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제작 후기] ‘고추 붉게 익는 마을 경북 영양 일월산 도곡리’-1
[방송제작 후기] ‘고추 붉게 익는 마을 경북 영양 일월산 도곡리’-1
  • 김영환 KBS PD
  • 승인 2018.09.20 17: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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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방송은 어떻게 기획되고, 제작될까? 본지는 KBS 다큐멘터리3일을 기획 취재한 김영환 PD의 제작 후기를 시리즈로 소개한다.<편집자>

◇ 기획

전국의 수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싫든 좋든 다양한 소식을 전하는 방송을 해왔지만 정작 내 고향은 제대로 다뤄 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늘 마음 한 구석에 부채의식 같은 게 있었다. 연출자가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직접 소개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던 차, 고향마을 도곡리를 제대로 소개할 기회가 찾아왔다. 10년을 몸담고 있던 프로그램이 갑자기 종방되고, 다큐멘터리3일 팀으로 합류됐을 때였다. 내 순번은 9월16일. 기획회의 때 검토된 아이템은 ‘청년의 유입으로 핫 플레이스로 거듭났다는 어느 골목상권’ ‘서울의 어느 공동체 마을’ ‘서울 숲 72시간’ 등으로 새롭지 않았다. 그때 문득 고향마을의 고추 따는 풍경과 아름다운 정경이 떠올랐다.

영양군은 2천여 농가가 생산하는 고추의 전국 비중이 3%나 되는 고추 특화단지다. 특히 고향인 도곡리 마을은 예나 지금이나 고추 농사 잘 짓기로 유명해 한 번 다뤄볼만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아이템의 채택 과정이 그렇듯 최종 결정까진 갈등이 있었다. 담당 작가는 재미없을 거 같다는 판단이었다. 망설여졌다. 담당 PD로서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마을을, 아직 생가가 남아있고 직접 연을 달고 있는 고향마을을 스스로 나서서 제작한다는 게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도곡리 이야기를 다른 PD한테 부탁했다가는 "그거 아이템 안 돼!"라는 즉답이 예견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방송 깜’이 되겠단 판단이 확실히 선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도곡리에는 몇 가지 자랑이 있다. 명산 일월산 자락에 300년 역사의 아름다운 마을 숲이 있다는 사실, 그 숲에서 전국 유일의 마을숲 축제를 6년간이나 진행돼왔다는 사실, 마을 숲 등 전통 경관을 지키려는 주민, 출향인의 정성이 눈물 나도록 각별하다는 사실, 아기 울음소리가 사라진 다른 마을과 달리 아이 넷을 둔 다둥이네 가정도 있다는 사실, 10년 전 우렁이 농법을 정착시키면서 반딧불과 메뚜기, 강남 제비가 돌아온 청정지역이라는 사실, 단돈 1천원으로 모든 주민들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아주 행복한 식당’이 있다는 사실, 귀향한 화가가 그린 예술성 짙은 벽화가 있다는 사실, 타 지역 출신 귀농인을 소외감 느끼지 않게 세심히 배려하는 마음씨 착한 청년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민들이 모두 부지런하고 농사를 열심히 짓고 예나 지금이나 향학열이 높다는 사실, 올해는 도곡에 고추농사가 대풍이라는 사실...

이 정도의 팩트를 잘 다루기만 한다면 큰 흥행은 장담 못해도 기획 의도는 충분히 살릴 수 있겠다고 판단하고 아이템을 확정해 버렸다.

◇ 비오는 날의 수채화

촬영 첫날, 김밥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촬영지인 도곡리로 향했다. 밤새도록 내린 비는 아침까지 그칠 줄을 몰랐다. 권촌마을 앞 냇가는 불어난 황톳물로 폭포수를 이루었고, 마을 숲 느티나무의 잎들은 빗물에 젖어 진한 푸른빛으로 싱그러움을 더했다. 비는 더욱 거세졌다.

오전 10시, 예정대로 촬영을 시작했다. 폭우가 내리자 당 건너 고추밭에선 일꾼들이 철수를 시작했다. 굳은 일 마다하지 않는 용감한 촬영감독이 밭으로 달려갔다. 고추 포대를 경운기에 싣고 집에 가기 바쁜 이희덕 씨를 붙잡고 인터뷰를 계속 했다. 카메라는 경운기를 따라 안마을로 향했다.

이번에 동원된 카메라는 5대. 크고 묵직한 방송용 카메라와 달리 다큐3일 카메라는 모두 소형이다. 기동성 때문이다. 여성감독은 작가 둘과 함께 바로 새방골로 향했고, 2진은 이장님을 따라다니게 하고, 3진은 정구식 전 이장님과 부녀회장님을 밀착하고, 4진은 권영조 씨와 권재영 씨를 주로 마크하고, 캐논5D 장비를 갖고 온 카메라맨은 인서트 촬영과 다둥이네 집을 맡기로 각자 역할분담을 했다. 중간에 1박 2일 일정으로 드론 촬영도 했다. 카메라를 총 6대를 동원하였지만 면적이 넓은 도곡리 마을을 다 커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비오면 뭐하지? 빈대떡 부치기? 아니면 풍물이나 서예? 사정을 얘기했더니 이장님은 풍물패 연습을 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카리스마 강한 이장님이 아지매 몇 분께 바로 전화를 걸더니 몇 십분도 안 돼서 대여섯 분이 회관으로 모였다. 상쇠 권영조 씨도 나왔다. 비오는 날이라고 노는 적이 없는 분들인데, 첫날부터 민폐를 끼쳤다. 결성한 지 3년 째 맞는 풍물패는 장단이 잘 맞고, 카메라를 의식해선지 더 흥겹게 두드렸다.

촬영 2시간이 지났다. 연출이라도 한 듯 먼 산의 안개가 걷히고 하늘이 서서히 옅어졌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풍경이 아름다웠다. 제작진은 복합문화회관에서 천 원짜리 맛점으로 배를 불리고 오후 일정을 시작했다.

◇ 취재 난망!

귀향한 화가를 취재하러 간 사람들이 맥없는 얼굴로 회관으로 돌아왔다. 새방골 산장에 여성 3인을 파견해 미인계를 썼지만, 또 거절당했다.

도곡리를 소개하자면 마을 숲 옆에 있는 건물의 외벽에 그려진 벽화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취재가 안 된다니 난감해졌다. 벽화는 어떤 그림이고, 그린 이는 누군지, 어떻게 그리게 되었는지 등 기본 정보는 소개돼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화가가 취재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또 찾아갔더니 없던 데요 하면서 거짓말로 끝낼 수도 없었다. 당사자는 인터뷰를 거절하느라 스트레스겠지만 섭외가 안 돼서 속 타들어 가는 제작진 또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또 하나 난감한 것이 벽화 속에 있는 내 얼굴이었다. 농기계 창고 측면 벽에 그려진 1970년 대 소년들 그림에서 맨 왼쪽 아이가 바로 나인데, 방송에서 “이 사람은 KBS PD고...” 이렇게 소개하기도 멋쩍었다.

그런데, 작은어머니(가일댁)가 취재진의 눈에 띄어 벽화에 대해 인터뷰를 막 시작했다. “저 사람은 우리 조카인 PD고, 옆에는 이웃 친척들이고, 여기는 서울 사는 친정조카, 이 사람도 맹 서울대학교 나왔고...”

이크! 내 얘기는 빼야 되는데... 나중에 편집하면 될 거 같아 굳이 다시 인터뷰를 다시 요청하지는 않았다.<계속>

필자소개
1987년 KBS 프로듀서 직종으로 입사, 기동취재현장, 세계는지금, 추적60분, 일요스페셜, 시청자칼럼 우리사는세상 등을 제작하였으며 재직 중 피디연합회 편집국장, KBS노조 정책실장도 역임. 현재는 <다큐멘터리3일> 프로듀서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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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 2018-09-27 17:59:16
수고많으셨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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