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호주 동포의 미국, 캐나다 방문기-2
[해외기고] 호주 동포의 미국, 캐나다 방문기-2
  •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8.25 0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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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토론토

뉴욕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비행기를 타면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주도 토론토에 도착한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 나의 ‘절친’이 살고 있는 도시. 30여년을 헤어져 살아도 그 마음이 변치 않는 우정으로 똘똘 뭉친 내 친구 부부가 공항에 마중을 나와서 반겨주었다. 난 이런 친구를 만날 때마다 내가 인복이 많은 사람임을 재확인하게 된다.

토론토에서는 시립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 기획 전시회를 관람했었다.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네덜란드 출신의 Iris Van Herpen 와 건축가이며 예술가인 캐나다 출신의 Philip Beesley 두 사람의 협연 작품이 전시 중이었는데 미래의 세상, 사람의 주거, 패션, 자연 친화적인 환경, 바람, 소리 등을 주제로 만든 작품이었다. 앞으로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갈 세상은 과연 어떻게 변화되어질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만들었다.

토론토 대학교 캠퍼스, 시티의 디자인 스쿨, 무슬림 박물관, 보타닉 가든, 마켓 플라자 등을 방문하며 빠듯하지만 알찬 시간을 보냈다. 친구야, 우리는 더 이상 젊지는 않지만 건강하면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또 한 번의 아쉬운 이별을 경험하면서 샌프란시스코의 하늘을 향해서 날아갔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하니 이 노래가 자동으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힐튼호텔에 체크인을 하고나서 가방만을 룸에 놓고는 Steve Silver가 연출하는 유명한 사회풍자극 코미디 쇼를 보기 위해서 극장에 (CLUB FUGAZI) 갔다. 스티브의 ‘Beach Blanket Bobylon’이라는 쇼는 올해로 40주년을 맞이했으며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앞에서도 공연을 했다고 한다. 배우들은 다양한 인물들과 사회 풍자를 묘사하며 노래를 부르는데 주제에 맞는 큰 가발을 항상 머리에 올리고 나왔다. 강남스타일 음악에 맞추어서 트럼프대통령과 김정은이 회담을 하러 나오는데 관중들의 폭소가 터졌다. 트럼프 특유의 머리 모양과 목소리까지 흉내 내며 풍자적인 쇼를 코믹하게 보여주었다.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공연이었지만 차나 술을 마시며 볼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현관로비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큰 덩치의 경호원들이 여러 명 서있는 게 눈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아침에 눈을 떠서 호텔 창밖을 바라보니 안개가 뿌옇게 덮였고 바다가 흐릿하게 보였다. 여름이지만 날씨는 브리즈번의 한겨울보다도 더 추워서 옷을 몇 겹으로 껴입고 도 몸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신비한 매력을 지닌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다. 싸늘한 공기가 감싸는 도시, 안개가 늘 흘러넘치는 도시. 고색창연한 건물들과 독특한 디자인의 최신건물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의 특징은 거리가 높은 언덕의 지형으로 생겨서 걷기에는 힘이 들었지만 나름대로 균형 잡힌 질서를 이루고 있었다. 홈리스 사람들이 유난히 많아서 거리의 분위기를 망가뜨린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사회현상의 하나라고 여겨졌다. 거리의 곳곳에 흑인들이 플라스틱 통을 악기로 삼아서 드럼을 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으며 그들은 타고난 뮤지션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한 블록을 사이에 두고 빈부가 공존하는 도시의 양면성을 엿 볼 수 있었다.

둘째 날 오전 무렵에는 딸이 샌프란시스코에 있을 때 일하던 HOK라는 글로벌 건축회사를 방문했었다. 십여 년 만에 다시 찾은 회사였지만 옛 동료와 소장들은 마치 친동생이 찾아온 것처럼 포옹하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 당시 겨우 23살인 어린나이에 시작했던 첫 직장생활이었다. 딸아이의 반듯했던 지난 삶을 옛 동료들의 환대를 통해서 짐작해볼 수 있었다. 종합병원 설계팀에서 일하며 환자들이 마음 편하게 치료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디자인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딸이 자신들의 ‘선 샤인’이었으며 정말 열심히 일을 잘했다고 칭찬을 하는 그들에게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은 팔불출 엄마의 심정이 됐다. 기념사진을 찍고 현관을 나서는 우리들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도 경쾌해져 있었다. 식사약속을 하며 다시 만나기를 청해주는 그들의 마음 씀씀이가 가슴속에 따스하게 스며들었다.

시티 역에서 기차를 타고 버클리 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y) 캠퍼스를 찾았다. 10여 년 전에 딸이 공부하던 곳을 방문하게 되어서 무척 감격스러웠다. 자기가 살았던 집, 자주 가던 카페, 도서관, 건축학과 건물들을 모두 보여주면서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을 추억하면서 엄마에게 설명해주었다. 너무 기특해서 꼭 안아주며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그 당시에 충분한 뒷바라지를 해줄 수 없었던 상황이 마음 아팠지만 노력한 만큼 성취한 오늘의 결과가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올해로 150년을 맞는 버클리 대학은 캘리포니아 주에서 가장 먼저 생긴 대학교로서 주민들은 ‘CAL’이라는 약자를 쓰며 버클리 대학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타워에 올라가니 드넓은 캠퍼스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서 자세히 구경 할 수 있었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여름방학을 맞은 한가한 캠퍼스의 풍경을 한껏 눈에 담아 보았다. 내려오는 길에 버클리 대학생들의 큰 사랑을 받는다는 오랜 역사를 가진 핫도그 집에 들러서 맛을 보기도 했다. 대학가에서 장사를 하는 탓인지 마음씨 좋아 보이는 뚱뚱한 주인아저씨는 한 개를 주문했지만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기차를 타고 시티로 돌아가는 내 마음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다.

시티에서 한 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북쪽 지역으로 나가니 전형적인 미국주택과 농장이 있는 시골분위기의 동네가 나타났다. 버클리 대학에서 친하게 지냈던 한국 언니가 미국인과 결혼해서 사는 곳인데 가까이에 시댁 어른들이 동물농장을 하고 있었다.

선배언니가 그 농장에서 결혼식을 할 때 딸이 호주에서 거기까지 가서 참석하며 축하를 해줄 만큼 친한 언니 동생사이였다. 시댁어른들은 4에이커가 되는 넓은 땅에 소, 말, 염소, 닭을 키운다고 했다. 우리는 그녀의 시댁 농장으로 저녁식사에 초대받아서 간 것이었다. 선배언니 부부는 대학 교수인데 본인은 박사학위 논문을 마무리하는 중이라서 힘이 들지만 시어른들이 어린 손자들 두 명을 잘 돌봐줘서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그곳은 샌프란시스코 시티지역과는 완전히 다른 40도에 가까운 무더운 사막 날씨를 보였다. 시 어른들은 우리 식구들을 무척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마당에서 구워주는 돼지갈비 바비큐와 각종 과일들, 신선한 야채는 정말 맛있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생각하면 군침이 도는 멋진 저녁식사였다. 말에게 먹이도 주고 닭장에서 신선한 계란도 꺼내오면서 편안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기차역까지 픽업을 해주며 마지막까지 헤어짐을 서운해 하는 그 가족들의 마음이 참으로 따뜻하고 정이 넘쳤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이어지는 정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특별한 심성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해준 아름다운 가족이었다.

셋째 날, 같은 직장 동료였으며 룸메이트였던 건축사 가족을 만나서 함께 브런치를 먹으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그 친구는 결혼을 했지만 딸과 ‘쉐어’하던 집에서 여전히 살고 있으며 아기도 두 명이나 있었다. 딸이 사용하던 방에 가보니 아기 방으로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으며 나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감동으로만 다가 올뿐이었다.

그 동네의 집들은 정말 예뻤는데 오래 전에 텔레비전에서 방영됐던 풀 하우스라는 드라마의 촬영장소로 알려져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공원의 잔디밭에는 많은 가족들이 피크닉을 즐기는 한가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도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다녀간 기록들을 만들었다.

딸의 옛 동료 친구였던 캐서린이 자신이 살고 있는 Sausalito 섬의 보트하우스에 초대를 했다. 자동차를 타고 안개 낀 골든게이트 브리지를 지나가면서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에서 보았던 멋진 장면을 상상해보았다. 육지와 골든게이트로 연결된 섬에 도착해서 섬 주변을 구경하고 바닷가 카페에서 가벼운 점심을 먹었다. 보트하우스가 있는 곳까지 걷기에는 먼 거리라서 우버를 불러서 타고 갔는데 나의 상상은 완전히 무너졌다.

선착장이 있는 긴 길 양편으로 아주 독특한 디자인의 주택건물들이 늘어서있고 바로 그런 집들이 물위에 떠있는 보트하우스라고 했다. 예쁜 꽃이 핀 화분들, 조각들, 자전거, 개, 고양이가 있는 동네. 모든 것이 일반 주택과 같아 보였다. 단지 그 주위가 드넓은 바다라는 것만 빼놓고. 캐서린은 타이완출신의 건축사이고 남편은 미국인이며 유명한 사진작가라고 들었다. 보트하우스 입구에서 기다리던 그녀는 뛰어와서 딸을 끌어안으며 ‘My Sister’ 가 왔다고 배안을 향해서 큰 소리로 파트너를 부르며 딸의 손을 놓지 못했다.

배안에는 예전에 어느 사진잡지에서 보았던 아프리카의 석양을 배경으로 나무와 동물을 찍은 사진, 창을 든 줄루족의 전사를 찍은 흑백사진이 걸려있었다. 아! 바로 그 사진작가였다. 올리버 오일 농장과 관광농원까지 운영하는 백만장자라는 귀띔을 딸이 해주었다. 그 사진작가는 직접 팬케이크를 굽고 차를 타서 대접하며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자신의 올리버 농장에서 만든 신선한 올리버 오일이라면서 맛도 보여주고 오랜 친구처럼 편하게 대해주었다. 그리고 모터보트에 우리를 태워서 보트하우스 주변의 경관을 구경시켜 주었다. 자기 집 건너편에 있는 보트하우스 지붕에는 헬리콥터 착륙장도 있는데 어느 구매자가 2.2million을 제안해도 주인이 안파는 집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바다위에서 사는 매력에 빠지게 되면 육지의 집에서는 살수 없다는 말을 했다. 어느 날 카메라를 걸치고 기약 없이 훌쩍 집을 떠나면 다른 낯선 땅을 떠돌다가 다시 그 보트하우스에 돌아온단다.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독특한 삶의 한 단면을 알게 됐다. 짧은 시간 동안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면서 또 하나의 멋진 우정이 이루어졌다고 느꼈다. 다음에는 자신들의 올리버 농장을 꼭 방문해달라는 초대와 함께. 골든게이트 브리지를 다시 지나가면서 어둠에 물들어가는 소살리토섬의 그림자를 뒤돌아보았다. 길지도 않았던 회사 생활을 하면서 딸이 심어놓은 동료애와 우정이 경이롭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호주에 돌아와서 다시 공부를 하면서도 미국으로 돌아갈까 하며 갈등을 겪던 딸의 심정이 비로소 이해가 됐다.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우리 회사에 다시 돌아오라”고 말했다는 소장의 말도 떠올려졌다.

넷째 날, 관광전차를 타고 언덕길이 펼쳐진 샌프란시스코를 마지막으로 더 보고 싶어서 서둘러 중심가로 나갔다. 티켓을 미리 끊었지만 길게 늘어선 줄은 한 시간이 지나도 차례가 돌아올 것 같지 않아서 포기했다. 시티에 좀 더 머물며 건물 사진들을 찍은 후에 공항으로 나갔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오빠부부와 LA에 살고 있는 조카가족들이 합류해서 그랜드 캐니언으로 함께 가족여행을 떠나기로 계획을 짜놓았었다. 또 다른 행운을 찾아서 라스베이거스를 향해서 날아갔다.(계속)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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