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151] 시래기
[아! 대한민국-151] 시래기
  • 김정남 본지 고문
  • 승인 2018.05.12 0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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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무는 흔히 인삼에 견주어 말해지기도 한다. 인삼이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려 땅속의 온갖 지기(地氣)를 빨아올려 그 신비한 약효를 내듯이 무 역시 땅 속의 영양을 흡수하는 것이 인삼에 버금간다는 것이다.

무가 땅 속에 묻혀 있는 뿌리라면 무청은 밖으로 나와 있는 무의 줄기를 말한다. 시래기는 그 무청을 겨우내 말린 것이다. 차고 그늘진 곳에 빨래 널듯이 가지런히 걸어 시래기를 말리는 풍경은 가을걷이가 끝나갈 무렵부터 시골동네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다.

채소가 귀한 겨울철을 대비해 미리 말려 두었다가 그때그때 삶거나 볶아서 한겨울 내내 먹었던 시래기는 먹거리가 넉넉지 않았던 시절, 허기를 채우는 겨울철의 중요한 음식 재료였다. 6.25전쟁 통에는 쌀을 아끼기 위해 시래기밥이나 시래기죽을 끓여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배고팠던 그 시절, 자식을 배불리 먹이고 싶었던 어머니는 가장 흔한 시래기를 들깨로 영양을 더해 보약과도 같은 시래기국을 끓였다.

시래기는 겨울철 인간의 체내에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C를 보충할 수 있고, 미네랄과 식이섬유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 최근 들어서는 건강식으로 널리 애호받고 있다. 된장을 풀어 심심하게 풀어내는 시래기 된장국이나 잘게 썰어 무쳐 먹는 시래기나물 등의 형태로 시래기는 우리의 식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오늘날 현대인에게 가장 좋은 음식은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제철 야채와 나물들을 섭취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시래기가 새삼 각광받고 있다.

농촌진흥청에서도 생육이 왕성해 잎줄기가 많고 초록색이 짙은 양질의 시래기를 생산할 수 있는 육종을 개발, 보급하고 있다. 전통시래기의 억센 식감을 꺼리는 젊은 세대를 겨냥해 재배기간을 줄여 부드럽고 연한 시래기를 생산, 판매하는 경향이 확대되고 있다. 예전에는 무를 수확하다 보면 저절로 나오기 마련인 무청을 말려 시래기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무청을 목적으로 무를 재배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

이러한 경향과 함께 강원도 양구의 펀치볼이 시래기의 주산지로 떠오르고 있다. 펀치볼은 양구군 해안면의 별칭인데, 6.25전쟁 당시 외국 종군 기자가 해안면의 지형이 화채그릇(punch bowl)을 닮았다고 쓰기 시작하면서 정착된 이름이다. 이곳 시래기는 8월 중순에 무를 심어 10월 말에 시래기만 수확한다. 무를 오래 놔두면 여기서는 일찍 다가온 추위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무는 포기하고 시래기만 수확하는 것이다. 펀치볼 시래기는 말린 시래기를 삶아서 다시 씻어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고, 소포장으로 전국에 판매되고 있다.

특별하지도 거창할 것도 없는 소박한 밥상에 된장국이나 나물로 상에 올라오는 시래기는 아무리 자주, 오래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보기에는 볼품이 없어도 개운한 맛과 함께 고향을 연상케 하고 곤궁했던 날들에 대한 그리움을 일깨워준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고 내 고향에서 나는 시래기는 아련한 고향의 냄새마저 담고 있다. 누구나 부담 없이 또 스스럼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시래기다. 고향을 떠나있는 사람들의 입맛을 당기는 것 중의 하나가 필시 시래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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