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우의 문학 산책] 역설의 문학, 최명희의 ‘혼불’··· 엄마꽃이 피었습니다
[장인우의 문학 산책] 역설의 문학, 최명희의 ‘혼불’··· 엄마꽃이 피었습니다
  • 장인우<순천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8.04.05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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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희의 「혼불」 3권에 나온 청암부인의 죽음을 대하는 인물들의 슬픔과 장례절차에 임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희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첫 번째 글로 올렸습니다.<필자 주>

막둥이 외삼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였다. 어릴 적 기억 속 젊은 외삼촌은 많이도 늙어 있었다. 동글동글했던 얼굴은 갸름해졌고, 혈색 좋았던 얼굴 곳곳엔 검버섯이 울멍울멍 피어 있었다. 이마에 깊이 패인 주름은 눈 주위를 타고 맴돌다가 입가로 흘러내려 회색빛으로 까칠거리는 수염 사이에 숨어 있었다. 

외할머니 어깨를 주무르던 조그만 내 손이 인정도 많게 시원하다며 칭찬을 들을 때, 바라보며 말갛게 웃던 젊은 외삼촌은 백자 속 표면처럼 우둘투둘한 웃음을 허옇게 웃었다. 늙은 외삼촌이 내게 물었다. 

“엄마가 많이 아팠냐고.” 

젊은 나는 대답했다. “한 달 정도 ……, 많이 아팠다고, 연명치료조차 할 수 없었다고.”

외삼촌은 말이 없었다. 흐릿한 눈이 천장 이곳저곳을 떠돌 뿐이었다. 삼선 슬리퍼 밖으로 나와 있던 내 발가락뭉치들은 바닥에 웅크린 채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누군가의 손이 내 등을 두드렸다. 

“엄마, 외할머니 만나러 가자.” 멍했다. 가족들이 우르르 몰려가고 있었다. 모두들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만, 서둘러 가는 발걸음들이 뒤섞여 울리고, 설핏설핏 울음소리가 뒤섞여 울려왔다. 

온통 차가운 것들뿐이었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곳의 문은 철로 되어 있었다. 비둘기색 문은 무심한 듯 차가운 정열로 육중한 몸을 밀 테면 밀어보아라 듯 버팅기며 열렸다. 엄마가 있었다. 단장을 마치고 눈을 감은 채 누워 있는 엄마는 고요했다. 

“할머니, 우리 천국에서 만나자.” 말하던 조카가 여리게 울고, 아들들과 손주들, 며느리들이 제각기 준비 없는 울음을 울 때, 딸인 나, 4월의 마지막 날에 엄마를 보고 있었다. 엄마가 보여주는 부분만을 보면서 “엄마, 엄마, 눈 떠봐. 눈 떠봐.” 점점 커져가는 내 외침 속에서 “마지막 인사 나누세요.” 관리인의 말이 들려왔다. 

가족들이 몰려와서 한마디씩 하며 눈물을 떨어뜨리는 사이에도 엄마는 눈을 뜨지 않았다. 낯선 엄마의 차가운 침묵이 쩌렁쩌렁 울부짖는 막내딸의 주문 속에서 열기를 더해가고 있을 때  엄마의 무릎에 피어 있던 꽃이 덮이고, 엄마의 배꼽 부분에 피어 있던 꽃이 덮이고, 엄마의 가슴에 피어 있던 꽂이 덮이고, 마지막 얼굴이 덮여갈 때, 엄마는 엄마는 거대한 나무가 되고 있었다.

이별의 말은 각자의 것이고, 눈물의 의미 또한 각자의 것인 속에서 ‘엄마, 안녕.’ 이라는 짧은 말로 마지막 인사를 조용히, 천천히 해내고 싶었던 큰오빠는 괴로운 듯 “김 서방, 자네가 정리하고 나오소.” 내뱉듯 말하고 나갔다. 

남편과 아들들의 부축을 받으며 육중한 비둘기색 문을 나와 곧바로 방에 누웠다. 

“엄마, 우리 엄마 어떻게 해.” 울다가 잠이 드는가 싶었는데 “우리 엄마가 꽃을 피웠어. 우리 엄마가 꽃을 피우고 있어. 우리 엄마는 온몸으로 나무가 되었어. 수령, 얼마나 되었지. 백 년, 이백 년, 아니야, 삼백 년이나 된 나무야.” 웅얼웅얼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얼마나 되었을까? 눈을 뜨면서 나는 보았다. 엄마, 우리 엄마 온몸에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하늘에 퍼지는 불꽃처럼, 노랗게 톡톡 튀어 오르는 팝콘처럼 우리 엄마 가슴에서 피던 꽃이 옆구리로 퍼져 피어나고, 옆구리를 타고 퍼져가던 꽃이 겨드랑이 움푹 패인 곳에까지 퍼져 피어나고 있었다.

엄마는 살아서 꽃을 받아 본 날이 거의 없었다. 땅에 심어서 가꾸고 화병에 꽂아보는 소담한 날들도 없었다. 꽃향기를 그리워해 볼 새도 없었다. 그런데 생을 마치고 나서야 꽃을 피워낸 것이다. 생애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나서야, 자신이 처음 왔던 별로 다시 돌아가는 날이 되어서야 당신에게 주어진 책무, 수백만 송이 꽃을 피워낸 것이다. 그렇게 별로 돌아간 것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옆자리 조금 떨어진 곳에서 큰오빠가 자고 있었다. 막내 여동생의 울음소리를 매몰차게 ‘시끄럽다’ 고함을 내지르던 큰오빠가 지쳐 쓰러진 듯 자고 있었다.  

[필자소개] 
전라북도 정읍 태인생, 순천시 거주
순천문인협회, 팔마문학회 정회원,
전남교육청 학교폭력방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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