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성장과정과 고민, 해밀학교 출범과정도 소개
“1028번은 제게 뼛속까지 각인돼 있는 수입니다. 펄벅재단에서 제 번호가 1208번이었습니다. 펄벅재단은 미국인 아버지를 가진 해외 혼혈 아이들을 후원했습니다. 소설 ‘대지’ 작가 펄벅이 만든 재단이지요”
가수 인순이씨가 4월7일 제주컨벤션센터에서 강연자로 무대에 올랐다. 세계한인무역협회(회장 박기출)가 개최한 제20차 세계대표자대회에 강연자로 초빙된 것.
“후원을 받는 우리는 정기적으로 미국에 있는 양부모님들한테 편지를 써야 했습니다. 조석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쌀쌀해졌습니다. 저는 키는 얼마나 자랐고,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 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의 편지들을 분기별로 써보냈습니다.”
인순이씨는 펄벅재단의 이같은 도움으로 성장했다면서, 미국에서 보내오는 구제품 옷을 어머니와 함께 나눠 입었다고 소개하며, 말을 흐리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경험으로 인해 가수로 40년을 지낸 2014년 지금의 해밀학교를 개교했다고 소개했다. 자신과 비슷하게 태어난 아이들이 진정한 한국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든 학교였다. 처음 6명으로 시작한 학교가 그 사이에 6번의 입학식을 가졌고, 3회의 졸업식을 치렀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수영도 가르치고, 코딩도 악기도 가르칩니다. 그리고 농사도 가르칩니다. 공들여 키운 농작물이 비바람에 시달리는 것도 보고, 작은 돈으로 팔려나가는 것도 보면서 경제도 연민도 사랑도 배우도록 합니다. 봄에 키운 옥수수를 여름에 배고는 무와 배추, 고추 등을 다시 심어 김장을 합니다. 학생들이 모두 같이 합니다.”
이들 해밀학교 학생들을 위해, 그리고 주변 고등학생들을 위해 해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재능기부 강연이나 이벤트를 해준다고 했다.
“한번은 영어를 쓰는 미국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름이 순자 명자인 사람들인 겁니다. 미국으로 입양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머니를 찾는다고 했으나 아직 못찾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와 같이 울었습니다. 저는 못입고 굶으면서 살았지만, 어머니가 있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어머니가 나를 버리지 않은 것이 고마웠습니다”
이날 인순이씨의 강연은 ‘다름과 차이, 따뜻한 공동체로’라는 제목이었다. 그는 다름과 차이를 자신의 경험으로 소개했다.
“보디빌더에 도전했더니 태닝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내 피부가 쵸코렛색인데도 안된다는 겁니다. 결국 4번을 태닝했어요. 남들은 10번하는 것인데 저는 4번만 했으니 제 쵸코렛색 피부가 장점이 된 거지요.”
그는 흑인혼혈의 애플힙에 대해서도 ‘오리궁둥이’를 만들어야 하는 보디빌딩에는 콤플렉스가 아니라 장점이 되더라고 덧붙이며,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진다고 소개했다.
월드옥타는 지난해 가을 경제인대회때 인순이씨가 경영하는 해밀학교를 위해 회원 모금활동을 펼쳤다. 이번 강연은 그같은 지원에 감사하는 뜻에서 인순이씨가 자신의 성장과정과 해밀학교 설립 동기, 운영 등을 강연으로 소개한 것이었다. 노래와 함께 시작된 이날 강연은 인순이씨가 좋아한다는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 낭독과 자신의 노래 ‘거위의 꿈’으로 끝을 맺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대추 한 알’에서)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히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 등뒤에 흘릴 때도 난 참아야 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 날을 위해...."(‘거위의 꿈’에서)
강연이 끝나자 연단 아래서는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우리가 앞으로 함께 가야할 길이지요.
인순이씨의 거위의 꿈 이 해밀학교로
승화되었네요...
앞으로 해밀학교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지 않고 꿈들을 이루어나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