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속옷을 입으면 생각나는 분
[Essay Garden] 속옷을 입으면 생각나는 분
  • 최미자 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8.08.21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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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이면 나는 친정어머니가 입으셨던 속옷을 입는다. 어머니가 노인 아파트를 떠나며  마지막 짐을 정리할 때 옷장을 열어 그분의 옷인 맞춤 정장과 원피스를 나에게 권했지만, 나는 속옷들을 가지고 왔다. 특히 까슬까슬한 인조 속옷들은 내가 한국에 살 때 사드린 것이다. 유난히도 나는 더위를 타기에 내 것을 사며 어머니 것도 선물해드렸다. 샌디에이고에 이사 온 후 수년간은 선선한 여름이라서 나는 이런 속옷을 입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상기온과 공해로 지구가 뜨거워지며 이곳도 한국처럼 끈적거리는 고온의 여름 날씨로 이젠 변해버렸다. 

어머니가 세상 떠난 지 거의 스무 해가 되어가지만, 아직도 나는 추억에 산다. 나의 고향에서 어머니는 최초의 여자경찰이 될 뻔 했는데 아버지가 직장생활을 반대하여 주부로 살아왔기에 종종 속상해 하셨다. 동네반장으로 이웃을 위해 늘 봉사하며 품위를 지키던 분이다. 내가 중학교 때 우리학교 개교기념일 날 단상에서 치렁치렁 긴 한복을 입고 동문회장으로서 후배들을 향해 공부하여 남자들과 동등하게 사회로 진출하라던 신식 여성이었다. 그 멋진 연설을 기억한다던 선배언니들의 이야기들을 훗날 우연히 들으며 나는 놀랍고 신났던 기억도 있다. 

무엇보다도 시댁인 순천에 살며 여순사건으로 공산당들의 거짓선동과 잔인한 짓들을 똑똑히 보았다며 자녀인 우리에게 철저히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가르쳐주신 어머니이시다. 평소에 정의롭고 양심 있는 사람이 되라며 강조하셨고, 흐르는 강물도 아끼고 살라며 검소함을 보여주셨다. 비록 아버지의 월급이 넉넉지 않아도 절대로 돈과 권력에 비굴하지 않던 당당한 여인이었다. 정직하지 않고 양심 없거나 두 얼굴을 가진 앙큼한 사람을 퍽 싫어하셨다. 미국에서 우리가 일본차를 처음 샀을 때도, 독일국민처럼 우리 물건을 애용하지 않으면 누가 나라의 경제를 살리느냐며 꾸짖으셨다. 어머님의 부탁대로 우린 지금 국산차를 타고 다닌다. 

또 우리 어린 시절은 냄새나는 재래식 변소이기에 지금처럼 화장지가 없어 집집마다 거의 신문지로 뒤를 닦았다. 어머니는 글이 있는 신문지로 뒤를 닦으면 공부를 못한다며 부드러운 포장지를 모아 화장실에 두곤 했다. 학문을 존경하던 나의 어머니. 우리들이 쓰던 학교모자도 머리에 쓰는 관(미래의 사람 역할을 의미하기에)이라며 함부로 발아래 두지 말고 잘 간수하라고 가르쳤다. 그래서일까 지방에서 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큰오빠는 S대학 의예과를 톱으로 입학했다. 당시 대학등록금을 걱정하시던 아버지의 신문인터뷰를 읽으며 나는 눈물을 흘렸었다. 밤늦도록 공부하는 내 곁에서 뜨개질하거나 책을 읽으셨고, 내가 질문할 때면 백과사전처럼 척척 대답해주시던 어머니이셨다. 

와병의 아버지가 별세 한 후 집안이 기울자 이민 간 자식 곁으로 가 살아보겠다며 고국을 떠났다. 하지만 시골중학교에서 첫 근무를 하는 내가 걱정되어 고국으로 어머니가 다시 돌아오셨기에 우린 단칸셋방에서 소꿉놀이 하듯 한동안 살았다. 당시 회갑을 맞은 어머니는 모교인 동창 회관에서 친지와 후배들을 초청해 대접했다. 그날 밤, 어머니의 말씀과 행복했던 얼굴. 

그러다 어머니가 우연히 나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을 길에서 만나는 바람에 나는 급행으로 결혼했다. 우리 가족이 이민 온지 얼마 안 되어 로스앤젤레스의 노인아파트에서 고혈압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간 어머니를 뵈러 내가 홀로 장거리 운전을 처음 시작했던 아슬아슬한 고속도로 5번 길. 퇴원 후 회복할 때까지 모셔와 우리 집에서 온 가족이 간호하던 일. 어머니가 다시 재기하여 샌디에이고 힐크레스트에 있는 시니어 아파트에서 홀로 8년을 강인하게 지내셨지만, 더 잘해드리지 못하여 지금도 후회스럽다. 팔순 후엔 차츰 기억이 나빠져 가끔은 억지 말로 나를 울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시간들이 모두 희미해져 가는 그리움이다. 

누구나 아무리 효도를 한다 한들 어찌 부모님의 사랑을 되갚을 수가 있을까. 우리가 즐겨 부르던 동요의 가사처럼 어머니의 사랑은 집안마다 모양은 달라도 하늘처럼 넓고 바다처럼 깊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머무시던 방에서 그분의 낡은 여름 속옷을 입은 나는 마냥 행복하다. 또 할머니와 정을 꽤 나눈 내 딸과 맞장구치면서 지난날을 회상한다. 

살아오며 나는 평생 여러분들의 은혜를 입고 살아가지만, 요즈음은 아침에 깨어나면 부모님의 은혜가 절절하여 나는 두 손을 모아 합장한다. 언제까지 내가 이런 아름다운 시간을 간직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처럼 상쾌하게 새날을 맞이한다. 나는 돌아가신 기일보다는 서양의 문화처럼 어머님의 생신날을 잊지 않고, 생전에 보여주신 모범적인 교훈들을 생각하며 올바른 사람이 되려고 애쓴다. 

다음생애에는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던 나의 친정어머니, 아~ 그립고 또 뵙고 싶어라. 

필자소개
경북 사범대 화학과 졸업
미국 샌디에고 30년 거주 수필가
저서 세번째 수필집 ‘날아라 부겐빌리아 꽃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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