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산책] 놀고 싶단 말이야!(2)
[달팽이 산책] 놀고 싶단 말이야!(2)
  • 현은순 북경한국국제학교병설유치원 원감
  • 승인 2018.06.23 0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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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은 날마다 어떤 놀이를 했을까? 엄마가 핏대를 세우며 ‘안돼’라고 고함을 지르게 한 놀이들을 살펴보자. 

데이빗은 의자에 올라가 그릇 진열장에 있는 쿠키 병을 꺼내려고 하고 있다. 왼쪽 손은 찬장 모서리를 잡고 오른쪽 손은 사선으로 쭉 뻗어 본다. 쿠키 병에 닿을 듯 말듯 혀까지 내밀며 힘을 보탠다. 조금만 더. 더. 의자 끝에 서서 까치발로 몸을 최대한 길게 늘려본다. 엄마는 왜 이렇게 높은 곳에 쿠키를 놓아두었을까? 갑자기 엄마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안 돼, 데이빗!” 아뿔싸! 의자에서 미끄러진 걸까? 혹시 엄마가 아끼는 찻잔을 깨뜨린 건 아닐까?

다음 장을 넘겨보자. 데이빗은 온몸에 진흙투성인 채로 성큼성큼 거실로 들어온다. 공룡 화석 같이 묵직한 발자국을 거실 바닥에 남기고 말았다. 얼굴에도 진흙이 잔뜩 묻어있다. 턱 옆에는 꿈틀거리는 지렁이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갖 풀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어떤 진흙탕에서 뒹굴다 왔는지 알 것 같다. 엄마의 목소리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데이빗, 안 된다고 했잖니!”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눈도 입도 오므라든다. 콩닥콩닥. 데이빗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반면에 이런 날 엄마는 정말 어른의 힘과 권위를 팍팍 느끼게 해주고 싶어진다. 

그 후로도 데이빗의 놀이는 끊임이 없다. “놀고 싶단 말이야!” “NO, NO. 안된다고 했지!” 놀이가 늘어날수록 'NO, NO......!' 엄마의 고함소리도 늘어난다. 재미있는 꺼리를 찾아 늘 놀고 싶은 아이! 그것을 말리는 엄마! 놀이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가 그칠 줄 모르고 힘겨루기 싸움을 하게한다. 

놀이 자체가 문제일까? 아이 혹은 엄마가 문제일까? 아이들의 놀이에는 마냥 허용하기 어려운 요소가 분명 있다. 특히 뒤탈이 뒤따르는 놀이는 어른의 눈에 말썽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아이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경제적 손실 등 부담이 느껴질 때는 더욱 그렇다. 어른이 감당해야할 몫이 커질수록 놀이는 금기사항이 되어버린다. 아이들의 놀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다시 데이빗이 놀이하는 모습을 보자.

데이빗은 목욕할 때, 바다의 파도처럼 욕조물을 출렁출렁 넘치게 한다. 그래야 물놀이가 즐겁다. 목욕 후 옷을 입으라 했더니 알몸으로 밖을 뛰어다닌다. 데이빗은 아직 수치심을 모른다. 옷을 훌훌 벗은 채 뛰어다니면 몸이 가볍고 자유로워 좋기만 하다. 이어지는 악기 놀이. 숟가락으로 후라이팬을 두들기며 음악대장 흉내 내기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조오지 거쉬인의 ‘랩소디 인 블루’라도 연주할 기세다. 그러나 엄마는 귀가 째질 듯 시끄럽기만 하다. 

어릴 적 꿈속에서는 누구나 하늘을 훨훨 날아다닌다. 슈퍼맨처럼.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등장인물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동화를 좋아 한다. 데이빗도 슈퍼맨처럼 날고 싶어 침대 위에서 슈퍼맨 놀이를 한다. 엄마는 한밤중에 층간소음이 걱정된다. 밤에는 조그마한 소리도 크게 들리기 마련이다. 아래층에서 한걸음에 달려올 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한보따리 가득 밀려온다. 

다른 날 데이빗은 집안에서 야구놀이를 한다. 오른 손으로는 야구공을 들고 왼 손으로는 야구방망이를 들고 함박 웃고 있다. 신난 듯 혼자 놀이를 하고 있다. 집 안에는 깨지기 쉬운 물건들이 잔득 놓여 있다. 이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조마조마하다. 빨간 거실 벽은 불안한 상황을 말해준다. 다음 장을 넘기면 바닥에 깨진 꽃병 조각들이 널브러져 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이내 가장 구석진 곳으로 쫓겨난 데이빗. 의자에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다. 무엇을 가장 걱정하고 있을까? 

데이빗 새논의 『안돼, 데이빗!’』은 저자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씌여진 이야기이다. 호기심이 발동하는 대로 거침없이 놀이하는 아이와 그것을 저지하고 싶은 엄마.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의 갈등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그림책을 읽다 어릴 적 추억이 겹쳐지는 장면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데이빗의 변호인이 되어 주고 싶어진다. 

데이빗은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들 모습 그대로이다. 우리 집에서 이런 일이 하루 동안에 모두 일어난다면 어떨까? 그리고 이런 일들이 매일매일 반복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법이라도 부리고 싶어질 것이다. 명령 불복종 사고뭉치 말썽쟁이 아이는 정말 사랑으로만 대하기 힘들다고 느껴질 것이다.  

여기에서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마지막 장면에 있다. 파란색 배경이 깔린 아이의 표정을 보라! “애야, 이리오렴” 아이는 엄마의 이 말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었다. 걱정으로 내려온 눈썹,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 울음이 다 멈추지 않은 듯 아래로 쳐진 입술. 아직 안심할 수 없다. 아이는 양쪽 팔을 크게 벌리며 안아달라는 제스처를 한다. 엄마가 꼭 안아주기 전에는 결코 마음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방금 공포에 휩싸였던 그 불안을 어떻게 쉽게 떨쳐버릴 수 있겠는가? 다시는 엄마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그 두려움을. 엄마는 아이의 모든 말썽을 뒤로하고 “엄만 널 가장 사랑한단다.”라고 말해준다. 이 세상 언어 중에 가장 아름다운 말이다. 엄마는 아이를 꼭 껴안아 준다. 엄마 품은 언제나 포근하다. 동화를 듣는 아이들도 마지막 장면에서 비로소 안심한 듯 미소를 짓는다.

필자소개
북경한국국제학교병설유치원 원감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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