?” 아이들이 앞 다투며 말한다. “서로가 똑같으면 재미없어요”, “시시해요”, “누구 목소리인지 몰라요. 누군지 찾지 못해요”, “똑같이 생기면 이상해요”, “넌 누구야? 하며 계속 찾아야 해요”, “형과 난 원래 형제인데 쌍둥이라 부를 것 같아요”, “만일 생각이 같으면 싸울 것 같아요. 자기 먼저 놀이하려고 해요. 놀 곳이 없어져요”…. 왁자지껄 소란스럽다. 그러나 듣기 좋은 소리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사토 신의 ‘빨강이 어때서’를 읽어줄 때이다. 아이들 모습이 모두가 똑같으면 시시하고 재미없을지 모른다. 생각이 달라야 각자 좋아하는 놀이를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아이들. 아이들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다양함이 있어야 모두가 행복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런 아이들의 마음을 어른들이 배울 일이다.

필자소개
북경한국국제학교병설유치원 원감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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