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春秋] 경국지색(傾國之色)
[대륙春秋] 경국지색(傾國之色)
  • 팽철호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중어중문전공 교수
  • 승인 2018.04.0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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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를 미혹시킬만한 미색을 갖춘 미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도 인간의 본능 중의 하나다. 한 가지 물건을 만들 때에도 기본적인 기능만 갖추면 그 다음에는 그것을 여하히 예쁘게 만들 것인가에 골몰하게 된다. 온갖 기상천외한 것들이 만들어지고 또 개량되어 가는 방향 중의 하나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현 시대를 일컬어 디자인의 시대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아름다움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시대정신이라는 말로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은 바로 사람의 아름다움이 아닌가 한다. 필자는 필부로 살아가는 터라 경험이 폭이 협소하여 그 진면목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주워들은 것만 간추려보아도 미인의 힘이 예사롭지 않은 것만은 틀림없다.
 
우선 광고에 등장하는 인물이 대개가 미남 미녀로 소문난 사람들이라는 점만 보아도 사람의 아름다움이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유명한 배우를 보고자 무리를 지어 찾아들었던 이웃 나라 아줌마들도 특별한 사람의 빼어난 아름다움에 복종하는 인간 군상의 한 가지 모습이다. 

건곤일척의 중압감과 위기일발의 긴장감이 감도는 전쟁터에서조차 절세미인을 동원한 미인계를 펼치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일 것이다. 심지어 천하의 미인을 마음대로 얻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미인들에 둘러싸여 살았던 황제조차도 특별한 미인의 강력한 매력에 빨려 들어가 헤어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적지 않게 전해진다. 

폭군으로 유명한 하(夏)나라의 걸왕(桀王)과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이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말희(妺喜)와 달기(妲己)라는 절세미인의 미색에 홀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아름다움은 한 나라의 운명까지도 좌우할 수 있는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한 나라를 엎어버릴 만큼의 영향력이 있는 아름다움을 갖춘 사람을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고 하고, 그것을 중국에서는 ‘경성경국(傾城傾國)’이라고도 한다. 그 말은 다음과 같은 시에서 나왔다.

北方有佳人(북방유가인, 북방에 미인 있으니)
絶世而獨立(절세이독립, 세상 사람들과 달리 우뚝 서있네)
一顧傾人城(일고경인성, 한 번 돌아보면 사람 사는 성을 기울게 하고) 
再顧傾人國(재고경인국, 두 번 돌아보면 사람 사는 나라를 기울게 하네)
寧不知傾城與傾國(녕부지경성여경국, 성을 기울이고 나라를 기울일 것을 어찌 모르리오)
佳人難再得(가인난재득, 미인은 다시 얻기 어렵네)

음악과 무용에 뛰어난 재능이 있어 한(漢)나라 무제(武帝)의 총애를 받아 협률도위(協律都尉)라는 벼슬을 했던 이연년(李延年)이라는 사람이 쓴 작품으로 <李延年歌>라고 하는 시인데, 때로는 <佳人歌> 또는 이 작품의 첫 구를 따서 <북방유가인(北方有佳人)>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연년은 자신의 여동생을 한무제(漢武帝)에게 소개하기 위해서 이 시를 지었는데, 그는 이 시에서 미인은 성을 엎고 나라를 엎는 위험한 힘을 갖추고 있다고 하면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절세미인의 희소가치에 더 비중을 두고 무제를 유혹하고 있다. 과연 이 노래가 효과가 있어서 이연년의 동생은 한무제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이연년의 여동생은 이부인(李夫人)이 되었다가 사후에는 한무제의 정식 황후로 추존되었던 인물이다.

이부인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큰 병이 들어 세상을 뜰 무렵, 한무제가 찾아와서 마지막으로 그녀의 모습을 한 번 보고자 하였으나 이부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끝내 외면하고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자 친정 가족들은 남겨지는 친정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황제의 청을 들어주었어야 했다고 원망하였다. 

이에 이부인은 ‘자신이 황제의 총애를 받는 것은 다 자신의 미색 때문이다. 그래서 병들어 초췌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황제가 자신의 옛날의 아름다운 모습을 생각하여 남겨진 가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줄 수 있지만, 병들어 미색이 쇠퇴한 모습을 보여주면 자신에 대한 총애가 식어버려 가족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해명하였다고 한다. ‘경국지색’의 주인공인 이부인 스스로가 미색의 힘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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