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기]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생가를 찾아서
[탐방기]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생가를 찾아서
  • 바르샤바=이종환 기자
  • 승인 2018.04.0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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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석 폴란드한인회장이 동행… 한-폴란드 무역역조 심각

바르샤바의 폐허가 된 게토에서 숨어 지내던 유태인 블라디미르 스필만이 한 독일군 장교와 부닥친다. 바로 총살을 당할지도 모를 절대 절명의 순간이다. 장교가 묻고 스필만이 답한다.

“나를 아는가?”
“모른다”
“여기서 일하나?”
“나는… 피아니스트다”
“그럼 연주를 해보라”

약간의 침묵에 이어 쇼팽의 발라드 1번이 피아노 건반을 통해 흘러나온다. 울음을 참는 듯, 흐느끼는듯한 피아노 소리가 전율이 팽팽한 공간을 채운다.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주인공이 스필만이 부닥치는 최대의 위기 장면이다. ‘피아니스트’는 2차대전 때 폴란드 바르샤바의 게토(유태인 격리구역)에서 어렵게 살아남은 유태인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스필만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영화 첫머리에 연주되는 곡은 쇼팽의 녹턴 20번이다.

이 영화 이야기가 나온 것은 쇼팽(1810-1849)의 생가로 가는 고속도로 위에서였다. 쇼팽은 폴란드가 자랑하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다. 생가는 바르샤바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었다.

“3년 전만 해도 이 고속도로가 없었어요.” 고신석 폴란드한인회장이 승용차를 몰며 소개를 했다. 한국에서 가까운 손님이 오면 직접 안내를 한다고 했다. 카오디오를 통해서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쇼팽 녹턴 연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2015년 쇼팽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1등으로 우승했어요. 쇼팽콩쿠르는 세계 3대 피아노 콩쿠르의 하나입니다. 더욱이 5년마다 한번씩 열리기 때문에 우승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지요.” 고 회장은 “조성진이 우승할 때의 쇼팽 콩쿠르 대회는 가보지 못했지만, 우승후 바르샤바에 와서 초청공연을 가졌을 때 현장에 가서 조성진 피아니스트와 기념사진도 찍고 CD도 샀다”고 소개했다. 쇼팽의 생가는 널찍한 공원으로 조성돼 있었다. 대문 양쪽으로 피아노 건반을 연상시키는 건물이 들어서서 입장권 매표소와 커피숍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늦겨울 날씨에 평일이어서인지 쇼팽생가는 찾는 사람이 적어 고즈넉했다. 30여명 무리의 폴란드 학생들이 견학을 온 것 외에는 손님이 없었다.

“쇼팽이 치던 당시의 피아노는 바르샤바의 쇼팽 박물관으로 나들이 갔어요.” 쇼팽 생가 전시관에서 “여기 있던 피아노가 어디 갔느냐”고 묻는 고신석 회장의 질문에 생가 전시관 관리인이 대답을 했다. 당시의 피아노가 쇼팽의 유물인 만큼, 생가의 전시관과 바르샤바의 박물관을 오가면서 전시되는 듯했다.

쇼팽은‘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린 음악천재였다. 6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8세 때에 공연을 가졌다. 1829년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발표하고 빈에서 연주회를 갖는 등 유럽을 돌며 연주 여행을 했다. 그가 빈에 도착하였을 때 바르샤바에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조국을 위하여 싸우러 가겠다”는 편지를 집으로 보냈으나, “음악을 열심히 하는 길도 애국”이라는 답장을 아버지로부터 받고는 그만뒀다. 그 후 바르샤바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혁명‘이라는 격정적인 곡을 쓰기도 했다. 1949년 파리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했으며, 그의 시신에 파리에 묻혔으나 심장은 바르샤바 성십자가교회로 옮겨져 안치됐다.

생가에는 쇼팽 일가족의 얼굴사진들도 전시돼 있었다. 당시 사진이 발명돼 직접 찍은 것일까? 아니면 정교한 초상화 그림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쇼팽 생가 주변으로 조성된 공원을 걸었다. 널찍한 공원 부지 안으로는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숲 속으로 시냇물이 흐르며 연못도 조성돼 있었다.

“여름에는 생가 옆뜰에서도, 연못 주변에서도 음악회가 열립니다. 쇼팽의 곡들이 연주되지요.” 고 회장이 이렇게 얘기하며 사진 포즈를 잡아보라고 권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한인회에서 폴란드 역사탐방을 진행하면서 이곳을 찾아 단체 사진을 찍은 곳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고신석 폴란드한인회장
고신석 폴란드한인회장

고신석 회장은 1999년 LG전자 주재원으로 폴란드에 부임했다고 한다. 주재원으로 6년간을 근무한 후 LG전자 협력회사 법인장을 맡아 다시 6년을 근무하고는, TV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사를 만들어서 종업원 200여명으로 4년간 독립사업도 했다고 한다.

“폴란드는 인건비가 저렴하고 노동유연성이 좋아요. 인력들의 수준도 높아요. 공장을 하기에는 최적지이지요.” 이 같은 조건으로 인해 LG화학이 3조원을 투자해 전기배터리 생산라인을 세우는 등 한국계 기업들의 투자도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 기업이 늘면서 한국으로부터 원자재나 제품 수입도 늘었다. 이 때문에 폴란드는 한국과의 무역역조가 심각하다고 한다.

“폴란드는 그릇이나 도자기, 타일 등이 유명합니다. 돼지고기도 질이 좋아요.” 폴란드 정부도 무역역조 시정을 위해서 폴란드산 제품을 한국으로 내보내려고 하지만 쉽게 시장이 커지지 않는다는 게 고민이라고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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