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春秋]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대륙春秋]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팽철호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중어중문전공 교수
  • 승인 2018.04.24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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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시가에서 나온 성어 또는 성어처럼 쓰이는 어구 중에는 한국에서는 흔히 쓰이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별로 언급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한국의 정치권에서 특히 선호하는 것인데, 공안정국 하에서 엄혹한 사정의 칼날이 번득이는 시기가 봄과 겹칠 때의 신문지상에는 어김없이 이 말이 등장하곤 하였다.

2018년 4월에도 여의치 않은 여러 가지 경제사회적 문제를 진단하는 문맥에서 이 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올해처럼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봄날에도 자주 쓰인다. 이처럼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한국 사람들에게 상당히 익숙한 말이다. 그렇지만 이 말이 다음과 같은 시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북쪽 흉노 땅에는 꽃과 풀이 없어서)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저절로 허리띠가 헐거워졌지)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일부러 허리를 줄인 것은 아닐세)

당(唐)나라 사람 동방규(東方虯)가 지은 <소군원(昭君怨)>이라는 제목의 3수의 연작 절구 중 세 번째 작품이다. <소군원(昭君怨)>은 한(漢)나라 원제(元帝)의 명에 따라 흉노(匈奴)와의 화친을 위해 북방 흉노의 선우(單于)에게 시집간 왕소군(王昭君)을 추모하는 작품인데, 이 제3수에는 기후와 풍토가 척박한 곳에서 생활하는 왕소군의 고통이 잘 드러나 있다.

여기서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문자 그대로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라는 뜻이다. 그보다 남쪽이라면 꽃이 피는 시기이겠지만, 북쪽 흉노 땅에는 아직 그런 봄기운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꽃샘추위와 관련해서 사용하는 것은 이 말의 본래 뜻 그대로 사용한 것이고, 정치나 사회 문제와 결부시켜 사용할 때에는 이 말을 비유적으로 사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중국의 고전 시가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잘 모르면서도 그것을 친근하게 사용하지만, 이 말의 원산지인 중국에서는 이 말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채롭게 다가온다.

팽철호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중어중문전공 교수
팽철호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중어중문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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