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모국 대학생을 데려와 함께 했던 두어달
[해외기고] 모국 대학생을 데려와 함께 했던 두어달
  • 이계송<뷰티타임즈 발행인, 전 세인트루이스 한인회장>
  • 승인 2018.07.31 2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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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짜리 청년 K군...작은 애국애족의 방법
이계송 전 세인트루이스한인회장
이계송 전 세인트루이스한인회장

강연 건으로 한국에서 우연히 만나 알게 된 교수 한 분이 있다. 남편과 일찍이 사별하고 혼자서 아들 셋을 힘들게 키워 온 분이다. 어느 날 나에게 자기 아들을 미국 우리집에 두어달 데리고 있으면서 미국문화를 체험케 하고 맨토링을 좀 해줄 수 없겠냐며 간절히 부탁을 했다. 참으로 난감했다. 이런 건 나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고, 더구나 아내의 동의가 필수였다.

다행히도 아내가 순수히 그러자고 했다. 23살 청년 K는 군복무를 막 마친 대학2년생이었다. 군복무시 취사반에서 근무해 요리를 할 줄 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반가웠다. 아이들 넷이 집을 떠난 후부터는 우리 부부도 가능하면 각자가 알아서 식사를 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고맙게도 K를 위해서 이런 저런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K 역시 성격이 차분하고 매사에 염치를 아는 청년이었다. 아내가 식사를 준비할 때는 꼭 도움을 주었다. K는 때때로 맛난 음식 솜씨도 보여주었다. 이렇게 한 식구로 살게 되었다.

아이들이 떠난 빈공간을 K가 어느정도 채워주기도 했다. 우리 부부는 평소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한 자리에 앉아 저녁을 먹을 때면 살아온 얘기를 주고 받으면서 조금씩 정이 들어갔다. 우리가 친구들과 외식을 할 경우도 늘 K를 아들처럼 데리고 다녔다. K는 동포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어렴풋이 체감했을 것이다.

내가 발행하는 월간 잡지 'Beauty Times' 일로 텍사스 지역 출장을 가게 되었다. 동료 취재기자와 K도 동행했다. 자동차로 오클라호마주 털사, 텍사스주 달라스, 샌안토니오, 휴스턴, 알칸사스주 리틀락을 1주여 돌았다. 동포들이 운영하는 뷰티서플라이 소매점들을 둘러본 것이다. K에게도 인턴기자로 보고 듣는 것들을 글로 써보도록 했다. 달라스지역 한인뷰티사업가협회가 주관한 '회원의 밤' 행사도 K는 열심히 취재했다. 가는 곳마다 주요 관광지도 돌아보았다. K에게는 미국의 중남부를 훑어본 기회가 된 셈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K에게 ‘Beauty Times’ 편집부 일도 돕도록 했다. 나의 또 하나의 사업체인 뷰티소매점 일도 시켰다. K는 처음 해보는 일들을 흥미진진하게 즐기는 것 같았다. 흑인 고객들과 대화도 하면서 미국사회의 소수민족의 삶의 모습도 보았을 거다. 재미 한인동포들의 생업의 애환도 체험했을 거다.

K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마다 나는 내가 살아온 얘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다시 산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하면서 K의 미래의 삶을 예쁘게 그려주기도 했다.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이란 어떤 것인가? 자기가 세운 목표를 달성할 때 이루어지는 것인가? 아니다, 매일 매일 비단 옷감을 짜듯 색깔있는 실들로 짜나가고, 그 순간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 색깔있는 실들이란 무엇인가? 가족간의 사랑, 우정, 희생과 봉사, 나눔, 여행, 춤과 노래, 공부....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매일 매일 베틀에 짜듯 실행하고 체험하고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너의 인생을 뒤돌아 보았을 때, 네가 짠 아름다운 비단이 펼처져 있다면 멋진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월터 휘트먼의 얘기를 곁들여 해주었다.

뒤돌아보면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 언젠가 언젠가 나의 목표를 이룬다면....끝없는 이기적 욕심으로 살았다. 아직도 그런 욕심의 덩어리가 내 몸속에서 나를 짓누르고 있다. 그래서 행복할 틈이 없다. 청년 K가 나와는 전혀 다른 멋진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은 작은 나라가 아니다. 세계 12위 중강국이다. 너희들 세대는 험난했던 과거 역사는 접어두고 새로운 멋진 역사를 써가야 한다.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와 민족 200개가 있다. 우리의 경험과 기술과 돈으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돕고 구제하는 가운데서 민족의 도덕성을 찾아야 한다. 군사경제대국은 아닐지라도 지구촌에서 가장 존경받는 나라와 민족은 될 수 있다. 그곳에 우리가 살 길이 생긴다.”

내가 갖고 있었던 같잖은 미래의 국가관도 얘기해 주었다. 그날이 마침 미국 독립기념일이었다. 우리는 세인트루이스시가 주최한 축하행사장에도 함께 참여했다. 미국시민들의 깊은 애국심을 K가 엿본 기회도 되었을 거다.

우리는 그렇게 40여일을 함께 살았다. 중간에 서부관광도 K 혼자서 다녀왔다. 워싱턴이 K의 귀국길 마지막 여행지였다. 나는 차를 몰고 집을 떠나 중간 지점인 클리브랜드 친구집을 향했다. 친구집에 하룻밤 묶으며 K는 멋지게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마침 월드컵 결승전, 크로아티아인 집안에 시집가 6명의 아이를 낳은 친구 딸네집에서 벌어진 양가합동 응원전에도 참가했다.

K는 마지막으로 뉴욕, 보스톤, 나이아가라폭포, 워싱턴 여행을 즐기고 돌아갔다. 남의 귀한 아들의 어설픈 멘토가 되어준 두어달이 금방 지나갔다. 노년을 사는 재외동포 세대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한 가정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고국 청년 하나씩을 데려다 넓고 큰 나라의 체험을 통해서 그들의 시야를 키워주는 일을 한다면, 그것도 작지만 애국애족의 한 방법이 아닐까? 함께 해준 아내가 참으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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