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宋)나라 시대에 손산(孫山)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기지가 있었으며 유머 감각도 풍부했다. 그가 과거를 보러 떠날 때 같은 동리에 사는 사람이 자신의 아들도 함께 데려가 달라고 부탁을 하여 그 사람의 아들과 같이 가게 됐다. 그런데 나중에 과거 결과를 보니 손산의 이름은 급제자 명단에 들어 있었지만, 손산이 데리고 갔던 아이의 이름은 합격자 명단에 없었다.
기쁜 소식을 빨리 전하고 싶었던 손산은 지체 없이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으나, 낙제의 고배를 마신 동네 아이는 멋쩍기도 하여 며칠 바람을 쐬며 머리를 식히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과거를 보러 갈 때와는 달리 손산이 혼자 먼저 돌아왔다.
과거보러 떠날 때 아들을 부탁하였던 그 동리 사람은 손산이 과거에 급제하여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고 아들의 결과가 궁금하여 찾아왔다. 그러나 아들의 급제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의 면전에서 ‘당신의 아들은 낙제하였소’라고 말한다는 것은 차마 하지 못할 일이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손산은 다음과 같은 두 구를 읊었다.
解名盡處是孫山(해명진처시손산, 합격자 이름이 끝나는 곳이 손산이요)
賢郞更在孫山外(현랑경재손산외, 댁의 아드님은 다시 손산 밖에 있더이다)
언뜻 보면 무슨 풍경을 읊은 시 같다. 그러나 산 이름 같은 손산(孫山)은 지은이 자신의 이름이고, ‘해명(解名)’은 ‘합격자 이름’이라는 뜻이다. 또 ‘현랑(賢郞)’은 상대방의 아들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그러니 “합격자 명단이 끝나는 곳이 손산이요”라고 한 첫 구가 본래 전하고자 하는 뜻은 ‘나는 꼴찌로 합격자 명단에 들었다’가 된다. 그리고 “당신 아들은 손산 밖에 있더이다”라고 한 둘째 구는 ‘당신 아들의 이름은 마지막 합격자 이름 다음에 있다’는 뜻이 된다.
손산은 에둘러 ‘당신 아들은 낙제했소이다’라는 뜻을 전달했던 것이다. 좋지 않은 소식을 완곡하게 표현한 손산의 이 두 구는 그 절묘한 표현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급기야 시험에 떨어지는 것을 손산의 그 시구를 이용하여 표현하게 됐다.
‘명락손산(名落孫山)’이라는 성어가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구는 손산의 순수한 창작이 아닌 것 같다. 구양수(歐陽修)의 사(詞) 중에 “平蕪盡處是春山(평무진처시춘산), 行人更在春山外(행인경재춘산외)”라는 비슷한 구절이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