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산책] 그림책 속에 사는 도형 이야기
[달팽이 산책] 그림책 속에 사는 도형 이야기
  • 현은순 북경한국국제학교병설유치원 원감
  • 승인 2018.05.05 0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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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동동 거미동동(1편)

이 그림책은 제목부터 재미있다. 저절로 리듬을 넣어 ‘시리 동ˇ동ˇ 거미 동˜동˜˜’ 읽게 된다. 이 이야기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꼬리 따기 놀이 책이다. 꼬리 따기 놀이는 에메랄드빛이 감도는 바다 위로 하얀 바람이 부는 마을에서 시작한다. 속표지를 넘기면 아무것도 없는 백지 위에 덩그러니 삼각형 하나 떠 있다.

삼각형의 정체가 궁금하다. 책을 읽으며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아이들은 이 삼각형을 고래 지느러미 혹은 모자, 종이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한 장 한 장 넘기며 등장인물들을 바라보다 보면 궁금증을 풀어내기도 전에 주인공들의 매력 속으로 빠져버리고 만다.

권육덕의 그림책(2003) ‘시리동동 거미동동’은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우도’라는 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궁금증을 따라 산호 해변이 있는 우도로 달려갔다. 작가가 서 있었을 배에서 우도 너머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삼각형이 눈앞으로 확 다가왔다. 삼각형은 바다 위에 둥둥 떠 있었다. 속눈썹이 바르르 떨렸다. 삼각형은 우도 앞 종달리 해변에 봉긋 솟은 지미봉이었다. 

바다 수면에서 바라다 본 지미봉은 아득하다. 물질나간 엄마를 기다리며 하루 종일 바라보았을 저 지미봉. 아이 눈에는 수평선에 맞닿은 아득히 먼 곳이었을지 모른다. 작가는 아이의 시선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있다.  

책 속의 삼각형, 바다에서 촬영한 지미봉

그림책에는 애써 꾸미려 하지 않는 도형들이 산다. 도형 속에는 섬사람들의 삶 이야기가 있다. 이 책은 도형 찾기 놀이를 할 수 있을 만큼 모든 대상들이 단순한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섬 아이 얼굴은 바닷가 조약돌 같이 둥글둥글하다. 동물 친구들로 비슷하다. 단순한 표현이 오히려 친근함을 느끼게 한다. 

돌담이 꽉 들어선 곳이 몇 군데 있다. 이 섬 어디에서나 비정형화된 돌들로 쌓아진 돌담들을 볼 수 있다. 거친 비바람에 깎인 울퉁불퉁한 모습이다. 닮은 모습은 있어도 크기나 모양에서 똑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정겹다. 

앞표지에는 돌담 앞에 등장인물들이 나란히 앉아 있다. 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서로 눈길을 주고 맞지 않는다. 돌담의 돌과 돌 사이에는 도형들이 숨어있다. 그 도형 사이로 두 점 나란히 아이의 눈이 보인다. 짙은 암갈색의 돌담과 대조를 이루며 빨간 옷을 입은 아이의 눈이 또랑또랑하다.

뭔가에 집중하여 골똘히 바라볼 때의 아이들의 눈은 언제나 빛난다. 아이는 돌담 사이로 무엇을 보고 있을까? 바다 갈매기처럼 먹잇감이라도 발견한 것일까? 우도 갈매기는 매일 아침 성산일출봉의 붉은 햇살을 베어 먹고 사냥을 나선다. 아이의 눈은 서서히 갈매기 눈을 닮아갈 것이다. 

그림책 속의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돌담 구멍 사이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세모 모양, 지느러미 모양, 나비 모양, 부채 모양 등 구멍의 형태는 다양했다. 구멍으로 바라보는 하늘과 바다 그리고 보리밭의 풍경은 액자 속 사진 같았다. 어릴 적에는 돌담을 경계 삼아 동네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곤 했다. 그 때 돌담 구멍은 술래의 동태를 살피는 망(望)이었다.

돌과 돌 사이의 구멍은 삶의 이야기가 들고 나는 숨구멍이기도 하다. 해 저문 저녁이면 구멍 사이로 해녀들의 거친 숨소리가 섞인 푸념이 오고간다. 그러다 바다가 폭군이 되어 와락 고깃배를 집어 삼키는 날이면 초가집 돌담구멍 사이로 긴 한숨들이 파도처럼 들락거린다. 그림책 속 아이의 어머니도 삶도 녹녹하지 않다. 바다에 남편을 빼앗기고 실컷 울지도 못한 가슴 한구석에 구멍이 생겼다. 세월 따라 그 구멍은 딱딱 굳어져 집 앞 돌담에 비문처럼 새겨져간다. 이 섬 앞 바닷가에는 오랜 세월동안 구멍과 구멍 사이로 그 거센 바람들을 다 통과시키며 무너지지 않고 온전히 서 있는 환해장성들이 남아있다. 우도 돌담에도 오랜 세월 환해장성을 닮은 단단한 해녀들의 삶 이야기가 묻어있다.

제주도 김녕 바닷가의 환해장성

필자소개
북경한국국제학교병설유치원 원감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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