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春秋] 증경창해난위수(曾經滄海難爲水)
[대륙春秋] 증경창해난위수(曾經滄海難爲水)
  • 팽철호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중어중문전공 교수
  • 승인 2018.06.19 13: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큰 경험을 한 사람은 웬만한 것에는 그다지 감흥을 일으키지 않는다.

절세미인의 아내를 둔 남성이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놀아나는가 하면, 어느 한 곳 예쁜 구석을 찾아보기 힘든 병든 아내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며 그의 아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하는 남성이 방송의 화면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런 것을 보면 부부간의 관계도 부부의 수 만큼이나 다양하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 한 여자만을 사랑했고, 그 여자 외에는 어떤 여자도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았던 듯한 한 남성의 애틋한 사부곡(思婦曲)이 있다. 아니 도망시(悼亡詩)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에 대한 그리움을 쓴 시이기 때문이다.

曾經滄海難爲水(증경창해난위수, 큰 바다를 보고 나면 웬만한 물은 물 같지 않고)
除却巫山不是雲(제각무산불시운, 무산의 구름을 빼고 나면 구름다운 구름이 없지)
取次花叢懶回顧(취차화총나회고, 꽃 무더기 속에 와도 돌아볼 마음이 없는 것은)
半緣修道半爲君(반연수도반위군, 반은 도를 닦기 때문이고 반은 그대 때문이라오)

꽃밭, 즉 예쁜 여인들이 많은 곳에 가도 그녀들에게 눈길 한 번 가지 않는 것은 도를 닦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은 먼저 떠난 아내 때문이라고 했다. 워낙 훌륭한 여인을 반려자로 삼았었기 때문에, 아내가 떠난 그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여인은 더 이상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큰 바다를 보았던 사람은 어지간한 물을 보고서는 물답게 여겨지지 않는다”라고 한 첫 구가 바로 그 말이다. 애틋한 그리움이나 현숙한 미덕에 대한 찬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에게 대한 최고의 존경과 찬사를 보낸 것이다.

이 시는 중당(中唐)시대에 백거이(白居易)와 함께 한(漢)나라 악부시(樂府詩)의 현실주의 정신을 부활시키자는 신악부운동(新樂府運動)을 전개하며 시단의 개혁을 주도하였던 시인 원진(元稹)의 작품이다. 이 시의 내용이 진실 그 자체라면 원진의 아내가 매우 현숙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 그런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였던 원진의 사랑도 지순하기 그지없다. 시대적으로 보아 여러 여인들을 가까이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으며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지위와 능력을 가진 이가 오로지 한 여자에게만 순정을 바치는 데에서 부부간 참사랑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서로간의 인격과 신뢰로 맺은 참사랑은 쾌락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담백한 표현 속에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존경 속의 그리움으로 담아낸 이 시는 도망시(悼亡詩)의 명품으로서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다. 특히 “큰 바다를 보고 나면 웬만한 물은 물 같지 않고”라고 한 첫 번째 구의 기발한 표현은 거의 성어에 가까운 대접을 받게 되었다. 급기야 이 구가 본래 함축하고 있던 “훌륭한 아내를 본 이후로는 어느 여자도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라는 것에서 의미가 확장되어 “큰 경험을 한 사람은 웬만한 것에는 그다지 감흥을 일으키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재능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상당한 미남이기도 했다는 원진의 카사노바적 성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적어도 이 시를 쓰기까지는 이 시에 담긴 내용이 그의 진심이라고 믿고 싶고, 믿을 만하기 때문이다.

팽철호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중어중문전공 교수
팽철호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중어중문전공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