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가치관 시험’ 우리 가족은 통과할까?
‘호주 가치관 시험’ 우리 가족은 통과할까?
  • 현혜경 기자
  • 승인 2018.08.2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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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동포 2세 서보현씨 기고문 뉴욕타임즈에 실려

호주동포 2세인 서보현(24)씨의 기고문이 8월15일 뉴욕타임즈 오피니언에 게재됐다고 한호일보가 23일 전했다.

‘Woul My Family Pass an Australina Values Test’(‘호주 가치관 시험’ 우리 가족은 통과할까?)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서씨는 호주 영주권 심사에 ‘가치관 시험(value test)’을 도입하고자 하는 말콤 턴불 호주 총리를 비판했다.

서 씨는 또한 최근 앨런 터지 시민권·다문화부 장관이 “호주의 가치관을 거부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 “이는 우월주의를 표현하는 미사여구에 비상사태를 가미한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십 년간 지속해 온 ‘도그 휘슬(dog-whistle) 정치’가 많은 호주인들의 인식을 분열시켰다”면서, “‘가치관 시험’ 도입은 호주사회가 지닌 결함에 대한 책임을 이민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한호일보에 따르면, 서 씨는 시드니 바커칼리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 입학해 정치이론과 영문학을 졸업했다. 하버드대학 재학 시절 세계토론대회에서 우승했고 호주 토론대표팀 코치를 역임했다. 그는 중국 칭화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2019년 하버드대 로스쿨에 진학할 예정이다. 다음은 서씨의 칼럼 전문이다. 한호일보가 번역했다.

‘호주 가치관 시험’ 우리 가족은 통과할까?
(Would My Family Pass an ‘Australian Values Test’?)

서보현(24)씨[사진=한호일보]
서보현(24)씨[사진=한호일보]

시드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가끔 내가 ‘호주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호주에 이민 온 나의 가족은 이민자 인구의 비율이 높은 지역인 남서부의 캠시(Campsie)의 한 한국인 목사 집에서 생활했다. 한인 밀집지인 이스트우드(EastwoOd)와 채스우드(Chatswood)에서 사업을 시작한 부모님은 아시아계 고객들을 주로 상대했다. 주말엔 한국인 교회에서 한국어로 찬송을 부르고 한국계 친구들과 식사를 했다.

반항기 가득한 사춘기 시절엔 이 모든 것에 화가 났다. 나는 이민자로서의 성공적 통합을 ‘주류사회에 대한 접근성과 유사성(our proximity and resemblance to the majority of Australians)’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의 척도에 따르면 우리 가족은 실패자였다

일명 ‘슈퍼 토요일’(Super Saturday)이라고 불린 지난 7월 28일 연방보궐선거에 앞서 말콤 턴불 호주 총리는 호주의 가치관을 둘러싼 ‘통합’으로 다양성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balance diversity with “integration” around “Australian value”)고 역설했다. 멜번의 남수단 조직폭력단에 대한 경고에 이어 호주 영주권 심사에 ‘가치관 시험(value test)’ 도입을 주장했다.

우리 부모님은 호주 정부가 바라는 ‘통합’이라는 명분에 충분히 부합한다. 그들은 숙련된 전문가이자 영어도 구사하고 독재정권을 경험한 여느 많은 이민자들이 그러하듯 그들 역시 ‘서양’이라는 문화와 그 문화가 가진 가치를 믿는다.

그런데도 우리 부모님은 늘 한인공동체에 의존한다. 시드니에 정착하면서 수많은 새로운 사람들(한인 이민자들)과 인연을 맺고 사업을 시작하셨을 때 한인 이웃들은 행운목 화분을 들고 와 그들의 첫 고객이 됐다.

인종 분리주의를 우려하는 사람들은 소수 집단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주류문화의 가치관과 생활방식, 상호연계를 거부하는 집단’이라 여긴다. 궁극적으로 이들은 다양한 민족공동체가 가져다주는 좋은 점들을 간과하고 있다. 범죄 의도나 종교적 열정과는 무관하다. 이민공동체의 이로운 점은 본질적인 인간 욕구인 경제적 기회 갈망과 지식 네트워크 구축, 이민 생활 스트레스로부터의 해방 등에서 비롯된다.

최근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통합 추진론은 ‘호주 다문화주의의 힘’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 취약성을 경고하고 있다. 앨런 터지 시민권ᆞ다문화부 장관은 “호주는 다문화주의 모델로서 가장 성공한 국가”라며 “호주의 가치관을 거부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전략은 ‘우월주의’를 표현하는 미사여구에 ‘비상사태’를 가미한 것과 같다. 오랜 호주 이민 정치의 특징이다. 2001년 존 하워드 총리는 불법 이민에 대해 ‘과도한 소란’(alarmism)으로 이민정책에 새로운 장을 펼쳤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인 호주에서 우리는 우리의 국경을 지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2005년 ‘크로눌라 인종 폭동’(시드니 남주 크로눌라 해변에서 백인 수천 명이 중동계 이주민을 집단 폭행한 사건)은 ‘호주의 긍지’(Aussie pride)와 ‘크로눌라를 구하자’(Save ‘Nulla) 두 가지 슬로건을 중심으로 시위를 벌였다.

나는 이민자들의 호주 사회 통합 희망 여부는 이민에 대한 주류사회의 인식과 태도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십 년간 지속해 온 ‘도그 휘슬(dog-whistle, 개 호루라기) 정치’는 많은 호주인들의 인식을 분열시켰다.

결국 역사적으로 비추어 보면, 다문화주의를 대등하게 논의하기보다 오로지 ‘통합’만을 강요하는 듯하고, 타당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호주 가치관 시험’ 도입은 호주사회가 지닌 결함에 대한 책임을 이민자들에게 전가하는 듯 보인다.

나는 공정한 것이 좋다(I want to be fair). 다문화 사회로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민자들의 자격과 책임만을 논할 것이 아니라 포용적 사회를 구축하려는(building an inclusive society) 공동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민자들에 대한 시험은 이미 충분하다. 나는 도서관이나 주민센터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시민권 시험을 준비하는 이민 가족들을 종종 보았다.

호주인으로서 우리는 국가가 직면한 한 가지 질문에 관심을 전환해야 한다. ‘우리의 다문화주의 그리고 다문화주의 정치가 우리의 가치에 부응하는가?’ 그렇다면 호주 가치관 시험을 통과할지도 모르겠다. 전형적인 필기시험 형태가 아닌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시험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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