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평면도자기 개척한 이호영 도예명인, “중국 샤먼 전시회에 출품해요”
[인터뷰] 평면도자기 개척한 이호영 도예명인, “중국 샤먼 전시회에 출품해요”
  • 최형원 객원기자 
  • 승인 2018.10.08 12: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외조부 선친으로 이어진 도예장인··· 200m 도자기 벽화 작품도 만들어

이호영 도자기 명인은 독특한 분야가 있다. 평면도자기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분야다. 그의 집은 외조부와 선친 때부터 도자기를 해왔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많은 도자기 명장 명인들이 그의 집을 거쳐 갔다. 그러다 보니 그 역시 어릴 때부터 흙과 유약, 불과 함께 성장해왔다. 평면도자기에 도전해 성공한 것도 도자기에 이골이 났기 때문이다. 중국 샤먼 전시회에 출품하는 그를 인터뷰했다. 
   
-샤먼 전시회에 어떤 작품들을 선보이나? 

“샤먼 전시회는 세계 최대 규모의 불교 박람회로, 10월 18일~22일까지 5일간 중국 복건성 샤먼에서 열린다. 정식명칭은 불교차박람회로 샤먼 시정부가 주최한다.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은 상감청자, 박지문기법으로 조각한 청자 평면도자기, 철유약과 진사유약을 섞어 만든 평면도자기다. 평면도자기는 6점이 전시된다. 2점은 길이 200cm 이상, 2점은 길이 170cm, 또 2점은 150cm 길이다. 너비는 80cm 내외다. 그리고 막사발, 항아리, 작은 크기의 도자기그림 등이 전시된다.”

-평면도자기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30년 동안 고생을 했다. 소성과정을 거치면서 크기가 20% 정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소성이란 굽는 과정이다. 도자기를 만들 때는 조각하여 굽는 1차소성, 유약을 바르고 굽는 2차소성을 거친다. 그런데 굽는 과정에서 도자기 반죽은 균일하게 줄어들지 않고 모양이 뒤틀리고 흙이 갈라진다. 특히 크기가 크면 이런 현상은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50cm 이상이 되면 처음과 같은 형태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처음에는 작은 도자기판조차 어려웠다. 이제는 200cm 이상 크기의 작품도 가능하다. 어떤 흙을 줘도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 수 있다.”  

평면도자기를 크게 만든다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다. 특히 흙을 완전히 자화시켜서 굽는 것은 지난한 일이라고 소개한다. 김복한, 유광렬 같은 대한민국 도자기 원로들이 “봐도 믿기지 않는다” “어떻게 상감청자가 이런 크기의 평면으로 가능한가” 등의 극찬을 하는 이유다. 

-언제부터 평면도자기 작업에 뛰어들었나?

“30년 전이다. 어려서부터 도자기 작업장을 놀이터 삼아 자랐다. 1985년 군 제대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도자기를 시작했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남들이 안하는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평면도자기 제작을 시작하여 지금의 200cm 이상의 크기까지 만들게 되었다. 백자를 평면화시키고, 청자, 분청을 평면화시켰다. 추상적인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2백미터에 달하는 벽화로도 만들었다. 생활 속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다탁이나 건축자재로도 시도했다.”

-선친에 대해 소개해 달라.

“1940년 이전부터 외할아버지와 세 분이 공유하는 칠기가마를 가지고 계셨다. 시간이 되는대로 돌아가며 도자기를 굽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가마의 주인 한 사람이 그만두면서 아버지가 가마를 인수하셨고, 마지막에는 외할아버지의 지분까지 인수하여 해방 전에 가마의 소유주가 되셨다. 6.25사변이 나면서 당시 서울에 거주하시던 아버지는 처가집인 가마터의 자리로 피난을 와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6.25사변 이전에는 문경, 장호원, 현재 광주도요자리에도 칠기가마가 있었는데 6.25사변이 끝나고 나니 칠기가마가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당시 그릇의 수요가 많아 돈도 많이 버셨다. 아버지는 왜정시대부터 6.25동란을 거치면서도 계속 가마터를 지켰다. 1993년 타계했다. 근현대도자기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셨다. 함자는 ‘이현승’이다.” 

-선친의 가마에서 작업한 도예가들을 소개하면?

“1960년대 초에 도자기를 만들던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 집을 거쳐갔다. 우리나라에 도자기 가마가 다 없어졌기 때문이다. 해강 유근영, 이준희, 이정하, 신상호, 홍재표 등 원로 도예가들이 그때 거쳐 가셨던 분들이다. 해강 유근영씨는 상감청자 재현으로 유명하다. 현재 외할아버지의 자손들은 지금도 부산 김해 경남에서 도자기 작업을 하고 계신다. 70년대 아버지에게 가마를 물려받은 이대영은 작은 형으로 현재 이천도자기조합 이사장이다.” 

-칠기가마란 무엇인가? 

“고려시대에는 칠기와 청자가 가마는 서로 같지만 흙은 서로 다른 것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6.25사변이 끝나고 흙을 수비하던 시설이 부족하고 힘들기 때문에, 1960년대에 와서는 칠기와 청자를 같은 흙, 같은 온도로 굽게 되었다. 옛날에는 도자기에 사용되는 흙이 수비하는데만 1년 6개월의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1960년데 이전에는 까만 칠기 도자기를 집집마다 사용했다. 찬장에 있던 까만 항아리, 막걸리 마실 때 사용하던 까만 그릇이 칠기다. 이 칠기는 중국에서는 검은 그릇, 흑자라고 하여 아직도 작품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상감청자가 재현되고 편리한 그릇들이 들어오면서 칠기에 대한 수요가 사라졌다. 도자기를 굽는 입장에서도 수익이 더 되는 것을 굽다보니 칠기도 굽지 않게 됐다.“

이호영 명인은 칠기가마의 중요성은 옹기가마와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칠기가마는 계단식이고 만드는 방법도 흙을 수비하고 청자와 같이 초벌, 재벌을 통해 2번 굽는다. 하지만 옹기는 통가마(단가마)이고 흙을 수비하지 않고 한 번만 굽기 때문에 일이 상대적으로 쉽고 전국에 가마도 많은데 칠기는 기술도 있어야하고 공정도 힘들어 가마가 적었다는 것이다. 칠기가마가 곧 청자가마라는 것이다. 
   

-평창올림픽 초청작가로 전시회를 가졌는데....

“평창동계올림픽에 초청받아 진부역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평면도자기 4점, 별밤도자기 20여점, 막사발 20여점을 전시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많은 손님들이 다녀갔고, 관심을 보였다. 특히 일본에서 온 전 10선의원은 한 작품 옆에서 떠나려 하지 않을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

이호영 명인은 도자기 가문에서 자란 사람답게 도자기에 대한 동물적인 감각과 창의적인 호기심이 살아있다. 그런 그의 호기심과 창의적인 능력이 결합된 것이 평면도자기이다. 이호영 명인은 불의 시간과 분위기를 조절해서 만든 “별빛 도자기와 막사발, 그리고 평면도자기의 우수한 점과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