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物語-22] ‘아무르(黑龍江)’는 부른다
[유주열의 동북아物語-22] ‘아무르(黑龍江)’는 부른다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전 나고야총영사)
  • 승인 2018.06.0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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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샌프란시스코라고 불리는 미항 블라디보스토크와 아무르 강과 우수리 강이 만나는 하바롭스크를 다녀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수리스크 사이의 끝이 안 보이는 광활한 초원이 인상적이었다. 17세기 러시아의 탐험가 하바로프의 이름을 따서 지은 하바롭스크는 우리 민족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예맥(濊貊)족의 발상지라고 한다.

하바롭스크는 북한정권과도 관계가 깊다. 만주에서 활동하던 김일성(1912-1994)항일빨치산 부대가 일본 관동군에 쫓겨 하바롭스크의 아무르 강변 바츠코예의 야영지에서 게릴라 훈련을 받다가 일본이 항복하자 소련군과 함께 북한으로 돌아가 조선 노동당 위원장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흑수 또는 흑룡강으로 부르는 아무르 강의 ‘무르’가 퉁구스(東胡)말로 ‘물(水)’이라고 하며 몽골어의 ‘뮤렌’ 일본어의 ‘미즈’ 등도 같은 어원으로 연결되어 있다. 중국의 대흥안령 산맥과 러시아의 스타노보이 산맥에서 발원한 아무르 강은 러시아와 중국을 적시면서 2824km 흘러 사할린과 마주하는 타타르 해협을 빠져 나와 오츠크 한류(리만 해류)와 함께 동해 바다로 흘러 내려온다.

1917년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후 아무르 강을 둘러 싼 적군(赤軍 볼셰비키 혁명군)과 백군(白軍 반혁명 황제파)의 내전이 치열했다. 일본군은 백군을 도우기 위해 시베리아에 출병하여 하바롭스크의 아무르 강 전투에서 러시아 적군과 싸웠고 블라디보스토크에 주둔한 일본군은 최재형 등 독립운동을 하는 한인과 민간인을 학살하였다.

하바롭스크의 아무르 강에는 김 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1885-1918)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그녀는 조선인 최초의 여성 사회주의자로 볼셰비키 혁명 후 극동 소비에트 외무위원장이 되었다가 하바롭스크를 점령한 백군과 일본군에 의해 처형되어 아무르 강에 수장되었다.

김 알렉산드라는 처형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무르의 강변의 모래를 밟으면서 조선의 독립을 염원하였다고 한다. 하바롭스크를 탈환한 볼셰비키 적군은 그녀를 추모하여 아무르 강의 물고기를 2년간 먹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2009년 김 알렉산드라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앞으로 우리 젊은이들의 새로운 프런티어는 러시아라고 생각된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인 러시아는 서울에서 비행기로 2 시간 거리이고 북한에서는 두만강만 건너면 바로 러시아이다. 국토가 좁고 남북으로 갈려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을 한반도와 육속되어 있는 러시아의 시베리아에 진출하여 언젠가 찾아 올 통일에 대한 준비도 해야 한다.

1882년 청국의 일본 공사관 참사관 황준센(黃遵憲)은 ‘조선책략’을 통해 러시아를 ‘地球之上 莫大之國 爲曰 俄羅斯’라고 소개하면서 조선에게 시베리아라는 거대한 러시아의 잠재력을 암시하였다. 러시아의 비밀병기로 불리는 시베리아는 ‘잠자는 땅(sleeping land)'이라는 의미가 있다. 시베리아는 한국인들이 깨워주기를 기다리는 ‘잠자는 미녀(sleeping beauty)’인지도 모른다.

흔히 러시아를 대륙국가라고 하지만 사실은 러시아는 바이킹의 후예 바랑기아인 즉 루시가 만든 해양국가로 보아도 틀리지 않다. 루시는 슬라브어로 ‘뱃사람’이란 뜻이 있다. 러시아의 지배층인 루시들은 바다를 무서워하지 않는 모험심으로 시베리아 초원의 바다와 삼림의 바다를 항해하여 개척한 것이다. 진취적인 루시와 순종적인 슬라브족의 조화를 통해 오늘날까지 강대국 러시아가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북방정책에 의해 공산권인 소련(1990. 9) 및 중국(1992. 8)과 수교하였다.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이라는 지도자를 만나 정치가 안정되면서 개혁 개방정책이 순조롭게 성공하여 한중관계는 최상의 관계로 유지되었지만 한국과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지 못했다.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로 바뀌는 과정에서 국내외적 혼란이 가중되어 정치적 안정을 이루지 못한 것이 이유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중국과는 수교 4반세기가 지나고 중국의 고도성장으로 과거 보완관계의 한중경제가 경쟁관계로 바뀌고 있다. 더구나 동아시아에서 미중간의 패권경쟁이 심화되어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한국으로서는 중국과의 관계에 과거와 다른 어려움이 예상된다.

싱가포르에서의 북미 정상회담의 개최로 북한의 비핵화가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남북 및 북미관계가 호전될 경우 중국 진출 한국 기업으로서는 중국 투자에 이어 차이나 플러스 1(중국이외 한 곳에 투자) 또는 포스트 차이나(중국이 산업화를 완성할 경우)를 생각할 때가 왔다. 이럴 경우 러시아 특히 극동 러시아에 눈을 돌려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이 극동 러시아가 국내외 여러 사정으로 아직 덜 개발된 것이 우리에게 블루오션을 제공하는 행운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필자소개
한중투자교역협회(KOITAC) 자문대사, 한일협력위원회(KJCC) 사무총장. 전 한국외교협회(KCFR) 이사, 전 한국무역협회(KITA) 자문위원, 전 주나고야총영사, 전주베이징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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