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방치돼 있는 오스트리아 프란체스카 기념관
[해외기고] 방치돼 있는 오스트리아 프란체스카 기념관
  • 서상태 중앙아프리카공화국한인회장
  • 승인 2018.06.19 10: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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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카기념관 표지 없고, 프란체스카 도로표지판도 찾을 수 없어
빈 의자만 정돈되지 않은 채 널려있을 뿐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제10차 아중동한인회장연합회총회를 마치고 모두들 뿔뿔이 떠난 후 우리 부부는 남아서 2일 동안 비엔나 시내를 더 둘러보았다. 모처럼 방문한 이름 높고 아름다운 국제도시이기에 금방 떠나기가 너무 아쉬웠기 때문이며 남아서 근세 유럽을 지배해온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적 흔적과 박물관, 한국문화원, 프란체스카여사 기념관 등을 더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틀 정도로는 족탈불급이기에 먼저 한국문화원과 프란체스카여사 기념관을 찾아보기로 했다. 오스트리아라는 나라가 특히 우리나라 사람에게 친근한 것은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영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오스트리아 여성이며, 전남 소록도에서 한평생 나병환자를 돌본 두 오스트리아 수녀님 때문일 것이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한국의 초대 대통령부인이 오스트리아 여성이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여 주오스트리아한국대사관과 상의하여 도나우시립공원 내에 부지를 제공하여 한국문화원과 프란체스카기념관을 세웠던 것이다. 개관식에는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참석했으며 새로 건설된 도로를 프란체스카 도로라고 명명했다고 전해졌다

비엔나라는 세계적인 역사도시에 한국의 초대 대통령부인 기념관이 건립되고 프란체스카 거리라는 도로도 생겼다니 한국 사람으로서 자랑스럽고 꼭 한번 들려 보고 싶었던 것이다.

초대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인지 어기저기 이 기념관에 대해 물어도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비엔나 시내 한국식당 종업원이 한국문화원을 찾아 가보라고 일러주었다. 마침 호텔 앞에 지하철역이 있어서 지하철을 타고 4번선 Alte Donau역에 내려서 약 500m를 걸어 도나우 공원에 도착했다.

넓은 공원을 가로 질러 공원 한 구석에 자리 잡은 한 건물을 발견했다. 겨울 같은 날씨 탓인지 산책하는 사람 없는 한산한 공원 구석에 선 초라한 건물 앞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반갑게 다가갔으나 건물 옆에 승용차 한 대 주차해 있고 오전 11시께인데도 아직 문화관 문도 열지 않았고 인기척도 없었다. 입구에는 한국문화관이라는 간판과 한글학교 표시가 되어 있으나 눈을 비비고 찾아보아도 프란체스카 기념관이라는 표지는 없다. 창문 너머로 내부를 들어다 보았으나 허술하게 빈 의자만 정돈되지 않고 널려있을 뿐 마치 빈집 같았다.

주변을 모두 찾아 봐도 프란체스카 도로표지판도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이럴 수가! 오전 11시에도 문화관 문도 열지 않았으며 프란체스카 기념관은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오스트리아 정부가 제공한 시내 공원 한가운데 세운 프란체스카 기념관을 이렇게 관리하려면 차라리 기념관을 세우지나 말지!” 혼자서 푸념하면서 공원을 나섰다.

초대 대통령의 부인이 외국인이라고 해서 프란체스카 여사는 영부인으로서 인기는 없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외국인 영부인이지만 어느 대통령 영부인 보다 더 애국적이고 헌신적인 한국인이었다. 여사의 한국 이름은 이부란이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중견 기업인의 셋째 딸로 태어난 Frencesca Donner는 특히 수학을 잘 해서 영국으로 유학을 갔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가업을 잇게 하려고 했는데 스위스 여행 중 이승만을 우연히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1934년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난한 독립운동가 이승만과 결혼하게 된다.

그녀는 타자를 잘 치고 서류작성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이승만의 독립운동에 많은 내조를 했으며 귀국 후 국내의 정치적 혼란기에 영부인이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말썽도 많았지만 이승만 대통령에게 훌륭한 내조를 했다.

국외에서 이대통령의 독립운동을 도운 12년,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 후 대통령의 영부인된 2년 만에 6.25 사변으로 3년간 전쟁의 아픔을 겪었으며 61년 4.19봉기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하와이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이대통령 서거 후 오스트리아 친정으로 돌아갔다가 72년 귀국하여 91세로 타계할 때까지 양자 이인수씨와 합께 동숭동 이화장에서 살았다. 여사는 이승만 대통령과 합장하여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오스트리아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난한 동방의 대한민국으로 시집와서 한국으로 귀화는 했지만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냈던 것이다.

프란체스카여사는 근검절약으로 이름난 영부인이며 한평생 한복을 입고 살은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영부인이었다.

초대 대통령의 영부인일 뿐만 아니라 12년 동안 독립운동을 도운 공으로 건국훈장을 받아도 손색이 없는 여사의 기념관을 저리도 무심히 방치한단 말인가! 오스트리아정부의 성의도 무색하게 되었으니 누구를 탓해야 할지 참으로 마음이 우울했다.

서상태 중앙아프리카공화국한인회장
서상태 중앙아프리카공화국한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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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숙 2018-06-19 16:22:17
편협되지 않고 역사를 바로 세워 나기는 나라사랑를 해나가는 우리가 되어야하는데.. 대신 가주시고 소식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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