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항일유적 탐방-2] 신빈현 의암기념원, "붓을 버리고 군복을 입다"
[만주항일유적 탐방-2] 신빈현 의암기념원, "붓을 버리고 군복을 입다"
  • 관전=이종환 기자
  • 승인 2018.08.0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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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의병장 유인석 선생이 일제에 쫓겨 넘어와...첫날 탐방지로 찾아
의암 유인석 선생 기념원에서
의암 유인석 선생 기념원에서

합니하의 신흥무관학교가 있었던 곳은 지금 블루베리 농장과 도라지 밭으로 바뀌어 있었다. 농사를 짓고(耕), 군사훈련을 하면서(學), 나라를 새롭게 부흥시키려 했던(新興) 독립운동 지사들이 땀을 흘렸던 합니하의 신흥무관학교 터 역시 아무런 표지가 세워져 있지 않았다. 중국이 무심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나라가 너무 무심한 탓일까?

“저곳 집 덤불이 보이는 곳에 학사가 서 있었다고 합니다.”

안상경 박사가 소개를 했다. 이 학교 출신인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은 당시 합니하의 학교를 이렇게 설명했다.

“학교는 산 속에 있었으며 18개의 교실로 나뉘어 있었는데, 눈에 잘 띄지 않게 산허리를 따라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18살에서 30살까지의 학생들이 100명 가까이 입학하였다. 학생들 말로는, 이제까지 이 학교에 들어온 학생들 중에 내가 제일 어리다고 하였다. 일과는 새벽 4시에 시작하여, 취침은 저녁 9시에 하였다. 우리들은 군대전술을 공부하였고, 총기를 가지고 훈련도 받았다. 그렇지만 가장 엄격하게 요구하였던 것은 산을 재빨리 올라갈 수 있는 능력이었다.”

우리 일행이 추가가와 합니하를 방문한 것은 ‘만주독립운동유적탐방’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월드코리안신문과 한중교류문화원(심양소재), 대한걷기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 행사는 7월25일부터 30일까지 5박6일간 열렸다.

25일 오전 11시 심양 서탑지역의 한중교류문화원에서 열린 발대식에는 한국에서 출발해 간 팀 15명, 중국 상해에서 온 팀 2명, 북경진화학교에서 온 학생과 교사 15명 등 32명이 참여했다. 여기에 중한문화산업연구소 소속 연구원 4명이 안내를 맡아 모두 36명이 심양-통화-집안-백두산-연길-길림으로 움직였다.

25일 발대식에는 임병진 주심양총영사와 라종수 심양한국상(인)회 회장, 안청락 한중교류문화원장도 참여해 뜻깊은 탐방행사를 축하했다. 특히 이번 탐방을 공동주최한 안청락회장은 이튿날 압록강가에 있는 옛 고구려 수도 집안까지 일부러 와서 탐방단을 격려하기도 했다. 편도로 5시간이 걸리는 먼 길이었다.

심양한중교류문화원에서 발대식을 갖고 기념촬영했다.
심양한중교류문화원에서 발대식을 갖고 기념촬영했다.

심양 서탑에서 오전 11시 간단한 발대식을 가진 탐방단은 바로 요녕성 무순시로 이동했다. 무순에서는 노천탄광과 일제 만행지역인 평정산참안기념관을 찾고는, 이어 신빈현 평정산진에 있는 의암 유인석 기념원을 답사했다. 춘천 출신인 유인석은 1912년 서간도로 이주해 이진룡 등 많은 애국지사들을 양성한, 구한말의 의병장이다.

의암기념원은 마을에서 산으로 3백m쯤 오른 산 언저리에 조성돼 있었다. 옆으로는 옥수수밭도 펼쳐진 전형적인 동북지역 농촌풍경이었다. 현지에서 만난 중국인 주민은 “한국에서 시장 같은 높은 사람들이 더러 찾아온다”면서 “전에는 조선족이 마을 인구의 절반가량 됐으나 지금은 한국 등지로 많이 떠났다”고 소개했다.

의암기념원의 의암의 활동기록을 담은 비석을 중심으로 해서 정원을 조성한 것이었다. 의암기념사업회가 중국 신빈현 정부의 협조를 얻어 2003년에 건립했다고 한다.

비석에는 유인석 선생 활동이 비문으로 적혀있다
비석에는 유인석 선생 활동이 비문으로 적혀있다

비석 앞에서 전체가 참여해 기념촬영을 하고는 비석을 둘러봤다. 비석 뒤에는 유인석 선생의 활동기록이 중국어로 간략하게 새겨져 있었다.

“1895년 일제가 조선에서 을미사변을 일으키고 단발령을 내리자, 유공은 분연히 붓을 버리고 군복을 입었다. 의병대장이 되어 항일 구국 기치를 올렸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11년 압록강을 건너 이곳에 이르렀다....”

비석에는 의암 선생이 그곳에서 농무계를 조직해 항일지사들을 양성했으며, 부인이 그곳에서 타계하고 의암 자신도 1915년 관전현 방취구에서 병사했다고 적고 있다.

의암기념원을 떠난 탐방단은 다시 3시간여를 달려 이날 밤 늦게 관전현에 도착, 농가형 펜션에서 여장을 풀었다. 이날 밤에는 밤새 비가 내렸다.<계속>

평정산참안기념관에서
평정산참안기념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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