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항일유적 탐방-7] 백두산 천지의 조화를 보고..."백두산과 장백산은 다른 산?"
[만주항일유적 탐방-7] 백두산 천지의 조화를 보고..."백두산과 장백산은 다른 산?"
  • 연길=이종환 기자
  • 승인 2018.08.0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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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유산기에 그려진 천지...운무 걷히더니 장엄한 모습 드러내
백두산 천지에 운무가 걷히고 있다
백두산 천지에 운무가 걷히고 있다

‘만주독립운동유적탐방’의 넷째날은 백두산 답사였다. 모두들 '백두산의 기를 받자'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우리는 이도백하의 호텔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날씨와 천지를 화제로 해서 얘기꽃을 피웠다. 백두산은 운무의 조화를 예측할 수 없는 곳이며, 맑은 날 같아도 천운이 따르지 않으면 천지를 보지 못한다는 얘기들을 누차 들었기 때문이었다.

일행 가운데는 몇사람을 빼고는 백두산과 천지가 초행길이었다. 호텔에는 다른 그룹들도 있었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도 있고, 중국인 관광팀도 눈에 띄었다. 우리는 8시에 출발했는데, 호텔에서 마지막으로 떠난 그룹이었다.

이도백하에서 백두산 입구의 환승장까지 가는데는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길 주변으로는 자작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다. 환승장에서 공원관리사무소가 운행하는 셔틀버스로 갈아탔다. 백두산 주요 전경을 관광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타고 내리는 힙합버스였다. 아쉬운 것은 행선지가 중국어로만 소개된다는 점이랄까.

우리는 먼저 장백폭포로 갔다. 오르는 길은 인산인해였다. 상행길과 하행길이 달랐으나, 모두 사람들에 떠밀려 오르내렸다. 공휴일이어서 관광객이 는 듯했다.

폭포에서 사진을 찍고는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온천수로 삶은 달걀이 3개 10위안이었다. 설익었어도 먹을 만했다. 점심 장소를 찾아 장백폭포 계곡을 타고 한시간 가량 숲길을 걸었다. 천지에서 내려오는 물소리가 내내 귀를 즐겁게 했다.

정상에서 천지를 내려다 보고 있다.
정상에서 천지를 내려다 보고 있다.

식사후 천지행 승합차에 올랐다. 하루에도 십수차례씩 백두산 천지 아래의 휴게소까지 오간다는 젊은 중국인 운전기사는 위험한 길인데도 차를 잘 몰았다. 하루 2만여명의 관광객이 찾은 이곳에 그같은 승합차가 250대나 운행된다고 했다. 승차료 수입만 해도 적찮을 것이라 생각하며, 북한쪽 백두산 사면의 관광을 떠올려봤다.

정상에 오르는 찻길은 뱀처럼 꼬불꼬불했다. 중턱에 오르자 백두산 북쪽으로 장대한 원시림이 보였다. 크고 작은 산파들이 이어지면서, 시야 끝까지가 원시림이었다.

정상은 운무에 가렸다 열렸다를 반복했다. 차에 내려서 B코스 여정을 따라 천지로 향했다. 천지 주변도 인산인해였다. 천지 물을 내려다 보려면 사람이 비껴주기를 기다려야 했다.

옛사람들 가운데 천지를 봤다는 기록을 남긴 사람은 거의 없다. 워낙 험한 길인데다 원시림이기 때문이다.  중국측 기록은 특히 없다. 겨우 조선시대 선비들의 유산기가 전해올 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대부분 중도에서 멈춘 기록들이다.

석지탁이라는 선비는 천지로 향하다 중도에서 멈추면서도, 기록을 남겼다. 그가 ‘갑산사람한테 들었다’면서 남긴 ‘천지’의 모습은 이렇다.

“연지봉은 백두산에서도 가장 높은 봉우리다. 그 위에는 둘레가 40리인 큰 못이 있는데, 높이가 만여 길이나 되는 벽이 마치 병풍처럼 빙 둘러 서 있다. 그 아래 검은 물결이 출렁거린다. 만약 그곳에 올라가 아래를 굽어보면 크게 놀라서 아래로 거꾸러지지 않는 이가 없다. 구름과 안개가 나비 날개처럼 일어나면 반드시 회오리바람이 생겨 눈과 얼음을 물을 들이붓듯 아래로 떨어뜨리니 사람들은 모두 바람에 날려가 얼음이 쌓인 곳에 떨어져 얼어 죽는다. 이는 틀림없이 바닥도 보이지 않는 산의 구멍 속에 신물(神物)이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이의철은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본 얼마 안되는 조선 선비 중 하나다. 그는 ‘백두산기’에 천지를 직접 보고 이런 기록을 남겼다.

“상봉에 올라가서 천지를 굽어보니, 황홀하고 두려웠다. 천지 조화의 기묘함이 극치를 이루는 듯하다. 주위 둘레가 80리라고 하지만, 내가 본 바로는 10리, 아니면 5리 정도였다. 남북으로 길고 동서로는 짧았는데, 둥근 모양이었다. 물 색은 푸른 빛을 띤 검은 색이었으며 흐리거나 탁한 기색이 없었다. 사방을 에워싼 석벽은 깎아지른듯 위태롭게 서 있었다.”

조선시대의 백두산 유산기록을 살피면서 한가지 의문이 생겼다. 유산기마다 백두산과 장백산을 서로 다른 산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장백산은 백두산과 함께 장백(長白)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실은 백두산에 있는 세 개의 둥근 봉우리의 지맥으로, 넓고 길게 가로놓여 명천부(明川府), 길주(吉州), 경성부, 무산부 등 네 개 군에 걸쳐 있다. 서남쪽으로 뻗어서 상단평(上端坪)을 거쳐 백두산에 통한다. 백두산에서 삼지연까지는 87리, 삼지연에서 상단평까지는 90리, 상단평에서 장백산까지는 10리 거리다.”(성해응 ‘백두산기’)

“백두산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큰 산이 구름 끝에 띠처럼 가로 걸쳐 있는 산이 보다산이다. 산맥이 뻗어서 장백산, 마운령산, 마천령산 등 여러 산이 되는데, 모두 우리 나라의 지경 안에 있다.(이의철 ‘백두산기)”

“백두산 동남쪽 산기슭이 분수령(分水嶺)이어서, 동쪽은 토문강(兎門江)의 수원이 되고, 서쪽은 압록강(鴨綠江)의 수원이 된다. 분수령은 허항령 주위를 두르고, 산맥이 300여 리를 내달려 높이 솟아나 보타산(寶陀山)이 된다. 세속에서는 이를 포태산(胞胎山)이라고 부른다. 동쪽은 장백산(長白山)인데 무산부 사람들은 그 산을 검덕산(黔德山)이라고 부른다.(석지탁 ‘백두산기’)”

이날 우리는 정말 운이 좋았다. 우리팀이 천지에 올라 조금 지나자 운무가 순식간에 걷히더니 천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기를 우리가 머물동안 몇차례나 반복했다.그러다 우리가 막 내려올 즈음엔 갑자기 비가 뿌려 천지는 다시 운무속에 갇혀버렸다. 모두들 무슨 조화냐며 신기해했다.

동행한 김도 부총재는 ‘천지는 물론이고, 그뒤 병풍처럼 둘러싼 산봉우리까지 봤을 때 천지를 봤다고 하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제대로 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날은 백두산을 빠져나와 연변조선족자치주 주도인 연길로 가서 투숙했다.

장백폭포를 오르는 사람들
장백폭포를 오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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