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제주도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떠올리며
[기고] 제주도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떠올리며
  • 정유림(큐레이터)
  • 승인 2018.08.2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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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도착 후 이틀 동안은 고등어회와 한치회 등 비리지 않은 음식만 찾았다. 그러면서 이호테우(이호동+테우해변)부터 바닷길을 끼고 곽지 해수욕장 방향으로 걸었다. 전국은 그 사이 40도를 넘나드는 폭염뉴스로 뒤덮였다.

바다를 끼고 걷다보면 신은 어찌하여 이리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었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표현해내고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것을 우리는 예술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노래나 붓을 통해서 나타나기도 하고, 악기를 통한 연주나 건축물, 춤의 형태로 나타내기도 한다. 예술에 깊은 애정이 있는 사람들은 인생을 관조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다른 이들과 차이가 난다.

배우 안소니 퀸이 주연했던 영화로 유명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는 자유로운 영혼의 조르바에게 인생이란 무엇인지를 지식인인 ‘나’는 묻는다. 그는 일단 술을 한 잔 쭈욱 들이키라고 말하고, 신명난 춤을 춘다. 인생은 ‘이러이러하다’는 기나긴 언어가 아닌,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인생이란 한바탕 춤과 같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인생이나 사랑을 한마디 단어로 표현 할 수 없듯이 예술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그것은 언어나 지식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조르바는 다시 지식인에게 말한다. “당신의 그 많은 책을 쌓아놓고 불을 싸질러 버리세요, 그러면 혹시 압니까? 당신이 바보를 면하게 될지.”

흔히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보고, 냄새 맡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것들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동물들조차 우리가 듣지 못하고 볼 수 없는 것들을 듣고 본다. 그런데도 우리는 보이는 것을 전부로 알고 그것만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예쁜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고 해서 듣는 이의 가슴에 울림을 주는 것이 아니다.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연주도 기교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목구멍까지 뜨겁게 차오르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그림도 눈에 보이는 화려한 색채 때문만은 아니다.

조르바가 두목이라고 부르던 지식인 <나>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열정적이면서도 때로는 시인처럼, 때론 철학자 같은 자유로운 영혼의 조르바를 겪으면서 조금씩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는 생각한다. “내 말은 종이로 만들어진 것들에 지나지 않았다. 내 말들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것이었다. 말에 어떤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그 말이 품고 있는 핏방울로 가늠될 수 있으리.” 보이지 않는 진실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보이는 지식은 삶이 경험해 온 지혜를 넘어서지 못한다. 예술가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많은 것들을 마음으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그것과 대화를 나누며 무엇인가로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그 결정체를 작품이라고 부른다.

세상은 인생이라는 예술을 사랑하는 인간들의 집합체이다. 껍데기뿐인 작품이 아닌, 마음으로 보고, 듣고 느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아가기에 지금까지 멸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보석 같은 개개인들이 스스로의 능력을 발굴하고 그들 인생의 작품을 널리 알리며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 화려한 노래와 작품보다 삶의 시련을 꿋꿋하게 버텨낸 인생의 작품, 땀방울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이 더 많이 일어설 것이라 믿고 있다.

이제 가을이 온다.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 향처럼, 코앞에 와있는 아름다운 가을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의 열매가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 널리 퍼져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바람 많은 제주에서의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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