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한식날의 단상
[이영승의 붓을 따라] 한식날의 단상
  • 이영승(영가경전연구회 회원)
  • 승인 2018.04.3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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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寒食)은 설, 추석, 단오와 더불어 우리나라 4대 명절의 하나이다. 한식은 동지로부터 105일 후인데 보통 4월5일이나 6일쯤 된다. 그래서 음력 24절기의 청명(淸明)과 날이 자주 겹친다. 우리 말 속담에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말이 있다. 두 날이 이토록 가깝다는 뜻이다. 

한식이라는 명칭은 중국고사에서 나온 말인데 두 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계절적으로 이때쯤 바람이 심하기 때문에 이날 하루 불을 피우지 말고 찬 음식을 먹는 옛 풍습에서 나온 말이며, 다른 하나는 춘추시대 진(晉)나라 충신 개자추가 진문공과 19년간 망명생활을 하며 충심으로 보좌했는데 식량이 없을 때 자기 허벅지 살을 도려내어 먹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문공이 뒷날 군주가 되자 그를 잊어버리고 등용하지 않았다. 그러자 실망한 개자추는 면산(綿山)에 들어가 은거했는데 뒤늦게 깨달은 문공이 불러도 나오지를 않았다. 문공은 그를 나오게 하기 위해 산에 불을 질렀으나 끝내 나오지 않고 나무를 끌어안고 숨진 채 발견되었다. 이에 문공이 그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이날 하루 불을 사용하지 말고 찬 음식을 먹도록 하는 영을 내려 풍습이 생겼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민간에서는 이날을 조상 산소를 찾아 성묘하고 사초(莎草: 무덤에 떼를 입히고 다듬는 일)하는 날로 자리매김하였다. 나는 이날이 되면 어김없이 아버지 생각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89세까지 사셨는데 환갑이 지나시고 몇 년쯤 후 할아버지 묘소 앞에 당신의 묘 터를 잡아놓고 무척이나 흐뭇해하셨다. 뿐만 아니라 혹시나 다른 사람이 갑자기 그 터에 묘를 써버릴까 걱정하여 가묘(假墓)를 만들어 놓고 한식 때면 찾아가 묘를 돌아보셨다. 나는 그러한 아버지의 심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아버지의 그 심리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50세가 넘은 먼 후일이다. 당시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서울 근교 왕릉들을 답사하고 있었는데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동구릉을 답사했을 때이다. 태조 이성계는 팔방으로 자신의 묘 터를 찾아다니다가 드디어 지금의 동구릉 터를 잡았다. 궁궐로 돌아오는 길에 망우리고개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는데 동행한 신하에게 “나도 이제 근심을 덜었노라”라고 말을 했으며, 훗날 그 고개를 망우(忘憂)라고 이름 했단다. 그 유래를 들었을 때 비로소 나는 가묘를 돌보며 만족해하시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이제 조상에 대한 관심이 분명 예전 같지는 못하다. 그래도 한식 전후가 되면 온 산천이 성묘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을 보면 조상숭배사상은 아직도 대단하다. 나는 지난해 한식 때 성묘를 갔다가 귀경 시 교통정체가 극심해 초죽음이 된 적이 있다. 평소 두 시간 남짓 걸리던 길인데 무려 열 시간 넘게 걸렸다. 

다음날 일어나 몇 년 전 선배의 권유로 남몰래 한번 써보았던 유서를 컴퓨터에서 찾아내어 수정하였다. ‘내 사후 절대 매장은 하지 말 것이며, 화장한 재는 집 근교의 산 나무 밑에 묻어 달라.’는 말을 추가한 것이다. 아무것도 세상에 기여하지 못한 보잘 것 없는 이 한 몸, 자손을 괴롭히고 자연을 훼손 할 것이 아니라 마지막 떠날 때 한 그루의 나무에라도 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속죄의 마음에서였다. 

조상과 자손의 경계에서 잠시 머물고 있는 내 인생, 진정 근심을 덜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참으로 풀 수 없는 난제의 화두로다! 무술년(戊戌年) 한식날을 맞아 집 근처 동구릉 경내를 산책하면서 잠시 떠올려 본 단상(斷想)이다.

필자소개
​수필문학으로 등단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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