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의 우리詩論-1] 진혜진의 '조롱박'과 숙명적 허기(虛飢)
[김필영의 우리詩論-1] 진혜진의 '조롱박'과 숙명적 허기(虛飢)
  • 김필영(한국현대시인협회 사무총장)
  • 승인 2018.06.18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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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주는 한국 현대시를 선정...시와 함께 읽는 시평

평생 기억에 남는 시가 있다.  하지만 그런 시를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 감동을 주는 시를 찾아내기란 짚단에서 바늘 찾기와 같을 수도 있다. 필자는 2014년 가을부터 감동시를 찾아내는 작업에 들어갔다. 시를 찾아 감상 평론도 썼다. 다음은 그가 찾아낸 주옥같은 한국 현대시와 그의 평론이다. 본지는 해외한인사회의 우리 문학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김필영의 우리시론'이라는 타이틀로 시와 평을 소개한다.<편집자>

조롱박   

조롱박은 연리지의 반대말

한 몸으로 태어난 두 개의 몸
미처 몰랐던 반쪽의 반쪽

생으로 쪼개질 때 당신에게 흘러드는 나를 보았다
내게서 등 돌리는 소리

한때 우리는 
덩굴손에 매달린 요가 자세처럼
어느 수행자의 허리춤에서 물구나무로 서 있기도 했지

조롱이 조롱조롱
어떻게 매달려 살거니 어떻게 견딜 거니
받아 삼키면 아픈 말들

달을 퍼 담던 약수터에서
막걸리집까지 걸어 나간 표주박
엇갈린 길
우리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

목이 탄 햇살의 눈총이 카톡 알람처럼 쏟아지는 약수터
당신은 평생 약수에 젖고
나는 어느 저잣거리에서 술에 절어 늙어 간다

우리는 헛 몸
언제 한 몸이었던가
텅 빈 속을 채우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위아래가 사라진 표주박, 맞닿으면 몸이 뚜껑일 수도 뚜껑이 몸일 수 있다

(진혜진 시 '조롱박')

시평(詩評)-존재의 공허감, 반쪽을 향한 숙명적 허기(虛飢)

혼자 있는 사물의 모습보다 짝과 함께 있는 모습은 아름답다. 한 경전기록은‘신이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 보완자로 여자를 만들기 위해 남자를 잠들게 한 다음, 그 남자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이는 남자의 뼈 속에서 원소를 취하여 여자를 만들었다는 표현일 수 있는데, 아무튼 경전기록에서는 최초의 여자를 본 남자는 감격해하며 “이는 내 뼈 중 뼈요, 살 중 살 이로구나.”라고 시를 읊었다. 인류역사는 사람이 성년이 되면 부모를 떠나 배우자와 한 몸을 이루어 후손을 생육하고 민족을 이루었으며, 인류역사가 이어져 왔음을 알려준다. 진혜진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사물의 모습을 통해 나누어진 반쪽을 향한 존재의 공허를 탐색해본다.

시에 등장하는 사물은 조롱박이다. 첫 행은 조롱박의 자태에 대하여“연리지의 반대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술잔이나 장식품으로 각광을 받는 조롱박은 박통을 둘로 쪼개지 않고는 만들어질 수 없는 물건이므로,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붙어 한 나무처럼 자란 가지를 뜻하는 연리지(連理枝)의 자태를 대비하여 그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다. 조롱박의 자태를 “한 몸으로 태어난 두 개의 몸/ 미처 몰랐던 반쪽의 반쪽”이라는 명징한 표현에서 조롱박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생각나게 한다. 조롱박은 둥근 한 몸을 반쪽씩 둘로 쪼개어 하얀 박속을 죄다 비울 때까지 씨를 파낸 다음 잘 말려야 비로소 그 자태를 볼 수 있다.

분단의 아픔을 겪는 민족이나 사물이나 한 몸이 둘로 나누어지는 과정을 보는 것은 아픔 중의 아픔이다. 태생과정에서 ’한 몸이 반쪽씩 둘로 나누어지는 숙명’을 몸으로 겪는 모습을 행간에서는 “생으로 쪼개질 때 당신에게 흘러드는 나를 보았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는 한 몸으로 태어나 뱃속에 여린 씨를 함께 끌어안고 있는 한 몸이 결코 둘로 나뉠 수 없다고 마지막 잡은 깍지손가락이 빠질 때, 서로에게 흘러들고 싶은 간절함이 절절한 상황표현이다. 쪼갠 박통 속 자궁에 안고 있는 씨앗을 긁어낸 후, 테두리에 맞는 원형 그릇을 밀어 넣고 바짝 말라갈 때 “내게서 등 돌리는 소리”처럼 분단의 고통으로 속이 탔을 것이다.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을 느끼며 쪼개질 때 서로에게 흘러드는 일은 얼마나 버거운 작별의 모습인가? 머릿속에 스쳐가는 한 몸 시절의 기억들이 몰려왔을 것이다. “덩굴손에 매달린 요가 자세처럼/ 어느 수행자의 허리춤에서 물구나무로 서 있”던 기억들, “조롱이 조롱조롱” 매달려 자라면서 “어떻게 매달려 살거니 어떻게 견딜 거니/ 받아 삼키면 아픈 말들”을 나누며 여물어가는 시절들이 떠올라 미치도록 몸부림쳤을 것이다. 그런 이별을 우리는 얼마나 견디어 내야 다시 만날 수 있는 존재인가?

시는 종반에 이르러 “달을 퍼 담던 약수터에서/ 막걸리집까지 걸어 나간 표주박”의 모습에서, 서로 “엇갈린 길/ 우리임을 증명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서로 다른 삶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로 그러안아야 할 한 몸인 우리이기에 ‘약수터와 저잣거리에서 약수와 술에 절어 늙어가는’ 조롱박의 모습은 궁극의 외로움으로 밀려온다. 홀로 존재하는 몸은 “헛 몸”이기에, “텅 빈 속을 채우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존재이기에 ‘존재의 공허감과 반쪽을 향한 숙명적 허기’가 느껴진다. 조롱박 같은 우리 빈 가슴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필자 약력]
* 한국현대시인협회 사무총장(2017~8)
* 한국시문학문인회 차기회장(2019~2020)
* 시집 & 평론집 :‘나를 다리다’,‘응’,‘詩로 빚은 우리 한식’, ‘그대 가슴에 흐르는 시’
* SUN IL FCS(푸드서비스 디자인 컨설턴트)

김필영 한국시인협회 사무총장
김필영 한국시인협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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