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기] 북경 단재투어…독립투사들의 활동지 돌아
[동행기] 북경 단재투어…독립투사들의 활동지 돌아
  • 북경=이종환 기자
  • 승인 2018.05.07 15: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보차이나문화원이 추진…홍성림 박상일씨가 안내 맡아
단재 신채호선생과 우당 이회영선생이 일시 거주했던 난뤄구샹. 이곳은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다.
단재 신채호선생과 우당 이회영선생이 일시 거주했던 난뤄구샹. 이곳은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다.

“청나라때 유명했던 현량사(賢良寺)라는 절이 저기에 있었어요. 청나라 고관대작들이 자주 다녔던 곳으로, 단재 신채호선생도 북경에 계시면서 이곳을 가끔 들렀는지 자작시를 남겼습니다.”

북경 단재투어 가이드를 맡은 홍성림 보보차이나문화원장이 왕부정 일대를 지날 때 이렇게 설명하며, 단재 선생이 쓴 시 한편을 소개했다. 보보차이나문화원은 보보여행사(대표 정원순) 부설기관이다.

“집 주고 돈도 주니/ 통부처 대가리에 이백년 청실(청실) 은혜/ 산같이 쌓였어라/ 은혜를 못 갚을 망정/ 눈물조차 없단 말가”

청나라 국운이 쇠퇴하는데 현량사 부처님은 나라 망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다고 한탄하는 내용으로, 단재의 문학적 천재성이 읽히는 짧은 시다.

이어 버스가 정차한 곳은 북대홍루(北大紅樓)였다. 고궁으로 불리는 자금성 뒤쪽에 있는 과거 북경대 도서관 건물로, 붉은 벽돌 건물이어서 홍루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지금 북경대는 해전구로 이전했지만, 자금성 뒷쪽에 있던 시절 북경대는 5.4운동의 산실이자, 중국 공산주의 사상의 탄생지이기도 했다.

북대홍루는 1층에 과거 모택동이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던 장소와 도서관장인 이대조의 집무실, 북경대 교장이던 채원배의 사무실, 노신이 강의했던 교실 등이 옛모습으로 재현돼 참관객을 받고 있었다. 모택동은 이 도서관에서 이대조로부터 마르크스사상을 배워서, 중국공산당을 이끌고 지금의 중국을 만들었다.

중국 신문화운동인 5.4운동의 시발점도 이곳이었다. 미국 윌슨의 민족자결운동과 우리나라 3.1운동에 자극을 받은 북경대 학생들은 5월4일 이곳에서 출발해 천안문으로 행진했다. 당시 이들이 시위 때 내건 구호를 담은 플래카드들도 재현해 전시돼 있었다. 홍루 앞마당의 별관에는 북경신문화운동기념관이 있어서 5.4운동에서 건국까지의 주요 활동을 사진과 잡지 유물 등으로 정리해놓고 있었다.

북경 단재투어 일행이 이곳을 찾은 것은 어린이날이 5월5일이었다. 마침 하루 전날이 5.4운동 기념일인데다 5월5일은 마르크스탄생 200주년으로 중국인민대회당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참가한 가운데 대형 기념식이 열리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단체 관광객들이 꼬리를 물고 몰려들었다.

북대홍루를 참관하러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북대홍루를 참관하러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도 이곳 도서관을 자주 드나들었던 것같다. 단재는 북경에 체류하던 시절 북경대 도서관장이었던 이대조 등 중국 지식인들과 깊은 교류를 했다. 그들의 도움으로 일반인들이 들어가기 어려운 청황실 도서관도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단재가 ‘조선상고사’를 집필할 때였다.

이날 단재투어는 아침 9시 북경 한인밀집지역인 왕징에서 출발해 오후 3시반 끝이 났다. 기자는 이날 오전에는 주중대사관저에서 열린 ‘어린이날 가족소풍’을 취재하고 오후부터 단재투어에 합류했다. 이날 오후 투어단은 단재선생의 부인인 박자혜여사가 수학한 협화의원, 그리고 인근에 있는 고려기독청년회본부, 의열단이 본부를 둔 것으로 알려진 골목, 이육사 시인이 고문으로 숨진 곳, 단재와 이회영 선생이 거주한 난뤄구샹 등을 돌았다.

이날 홍성림 원장과 함께 안내를 맡은 박상일씨는 “2년간 발로 뛰어서 만든 것”이라면서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한 연고지들을 담은 지도를 나눠주었다.

“단재 선생이 활동한 장소는 다소 기록이 있지만, 우당 이회영이나 약산 김원봉은 어디에 머물렀는지 기록을 찾기 어렵습니다. 일본 경찰과 밀정이 득시글한 데서 독립운동가들이 주소를 드러내놓고 활동할 리가 없잖아요. 이름조차 모두 가명으로 썼고요.”

박상일씨는 “독립운동가들의 연고지나 유적을 찾기가 무척 어렵다”면서 “하지만 활동지역을 가보면 왜 그런 곳이었는지 짐작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앞으로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한 흔적을 계속 찾아내겠다"면서 "특히 난뤄구샹에 단재기념관을 만드는 것이 최대의 목표"라고 덧붙였다. 

이날 단재투어는 단재 연고지는 물론, 이육사 시인이 고문으로 숨진 곳과 약산 김원봉 선생이 활약한 곳을 둘러본 후 단재가 일시 머물고, 또 우당 이회영선생도 일시 머물렀던 난뤄구샹 방문으로 끝을 맺었다. 투어 소감으로 '단재' '신채호' '단재 신채호'로 2행시, 3행사, 5행시를 지으라는 주문에, 기자는 ''단재 행적 둘러보며/ 재주와 뜻 나라에 바친데 옷깃 여미네"라고 써냈다.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의열단을 이끌며 활동한 곳으로 알려진 외교부거리.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의열단을 이끌며 활동한 곳으로 알려진 외교부거리.
우당 이회영선생이 일시 거주했던 난뤄구샹의 집 입구.
우당 이회영선생이 일시 거주했던 난뤄구샹의 집 입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