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민족의 뿌리를 찾아간 몽골 바이칼호수 여행
[기고] 한민족의 뿌리를 찾아간 몽골 바이칼호수 여행
  • 김대곤 오방리더십 원장
  • 승인 2018.10.01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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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은 나이가 들면서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부모님의 부모로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그 꼭지점에 누가 있을까?”로 확산됐다. 오늘날 우리가 농촌에서 도시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삶의 터전을 옮기듯, 우리의 조상들도 현재의 대한민국이라는 땅이 아니라 어디에서 인가 시작하여 수십, 수천만 번을 옮겨온 것이 아닐까?

그 출발점은 어디일까? 나는 역사학자도 인류학자도 아니지만 “한민족의 뿌리는 어디일까? 코리아라는 국호는 어디서 유래했을까?”라는 궁금증으로 확대됐다, 나아가 우리는 왜 백의민족이라고 했을까? 고구려는 왜 삼족오를 국가상징으로 삼았을까? 단군과 삼신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등등의 호기심이내 머릿속에서 끝없이 자라나고 있다. 우선 한민족의 출발점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오방CSO클럽회원들과 함께 올 여름에 몽골을 거쳐 바이칼 호수 속 알혼섬을 다녀왔다. 우리 한민족은 시베리아의 끝 부분에 있는 바이칼 호수 일대에서 발원하여 몽골과 중국 동북삼성지역을 거쳐 한반도에 정착했다는 주장이 민족단체나 재야사학자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방이 아닌 해양의 남방 기원설도 있다. 나의 성 김해 김씨의 시조이야기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반도에 있던 가야국의 김수로왕은 바다에서 건너온 인도의 아유타 왕국의 공주인 허황후를 부인으로 맞이하였다고 한다.실제로 인도의 럭나우 근처에는 아유디아라는 고대 왕국이 지금도 남아있고 김해시는 수년 전부터 이 왕국과 교류를 하고 있다. 필자도 지난해 조상의 뿌리를 찾아보고 싶어 가락국 종친회와 김해시장일행등과 함께 이곳을 방문한 바 있다. 또한 신라시대의 처용무에서 나오는 검붉은색 얼굴의 탈모양은 아랍인(오늘날의 요르단이라는 설이 있다)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례에서 보듯 일찍이 우리 민족은 다문화가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해양에서 온 남방계는 약 30%이고 나머지 70%는 대륙에서 온 북방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바이칼호수일대를 한민족의 시원지로 보아도 무난할 듯하다. 게다가 최근엔 고고학자와 유전학자등이 다음과 같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그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어 이제는 정설로 굳어지는 추세다.

첫째는 외형적으로 나타난 모습에서 추론할 수 있다. 한민족의 외형적 특징은 얼굴에 두터운 지방층이 있고, 검은색의 직모와 광대뼈의 돌출, 흑갈색의 눈동자와 유아기 엉덩이와 등에 몽고반점이라는 녹색의 점이 있다. 이 몽고반점은 한국과 몽골 일본을 비롯해 중국 양쯔강 이북지역, 만주, 시베리아와 인도 북부의 부탄과 티베트와 중앙아시아 지역, 중앙유럽의 헝가리, 터키와 아메리카 대륙의 이누이트와 아메리카 토착민에게도 공통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몽골리안의 특징이다.

바이칼호수 속 알혼섬, 우리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 부리야트족 가이드

둘째는 바이칼 호수일대에 사는 부리야트족과 한민족이 유전학적으로 봤을 때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다. 알란 윌스라는 유전인류학자는 서로 다른 유전자가 융합하여 생명체를 만들 때 유전체를 서로 바꿔가며 진화한다는 세포내 공생이론(endosymbiosis)을 바탕으로, DNA의 핵 안의 미트콘드리아가 진화의 중심이 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를 토대로 당뇨병의 원인기전을 미트콘드리아를 통해 밝혀보려던 서울대의과대학의 이홍규박사가 한민족의 기원을 밝혀주었다. 이홍규 박사는 세계 각 지역 사람들의 세포를 분석한 결과 몽골반점이 있는 지역 사람들의 미트콘드리아가 같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주었다. 특히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 근처에 있는 브리야트족의 미트콘드리아는 한민족과 몽골인들은 대부분 일치하며 일본인도 상당수 일치한다는 것을 밝혔다.

또한 모스크바 유전학연구소의 자카로브박사도한민족과 바이칼호수 주변의 부리야트족이 같은 혈통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 일행을 안내해준 가이드도 브리야트 족으로서 외양은 우리와 똑 같았고 자신들도 한민족과 같은 형제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셋째 고고학적으로 청동기와 즐문토기의 분포도가 한민족의 시원이 바이칼호수 지역과 맞닿아 있음을 밝혀주고 있다. 신석기와 청동기 유적지 분포도를 보면 시베리아와 인도 북부의 부탄과 티베트와 중앙아시아 지역, 중앙유럽의 헝가리, 일대에 청동기 유적이 나오지만 중국 양쯔강 이남에는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양쯔강 유역에서 고도의 신석기 문화가 있었지만 그것이 청동기·철기로 발전하지 못하고 북방의 수혈을 받아서 황하문명이 형성됐다.

신석기, 청동기 유적지 분포도.[금성출판사 <사회과부도> 역사 부분]

그동안 중국 정부는 일본과 함께 각종 수단을 동원해서 양쯔강 유역에서 청동기 유적들을 찾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오늘날의 중국 동북3성지역에 해당하는 은나라 땅에 청동기 유적이 보이는데 이는 그 당시 은나라는 중국 한족이 아니라 동이족 이었고, 동이족은 한민족과 같은 몽골로이드였다. 그 이유는 <사기>에 “은나라는 오랑캐의 나라(殷曰夷)”라고 하여 중국을 대표하는 한족(漢族)이 아니라 동쪽의 오랑캐(東夷)라고 낮춰 불렀던 것으로 보면 잘 알 수 있다. 한편 즐문토기의 분포도도 청동기 분포도와 거의 일치하며 이것이 한민족의 이동경로로 추정되는 것이다 .

이상 몇 가지를 종합해보면 지금으로부터 1만5천년 전 지구에 빙하기가 끝날 무렵 몽골리언은 바이칼호 지역에 오랜 기간 갇혀 살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지구는 동토의 빙하가 되어 이동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바이칼호에는 따뜻하였고 물이 적었으며 대부분 초원이었다. 초원의 오아시스 같은 장소였다. 당시 호수의 수면은 훨씬 낮고 물고기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다 빙하기가 끝나면서 바이칼 호수는 얼음물이 녹아 점차 거대 호수로 바뀌기 시작하자 몽골리안들은 초원을 따라 아래쪽으로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바이칼을 출발한 무리들중의 일부가 바로 우리 한민족이라고 보는 것이다. 특히 부리야트족 중에는 코리부리야트족이 있는데 이 코리라는 말이 나중에 케레이 족으로 불리워진다. 추측컨데 겨레라는 말의 어원이 케레이족에서 오지 않았을까 일부 학자들에 의해 주장되고 있다. 코리아의 어원도 코리, 고구려, 고려등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몽골말에케레이 라는 말은 까마귀를 뜻하므로 세발달린 검은 까마귀라는 삼족오의 유래로 보는 측면도 있다. 또한 부리야트족의 아바이케세르신화는 우리의 단군신화와 매우 유사하며 아바이라는 말 역시 아버지라는 우리말과 다르지 않아 부리야트족과 한민족의 동질성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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