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산책] 오래된 사물이야기-나는 이렇게 읽어주었다
[달팽이 산책] 오래된 사물이야기-나는 이렇게 읽어주었다
  • 현은순 북경한국국제학교병설유치원 원감
  • 승인 2018.09.27 0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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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위즈너의 시간상자-1

바다를 지긋이 바라보다보면 이내 수면 아래 세계가 궁금해진다. 데이빗 위즈너의 『시간상자』는 바다에서 직접 보고 알 수 있는 사실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다 속 상상의 세계를 카메라와 사진이라는 기제를 통해 잘 구성된 책이다. 오래된 사물에는 사연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이 그림책에 나오는 오래된 사물이야기를 이렇게 읽어주었다.

데이빗 위즈너의 시간상자[사진 출처=베틀북]
데이빗 위즈너의 시간상자[사진 출처=베틀북]

“야아, 빨간 바다다!” 
“아니야, 빨간 고래야!” 
“눈이 이상해! 속에 뭐가 있어.”
“로봇물고기 같아!” “엄청 큰 물고기야!”

빨간색 표지그림부터 아이들을 흥분시킨다. 조금은 알 것 같으나 전부는 보이지 않는 그림은 아이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딱 좋다. 

“뭐가 보이니?” 

표지를 넘기면 이 그림책의 전체적인 배경을 알리는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다음 장 왼쪽에는 여전히 모래가 가득하고, 오른쪽에는 해변 따라 나란히 늘어선 집들이 보인다. 파도가 하얗게 부서진 해안선 언저리에 주인공이 있다. 

“주인공이 무엇을 하고 있니?”

주인공의 이름을 피터라고 하자. 한 손엔 삽을 든 피터가 허리를 굽혀 뭔가를 잡고 있다. 그 옆에는 양동이가 놓여 있다. 한발 치 떨어진 곳에서 물새 세 마리가 그를 지켜보고 있다. 아마 이곳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질 모양이다.

바닷가에서는 크고 작은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고 밀려가기를 반복한다. 파도는 수많은 물고기들이 토해낸 하얀 포말들만 잔뜩 풀어놓고 휑하니 달아나버리기만 하는 걸까? 수평선 끝에서부터 쉬지 않고 달려오는 파도를 보라. 푸른색 치마를 속살이 보이도록 감아올리며 그 속에 온갖 물건들을 담고 허겁지겁 달려와 하얀 숨을 토해낼 때마다 진기한 것들을 내려놓는다. 때문에 바닷가는 날마다 ‘별별 박물관’이 된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여기에 전시된 물건들을 구경해보자.

“어떤 물건들이 보이니?”

조개껍질, 나침반, 열쇠, 오래된 동전, 너트와 볼트, 코르크 마개와 약병, 몇 백 년이 흘러도 발아한다는 연밥과 씨앗, 컴퍼스, 동물모형, 콩 껍질, 오래된 열매와 씨, 동물 뼈, 병마개, 불가사리, 귀고리, 나무판자, 새 깃털 등 온갖 물건들이 보인다. 

앞의 그림에서 피터는 바닷가 모래밭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떠올릴 수 있는 아이라면 이 물건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어른들의 눈에는 그저 잡동사니들에 불과한 물건들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러한 물건들을 보면 마치 소중한 보물처럼 주워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잠깐 동안 오래된 바다 유물들을 전시한 박물관에 왔다고 생각하며 사물 뒤에 감추어진 이야기를 상상해본다. 

“어디서 온 것들일까?” “어떻게 해서 이곳까지 왔을까?” “어느 나라 물건일까?”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누가 사용했던 것일까?”

왜 바다에 빠지게 되었을까? 어떤 슬픈 사연이 있었을까? 오래된 사물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사물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즐겁다. 

이제 사건 안으로 들어가 보자. 돋보기로 집게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피터의 눈이 클로즈업된다. 반대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깜짝 놀라 긴장하며 앞발을 들고 집게의 모습이 피터의 눈과 오버랩 된다. 마치 한 사물을 천천히 회전시키며 하나하나 잘 보여주는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돋보기가 마법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탐색거리가 궁금해진 피터는 모래사장 위를 유유히 기어가던 꽃게 한 마리를 발견한다. 피터는 꽃게 높이만큼 고개를 모래바닥에 납작 엎드려 꽃게와 수평으로 시선을 맞춘다. 꽃게 발을 톡톡 건드리자 꽃게는 딱딱하게 집게로 공격태세를 한다. 오른쪽 장면에서는 금방이라도 피터를 한 입에 삼킬 기세를 한 파도가 하얀 고래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오고 있다. 아이들은 “어! 어 어, 덮칠 것 같아!”하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제 막 어떤 사건이 벌어질 것 같은 긴장감은 어느새 전개될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으로 바뀐다.  

예상대로 파도는 피터를 꼬꾸라지게 만들었다. 피터는 한참을 넋 놓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발 앞에 수중카메라가 한 대 놓여있다. 파도와 함께 떠밀려 온 것임에 틀림이 없다. 카메라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따개비는 오래된 시간의 흐름을 말해주는 흔적이다. 따개비가 자랄 만큼의 시간은 얼마나 될까? 

누구의 것일까? 누가 사용했었을까? 어떤 설렘으로 사진을 찍었을까? 그 안에 어떤 사진이 들어 있을까? 그런데 왜 바다에 빠지게 되었을까?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피터는 수중카메라의 모든 것이 몹시 궁금해진다. 수중카메라는 마법처럼 그 궁금한 것들을 사진을 통해 하나씩 보여준다. 그림책을 다 읽고 난 후 아이들과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카메라는 실제 있는 것만 찍는 걸까? 아니면 상상한 것도 찍을 수 있는 걸까?”
“실제 있는 것만 찍는 거예요?”
“그러면 이 그림책 속의 사진들은 모든 실제로 바다 속 모습들일까?”
“네” “그러면, 문어가 책을 읽는 모습도 진짜로 있을까?” “네”
“아니요. 이건 동화니까 사진 찍는 것도 상상해서 한 거니까 모두 상상한 거예요.”

어린 아이들은 사진이라는 기법 때문에 사실과 상상의 세계를 혼란스러워 한다. 이러한 혼란은 『시간상자』를 보고 또 보고 싶게 만든다. 그림책을 펼쳐 볼 때마다 사실인 듯 사실이 아닌 듯한 세계는 아이들의 화제꺼리가 된다. 아이들의 온갖 추측과 상상은 끝이 없기 때문에 책을 볼 때마다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재미에 빠져든다. 이것은 글 없는 그림책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이기도 하다.

이 그림책에서 수중카메라는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게 만드는 매개체이다. 아이들은 수중카메라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상상하며 읽는다. 수중카메라와 같이 오래된 사물에는 한두 가지 사연이 묻어 있기 마련이다. 이 그림책을 읽을 때는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혹은 발견한 오래된 사물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사물이 살아 꿈틀거릴 것이다. 

필자소개
북경한국국제학교병설유치원 원감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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