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150] 무릉도원도
[아! 대한민국-150] 무릉도원도
  • 김정남 본지 고문
  • 승인 2018.04.21 0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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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조선 중기에서 후기에 이르면 수많은 화가와 그림들이 나타나고, 진경산수라는 조선회화사에 새로운 흐름도 나타난다. 그러나 조선초기의 화가와 작품은 흔하지 않은데, 안견의 몽유도원도(1447년 작)가 압권이다. 이 그림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독창적인 미감과 구성, 그리고 당대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명품이다. 안견은 안평대군으로부터 자신이 꾼 꿈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3일 만에 이 그림을 완성했다. 그 꿈은 이랬다.

안평대군이 벗들과 어울려 복숭아꽃이 떠내려 오는 물길을 거슬러 오르니 험한 산과 구릉이 이어졌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고산준령을 넘어서자 복숭아꽃 만발한 아늑한 동네가 펼쳐졌다. 그 곳에는 사람이 없고 빈 배만 있었다. 이는 도연명의 도화원기와 겹친다.

안견은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섬세하게 표현하려고 비단에 그림을 그렸는데 당시로서는 만만치 않은 크기(38.7cm X 106.5cm)였다. 이 그림은 구성부터가 예사롭지가 않다. 현실세계와 비현실세계를 함께 그려넣은 것이다. 그림은 왼쪽 4분의 1이 현실이고 나머지는 비현실이다. 현실세계는 매우 사실적으로 그린데 비해 비현실 부분은 과장과 상상을 섞어 환상적 분위기를 한껏 살렸다.

현실의 풍경은 당대의 경치를 그대로 그려낸 것처럼 산의 생김이나 강의 흐름 또한 상식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현실의 평범한 풍경에서 시작된 길은 비현실세계로 들어서면서 고산준령과 기암절벽을 만난다. 과장된 산세는 짙은 명암의 대비 탓에 움직이는 듯 보인다. 솟구치듯 불쑥 솟은 절벽과 괴기스러운 바위는 쏟아질 듯하다. 마치 산이나 절벽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형국이다.

감히 다다를 수 없을 것 같이 까마득한 높은 절벽을 울타리처럼 두르고 있는 그 너머에는 복숭아나무 화사한 꽃밭이 펼쳐진다.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놀았다는 그 무릉도원이다. 무릉도원은 부드러운 구름 속에 잠겨있다. 험준한 산세 속에 있는 탓에 한결 도드라지고 또 평화스러워 보인다. 복숭아나무는 비상식적으로 크고 위에서 지그시 내려다보는 것처럼 그려서 그런지 한없이 아늑하다. 말 그대로 유토피아적 분위기가 한껏 풍기는 복숭아나무 동산이다.

이 그림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이 흘러가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 풍경이 펼쳐지는 구성을 택했다. 가로쓰기 문화에 익숙한 오늘의 우리 눈에는 편안한 전개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시선을 유도하던 당시의 일반적인 구성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과감한 시도를 한 셈이다.

이처럼 크고 아름다운 걸작이 나오자 당시 안평대군을 따르고 친교를 하던 많은 문인사대부가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데, 이 그림에는 자그마치 스물한명의 감상평이 붙어있다. 이 중에는 수양대군과 대립했던 김종서, 성삼문 등도 있고, 신숙주처럼 당대 정치적 흐름을 탔던 인물도 있다. 평가의 대체적인 흐름은 조선 건국의 당위성과 번영을 염원하는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고, 이와 달리 무릉도원에 대한 상상적 분석으로 인생의 허망함을 낭만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도 있다.

조선회화를 여는 대문 격인 이 귀중한 그림을 안타깝게도 우리는 쉽게 보지 못한다. 일본이 중요문화재로 지정해놓고 그 노출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일본으로 넘어갔는지는 명확하게 알 길이 없다. 이후 여러 사람의 손을 타다가 1955년 덴리(天理)대 중앙도서관에 소장됐다. ‘몽유도원도’의 가치를 알아보기 시작한 한국의 움직임을 피하기 위해 개인소장자가 기증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 그림은 두번 고국 나들이를 했다. 1950년에는 일본인 소장가가 우리 미술계에 매물로 내놓았는데 구매자가 없어 되돌아갔고, 2009년에 국립중앙박물관이 대여형식으로 들여와 특별전으로 10일간 전시되었다. 이 그림은 우리가 반드시 환수해야만 할 국보급 예술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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