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흔적을 남기지 마세요(Leave No Trace)
[Essay Garden] 흔적을 남기지 마세요(Leave No Trace)
  • 최미자 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8.07.2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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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왜 이리 여름이 더워지는지. 선풍기도 필요 없던 우리 동네의 이층집들은 중앙에어컨을 설치하고 있다. 예전 기후와 달리 100도를 넘고 땀이 끈적거린다. 우린 아직 작은 창문에어컨에 의지하지만 짜증나는 여름이다. 편리해진 세상은 자랑인지 열등의식인지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자기 좀 알아달라고 아우성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시간적 여유가 없고 숨이 막히듯 허우적거리는 일상을 산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나도 덩달아 피곤해진다. 나는 그 현대병 휘말림에 같이 가지 않으려고 애쓴다. 바쁜 직장 생활하는 딸이 종종 쉬자고 손짓할 때면 나는 오늘처럼 극장으로 따라 간다. 

이미 오빠가 살고 계셔 두어 번 다녀 온 오리건주 포틀랜드(Portland) 숲속 이야기라니 영화에 호기심이 더 일어났다. 나는 영어듣기가 완전하지 않지만, 눈치로 헤아리며 보았다. 부녀인 주인공 외엔 배우도 몇 사람 나올 뿐이다. 영화 속의 대화도 한국영화 ‘워낭소리’처럼 느리고 많지 않았지만, 시원한 숲속 스토리가 즐겁지만은 않았다.

내가 처음 배낭을 메고 친구들이랑 등산을 간적이 언제였던가. 대학생 때 유네스코 모임동창들과 텐트를 치고 낭만적이던 숲 속 정경은 머나먼 꿈속에 있다. 딸이 틴에이저 때인가 한번은 우리 집 안마당에 천막치고 하늘을 보며 자고 싶다고 했지만, 난 진드기나 개미를 걱정하며 반대했던 기억이 난다. 

숲 속풍경과 낭만적으로 보여 지는 영화는 우울하게 시작되었다. 미국도 불경기와 마약 남용 등으로 홈리스가 많지만, 이처럼 산속에서 구차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니! 아이의 엄마는 보이지도 않는다. 우리시대의 여인들이라면 참고 이겨내며 13살 딸을 지키며 살아갔을 것인데, 아마 현대판 여인이라 도망을 가버렸나. 무슨 사연으로 그들이 산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
 
부녀가 숲 속에 앉아 장기도 두고 버섯을 따먹는 여유로움이 나는 부럽기도 하다. 또 나무를 겹겹이 쌓아서 장대비를 피하는 아버지의 지혜로움을 배운다. 그러나 아버지는 밤이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자(P.T.S.D.)로 지난날 전쟁의 환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딸은 아버지가 가르치는 공부만 했기에 혹자는 자식을 학대하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순종하는 효녀이다. 두 사람은 산속생활이 마냥 행복하다. 사실, 우리가 사는 주변처럼 서로를 짓밟고 거짓말하고 시기하는 사람들을 만날 일도 없고, 경쟁할 필요가 없는 평화로운 그 곳이 아닌가.

하지만 미국은 국립공원에서 아무나 살 수 없기에 어느 날 단속원에게 부녀가 잡혀 간다. 아버지와 딸은 사회복지 국에서 보호받으며 크리스마스트리 농장에서 일자리와 집을 제공받는다. 연말에 쏟아지는 수많은 크리스마스트리 농장을 보는 장면도 흥미롭지만, 나는 인간들의 소비 욕에 대하여 잠시 생각 한다. 문득 큰 집을 지니고도 부족해서 화려하게 재건축하며 현대의 욕구를 채워가는 도시의 사람들. 소박하게 마을 사람들이 가족처럼 모여 기타치고 노래 부르며 욕심 없이 사는 산 속의 삶이 비교 된다. 각각 다른 취향의 사람들이다. 

딸 톰(Tom)은 그 농장에서 토끼를 안아보며 처음으로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 소통을 한다. 낯선 사람들의 친절함 속에서 조금씩 다른 삶을 느끼며 사회생활을 바라보는 눈도 열린다. 정신적 장애자인 아버지는 아직도 가정집이 답답하고 생소하여 결국 적응하지 못한다. 사람이라면 전쟁터에서 본 잔인한 피 흘림과 동료들의 죽음 등등. 어찌 그런 마음의 상처를 쉽게 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영화는 끝났지만 나는 자리에서 잃어 나고 싶지 않아 화면에 나오는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이름을 읽어 내려갔다. 감독을 하고 각본을 쓴 여성들의 섬세함을 느끼면서 영화 끝의 긴 여운이 내 가슴 속을 왜 파고드는 것일까. 

이 영화는 이름 모르는 수많은 재향군인(veteran)들을 잊지 말아달라는 교훈이 스며있다. 한편 장애자 아버지는 딸에게 흔적을 남기지 말라(Leave No Trace)는 말을 자주 한다. 나는 집에 돌아 와 인터넷을 뒤졌다. 1960대 미국인들이 배낭을 메고 산에 자주 오르기 시작하면서 자연훼손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1994년에 비영리 단체(National Outdoors Leadership School)를 결성했다. Leave No Trace 사무실을 만들어 다음과 같은 운동을 펼치고 있다.

국립공원 관리국인 정부와 함께 다음의 7가지 교육을 소개한다. 
1. 등산을 미리 준비하고 계획하세요.
2. 건실한 장소에 캠프장을 설치하세요.
3. 쓰레기를 최소한 줄이고 잘 처리하세요.
4. 당신이 찾은 것들은 반드시 남겨두세요. 
5. 캠프파이어의 영향권을 최대한 줄이세요.
6. 야생동물을 존중하세요. 
7. 다른 방문객들을 배려하세요. 

대한민국에도 얼마나 산이 많은가. 시도 때도 없이 수많은 등산객들로 괴롭힘을 당하는 아름다운 우리강산. 우리가 어릴 적 4월 식목일이면 벌거벗은 민둥산에 나무를 심었기에 70년이 지난 지금은 초록 빛깔의 국토가 되었다. 이제는 잘 가꾸고 지킬 일이 모든 사람들의 책임이다. 손전화기의 유혹으로 세상은 두렵고 빨리 변해가지만, 내가 사는 자유민주의 미국은 인권과 자연을 보호하는 법치 국가이다. 유명한 오리건주의 고사리도 정부의 허가 없이는 함부로 채취할 수 없고 돌멩이 하나라도 집어 갈 수 없다. 

오리건주 포틀랜드 숲속길

필자소개
경북 사범대 화학과 졸업
미국 샌디에고 30년 거주 수필가
저서 세번째 수필집 ‘날아라 부겐빌리아 꽃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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