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병동 10A 병실 1024호
[해외기고] 병동 10A 병실 1024호
  •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4.23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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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달 동안 기관지염 증세가 점차 심해지면서 최근에 호흡장애를 일으키게 됐다. 심한 기침으로 인해서 갈비뼈에 손상을 입기도 했다. 매순간 공기를 들이마시며 숨을 쉬는 것은 자연스런 생체현상이라서 그 중요성을 미처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내 몸에 휴식이 필요하다는 경고신호를 이미 여러 번 받았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게 불찰이었다.

그 결과로 미련 곰탱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의사는 나의 기관지염증이 심각한 상태라서 항생제 치료를 집중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리고 입원하는 날부터 간호사들이 나를 호칭할 때는 이름보다 10병동의 1024호로 불렀다.

일주일동안 입원해 있으면서 매일 3교대를 하는 수많은 간호사들을 만났다. 그들을 통해서 나이팅게일에 대한 환상이 깨어진 경우도 있었고 그들의 직업이 참으로 힘들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기도 했다. 손등에 주사액을 넣기 위한 연결부를 찌르는데 미숙한 기술로 인해서 정맥의 피가 불끈 거리며 솟아나는 것을 보며 마음이 상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혈액응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매일 아침에 배 주위에 주사를 놓는데, 초보와 노련한 간호사의 차이는 주사바늘을 빼고 나서 얼마만큼의 피가 스며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호주에 온 이래로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을 병원에서 보낸 적이 결코 없었다. 한겨울의 날씨를 느끼게 하는 낮은 온도의 에어컨과 밤새 환하게 켜진 형광등 불빛으로 인해서 잠을 거의 잘 수가 없었다. 4명의 침대가 있는 병실에는 나를 제외한 3개의 침대에 매일 다양한 응급환자들이 머물다 떠나는 것을 지켜보며 삶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간호사들이 나를 표현할 때 사용하던 말, 행동을 스스로 할 수 있는 환자 (independent patient)가 그래도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 에피소드 1; 치아를 찾는 할머니 -

연세가 90세 넘어 보이는 소피아 할머니가 초저녁에 옆 침대로 입원하셨다. 양로원에서 긴급 입원하신 분인데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화를 내며 말을 잘 듣지 않는 것 같았다. 겨우 커튼하나로 칸막이가 된 병실에서는 모든 소리가 듣지 않으려고 해도 자연히 귀에 들어오게 되어있다.

할머니는 “내 이빨이 어디에 있어,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라는 말만을 반복하며 진료를 거부하고 음료도 드시지를 않았다. 나이 지긋한 간호사는 “할머니는 지금 마타병원(Mater Hospital)에 있어요. 이빨은 당신의 딸이 가져갔습니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똑같은 말을 계속해서 주고받는데 옆에서 듣고 있으니 참으로 우습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딸에게 당장 전화해주고 당신의 이빨을 가져오라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당혹스런 간호사는 딸에게 전화를 해서 할머니와 통화를 하게 했는데, 딸이 할머니의 치아를 가지고 있다고 대답하니, “너는 왜 내 허락도 없이 내 이빨을 가져갔니. 당장에 가져와.”

치매에 걸린 노인답지 않게 또렷한 발음으로 자신의 의사를 말하는 것을 들으니 놀랍기도 하고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의사는 수술 전에 할머니에게 단식을 시키기 위해서 틀니를 뺐었던 모양이다. 간호사가 나가면서 커튼을 걷었는데 메마른 작은 체격의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아서 매서운 눈길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곤 나에게도 같은 질문을 물었다. “너는 저 사람들을 믿니? 그리고 너는 내 이빨이 어디에 있는지 아니?” 휴... 할머니 제가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저는 간호사를 믿어요. 그리고 저도 할머니 이빨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답니다.

-에피소드 2; 기저귀 찬 할머니 -

물리치료를 받고 병실로 돌아가니 심한 구린내가 속이 뒤집힐 만큼 진동하고 있었다. 맞은편 침대에는 양로원에서 입원시킨 80대 중반의 할머니 환자가 있었다. 양로원 침대에서 떨어졌는데 얼굴의 반쪽이 완전히 보라색 피멍으로 변했고 눈을 뜨지 못하고 죽은 사람처럼 누워있었다.

십여 명의 의사와 간호사 들이 둘러서서 그 환자를 보고 있었다. 무의식 상태에서 변을 본 할머니를 간호사 두 명이 기저귀를 갈고 몸을 닦아주는데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그 일을 하는 것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호주에서 간호사 일이 힘들다는 말은 들었지만 내 눈으로 확인하기는 처음이었다. 주사 바늘을 몇 번씩 잘못 찔러서 나를 힘들게 했던 원망이 어느새 존경심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다양한 병력의 환자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정신질환을 가진 40대의 남자가 격리 병실에서 밤새 소리를 질러서 다른 환자들과 간호사들을 몹시 힘들게 했었다. 다음날 아침 그 남자의 병실 앞을 지나다 보니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다 큰 아들에게 밥을 먹여주고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바로 그 모습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가지는 모성애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체가 불편하고 몸집이 큰 환자를 휠체어에 앉혀서 남자간호사가 작은 기중기로 들어 올리는 모습도 보았다. 밤새 전화로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던 여자환자는 나를 불면증 환자로 만드는데 기여를 했다.

하지만 다들 몸이 아파서 의사와 간호사의 도움이 필요해서 입원했던 환자들이었다. 모두들 건강을 회복하기를 빌어본다. 그리고 할머니의 이빨은 이제 제자리에 있겠지 하는 기대를 해보고, 피멍든 할머니의 얼굴도 본래대로 곱게 치료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이가 들어도 치매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자신들의 삶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좋겠다. 100세 시대라는 말도 부담스럽게 들린다.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스스로 움직이고 생각하며 자유인으로 사는 것이다. 호되게 아프고 나서야 가장 평범한 진리인 건강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다. 내가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있고 혼자서 먹을 수 있다는 작은 행동에도 그저 감사하는 마음이 들 뿐이다. 수난의 시간이 지나면 빛의 부활이 다가온다는 믿음에 의지해본다.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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