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이재민 "한국 곰탕·김치로 마음달래요"
日이재민 "한국 곰탕·김치로 마음달래요"
  • 연합뉴스
  • 승인 2011.04.07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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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식을 준다기에 매울 거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네요. 안에 담긴 고기가 소 꼬리라고요? 7시간이나 끓였다고요? 엄청나네요"

재일본 대한민국 민단(민단)의 음식 제공 행사가 열린 7일 낮 12시께 일본 미야기(宮城)현 이시노마키(石卷)시 이즈미초(泉町)의 가도와키(門脇)중학교.

학교 건물 1층의 체육관에 한달째 대피 중인 일본인 여성 가사이(50.가명)씨는 곰탕 한 그릇을 손에 들고 한동안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본에서는 '꼬리 수프'라고 부르는 곰탕에 어떤 고기가 담겼는지 궁금해했다. 민단 단원과 한식네트협의회 회원들이 6일 온종일 미야기현 민단 본부에서 소 꼬리를 끓였다고 설명하자 깜짝 놀라기도 했다.

곰탕 말고도 한국 김과 인삼차 등이 제공됐지만 가장 반응이 좋은 건 김치였다. 규모 9.0의 강진과 쓰나미로 이시노마키 해안의 마을이 전멸한 지 어느새 거의 한 달. 처음에는 지원 물자가 도착하지 않아 먹을거리를 구하기가 어려웠지만, 요즘은 일본 전국 각지에서 제공한 식료품 등이 넘쳐날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먹고 싶은 것을 스스로 구한 게 아니라 남이 주는 걸 받다 보니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닌 듯 했다.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와 빵이 너무 많아요. 오늘 아침에는 유럽식 리조또를 먹었어요. 채소를 좀 먹고 싶은데 그런 말 할 처지가 아니겠죠"

요즘 일본인들도 즐겨 먹는 한국 김치는 '가뭄 끝에 단비'와도 같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달라는 말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배식을 맡은 한 아주머니가 곁을 지나가며 곰탕과 김치를 맛있게 먹는 그녀에게 "김치 한 팩 더 줄까"라고 물어도, 가사이씨는 "저는 한 개 받았으니 됐어요"라고 대답했다.

피난민들이 질서를 지키고, 주변 환경을 깨끗이 유지하려고 애쓰는 모습은 대피소 곳곳에서 확연하게 느껴졌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화장실. 여느 가정집보다 더 깨끗하게 청소가 돼 있었다. 피난 초기에는 화장실 변기가 막혀서 고생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율적으로 조를 짜서 하루 두 번 청소를 하고 쓰레기 분리수거도 한다고 했다. 대피 공간을 제공한 학교측은 청소 시간에 맞춰서 음악을 흘려보내고, 피난민들이 머무는 교실 벽 곳곳에 '청소의 포인트'라는 안내문을 붙여놓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만난 다나카(65.가명)씨는 이런 모습을 자랑스러워했다.

"이제 곧 돌아올 아이들에게 깨끗한 학교를 넘겨주려고 다들 애쓰고 있어요. '일본인은 어딜 가도 일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그래도 장기간에 걸친 피난 생활의 고충은 청소로도 감추기가 어려운 듯했다. 부근 병원에서 순회 진료를 나온 한 여의사는 "요즘 설사를 하는 분들이 늘어나서 위생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고 귀띔했다.

피난민의 수는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한때 1천200명에 이르렀던 피난민은 이제 750명으로 줄었다. 침수 피해를 덜 입은 친척 집으로 가거나, 돈이 있는 사람은 새로 아파트를 빌려서 나갔다고 했다. 남은 이들 중 상당수는 그럴 만한 돈이 없는 이들.

그래도 지난 4일로 예정돼 있던 중학교 시업식과 입학식을 무기한 늦추면서까지 학교를 피난소로 쓰는 만큼 언제까지나 이곳에 머물 수 없다는 점이 이들의 표정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알아보고는 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오니기리랑 빵만 먹다가 '꼬리수프'와 김치를 먹으니까 몸이 따뜻해지고 힘이 나는 것 같아요" 애써 웃어 보이는 가사이씨의 표정 뒤로 달랠 길 없는 불안과 마음의 상처가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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