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物語] 중국의 영락제와 조선 여인
[유주열의 동북아物語] 중국의 영락제와 조선 여인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 승인 2018.10.0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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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정난의 공신 한확

조선왕조 7대 왕인 세조의 며느리는 수빈 한씨로 둘째 아들이 9대 왕인 성종으로 즉위함으로써 인수대비가 된다. 그녀의 친정아버지인 한확(韓確 1400-1456)은 한명회, 신숙주와 함께 계유정난(癸酉靖難 1453.10.10)을 성공시켜 세조가 왕이 되는 데 일등 공을 세운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 책봉사가 되어 명나라 황제의 ‘왕위 찬탈’이라는 오해를 풀어주어 책봉 고명을 받아냈다. 소임을 끝내고 귀국 도중 중국에서 병을 얻어 객사하였다.

서울에서 양평을 가다 보면 남양주시 조안면(鳥安面)이 나온다. 새도 쉬어간다는 조안면은 언제부터인가 찐빵으로 유명해졌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팔당호가 들어선 조안면의 동편이 조안리이고 서편이 능내리이다. 능내리에 가면 온통 다산 정약용 이야기뿐이다. 다산의 생가며 그와 관련된 기념관이 있다. 

다산은 서울 관직과 지방의 유배생활을 빼면 이곳에서 태어나서 저술활동을 하며 노년을 보냈다. 다산이 이곳에서 죽기 전에 자녀들에게 당부로 이른 말이 “한양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한양에서 버티고 살아라”라고 했다고 한다. 사실인지 몰라도 요즈음 뛰는 서울 집값이 연상되어 씁쓸하다. 

‘능내리’라고 하면 왕릉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사실은 왕릉이 아니고 한확의 묘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확이 어렵사리 책봉 고명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과로로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는 황당한 소식이 조선 조정에 전해왔다. 민망한 세조는 급히 사람을 보내 시신을 국내로 운구하여 왕실에서 준비해둔 왕릉을 급한 대로 한학의 묘소로 하사하였다. 세조로서는 조금이라도 마음의 빚을 갚고 싶었는지 모른다. 

영락제의 처남이 된 한확

한확의 아버지 한영정은 딸이 많았다. 그런데 딸들의 미모가 모두 특출하여 멀리 명나라 조정에까지 소문이 나 있었다. 당시 명나라는 미모가 빼어 난 조선의 처녀들을 공녀라는 이름으로 베이징으로 데리고 갔다. 한확의 누님도 공녀로 베이징에 끌려갔다가 영락제의 마음에 들어 후궁으로 간택되어 여비(麗妃)가 된다.

누님을 호종하여 베이징에 간 한확은 여비가 된 누님 덕에 뜻밖으로 명의 벼슬(홍로사 소경)을 받고 귀국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한확은 세종의 즉위와 함께 세종의 책봉 고명을 받아왔다. ‘장자승계의 원칙’을 깨고 장남이 아닌 3남으로 왕이 된 세종은 책봉 고명을 받아 온 한확의 은혜를 잊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한확이 잘못이 있어도 “나는 그를 벌할 수 없는 처지”라고 솔직히 털어 놓은 적도 있다. 1420년(세종2년) 흉작으로 명에 바칠 공물의 부담이 컸다. 한확은 다시 명에 가서 공물면제를 요청하여 허락을 받고 돌아왔다. 한확은 조명(朝明)외교의 두툼한 파이프로 골치 아픈 외교문제를 해결하였다. 

영락제와 함께 잠들고 있는 여비 

명의 3대 황제인 영락제(朱棣)는 명 태조 홍무제(朱元璋)의 4남으로 베이징을 중심으로 하는 연왕(燕王)에 봉해 졌다. 조카 건문제가 자신을 제거한다는 소문을 듣고 이에 반발 정난의 변을 일으켜 수도 난징을 함락시키고 스스로 황제가 된 사람이다. 그는 수도를 베이징으로 천도하고 대외정벌 사업에 몰두, 친히 대군을 이끌고 수차례에 걸쳐 원나라의 잔존세력인 몽골족과 싸웠다.

1424년 영락제가 북정(北征)중 병을 얻어 진중에서 세상을 떠났다. 자금성에서 영락제의 사망소식을 들은 여비한씨는 영락제의 죽음을 슬퍼하다 못해 목메어 자살하였다. 베이징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50km 떨어진 창평구 천수산 기슭에 명십삼릉(明十三陵)이 있다. 완벽한 보존 상태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명십삼릉의 으뜸인 장릉(長陵)에는 여비한씨가 영락제와 함께 묻혀 있다고 한다. 

영락제의 손자인 선덕제가 여비한씨의 절개를 높이 사서 그녀의 여동생이며 한확의 나이 어린 누이를 후궁으로 맞이한다. 선덕제는 영락제가 총애하는 손자로 아버지 홍희제가 영락제의 눈 밖에 났는데도 황태자의 지위를 지킨 것도 손자를 총애해서라고 한다. 선덕제는 할아버지 영락제의 원정에 항상 동행하였고 영락제를 임종한 유일한 혈육이었다.

베이징 향산의 공신부인 한씨의 묘소

공신부인(恭愼夫人)으로 추증된 한씨는 한확 보다 10세 아래 동생으로 17세 때 공녀로 베이징에 와서 후궁이 되었다. 선덕제 사후에도 자금성을 떠나지 않고 74세까지 장수하여 명과 조선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였다. 그녀의 무덤은 황실 별궁이 있던 베이징의 향산(香山)에 있다. 지금은 공원이 된 향산은 금(金)나라 때에는 황실의 수렵장이었다가 명대에는 많은 전각을 지어 황실의 별궁으로 사용하였다. 한확이 대명 외교 채널이 된 것도 황제의 후궁이 된 그의 누님과 누이동생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한씨는 생전에 아름다우면서 공경근신(恭敬謹愼) 즉 온화 유순하고 말을 삼가하여 자금성 내의 여사(女師)로 존경 받았다고 한다. 향산에 있는 비문에는 그녀의 행적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생호동국 진호중원(生乎東國 進乎中原)
(본래 조선에서 태어나서 중국으로 출가하여)
공사천부 매옥향산(恭事天府 埋玉香山)
(매사 공손하게 조정에 봉사하고 향산에 묻혔으니
부인지증 미시지반(夫人之贈 美諡之頒)
(부인으로 추증되고 아름다운 시호가 내려졌다)

필자소개
한중투자교역협회(KOITAC) 자문대사, 한일협력위원회(KJCC) 사무총장. 전 한국외교협회(KCFR) 이사, 전 한국무역협회(KITA) 자문위원, 전 주나고야총영사, 전 주베이징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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