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코리안] ‘살아있는 훈장’에서 ‘깊고 긴 골짜기’까지
[비바 코리안] ‘살아있는 훈장’에서 ‘깊고 긴 골짜기’까지
  • 정길화(방송인, 본지 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18.10.09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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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에서도 6.25 전사자 유해 발굴이 필요하다

10월 8일 상주에서는 제10회 화령 지구 전투 전승 기념식과 기념관 개관식이 열렸다고 한다. 화령 지구(일명 화령장)는 6·25 당시 한국군(17연대)에 의한 첫 승전의 현장으로, 북한군 15사단 2개 연대가 격파된 곳이다. 개전 초기에 후퇴하던 국군이 1950년 7월 17일-21일 사이에 이곳 상곡리, 동관리 일대에서 매복 중 기습작전을 펼쳐 북한군에게 심대한 피해를 입혔다.

화령장 전투는 전술적으로는 행군 및 주둔 간 경계의 중요성, 기습공격의 효과, 근거리 전투시 사격 통제의 중요성 등을 극명하게 알려 준다. 이 전투의 승리로 국군은 낙동강 전선의 교두보를 구축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고, 이로써 차후 인천상륙작전으로 이어지는 공세 이전이 가능했다. 전사(戰史)적으로 6.25 개전 초기의 전투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군이 전승을 기념해온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지자체가 68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2015년부터 3년이 걸려 기념관을 건립해 준공식까지 하는 것은 영문을 잘 모르겠다. 더욱이 화령장 전투는 1950년 7월에 있었는데 그동안 주로 9월에 거행하던 전승 기념식을 올해는 기념관 준공과 함께 10월에 했다고 하니 그 의도와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상주시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기념관은 부지면적 26,439㎡, 기념관 2,777.54㎡, 내부전시관 1,295.55㎡, 참호, 광장 등으로 거작(巨作)”이라고 한다. ‘거작 기념관’이라는 말에 황당하다. 6.13 선거로 당선되어 취임한 지자체장들이 10월 8일 전후로 취임 100일을 맞이한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가?

왜 상주 화령장 전투 얘기인고 하니, 필자가 1988년에 6.25 특집 <살아있는 훈장>을 제작했는데 이 때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안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 이가 6.25 당시에 이곳에서 전투를 수행했던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의 전공(戰功)으로 훈장을 받았는데, 그런 연유로 제작과정에서 화령장 전투의 내력을 좀더 상세히 알게 되었다.

이 전투는 <살아있는 훈장>의 프로그램에서 서사의 주요한 모티브로 등장했다. 특히 소설 <훈장과 굴레>의 작가로서 리포터로 출연한 이원규 선생은 나중에 화령 지구 전투와 참전용사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다룬 <깊고 긴 골짜기>를 발표했다.

화령 지구 전투에서 당시 국군은 기습 공격으로 북한군 2개 연대 병력 중 천 여명을 사살하고 무기와 장비 등 여섯 트럭을 노획하는 등 다대한 전과를 올렸다, 그 와중에도 부대원 전원이 1계급 특진을 했다고 한다. 아군의 피해는 경미하였고 북한군의 시체는 시산혈하를 이루는 가운데 현지에서 임시 매장 등으로 야전 처리를 해야만 했다. 이같은 내용은 <살아있는 훈장>에서 주민의 증언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아무리 보아도 상주시의 화령지구 전승 기념관 준공식은 반지빠르다. 때는 바야흐로 남북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합의 사항 중의 하나로 철의 삼각지대인 철원 화살머리(Arrow Head) 고지에서 유해를 공동으로 발굴한다는 시점이다. 이곳이 공동발굴의 첫번째 장소로 선정된 것은 1953년 치러진 고지전에서 양측의 피해가 가장 컸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얼마 전 10월 1일에는 6.25 당시 미군이 큰 피해를 입었던 함경남도 장진호와 평안북도 운산 지역에서 발굴된 국군 유해 64구가 하와이를 거쳐 조국에 귀환했다.

이런 맥락을 고려할 때 상주시는 구태의연한 냉전적 발상의 전승기념관이 아니라, 1950년 7월 당시 화령 지구 일대에 매장된 유해의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발굴하는 것이 더 절실하고 필요한 일로 보인다. 현지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곳에는 다수의 북한군 유해가 산재해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거액의 예산으로 ‘거작(巨作)’인 기념관을 만들고 성대한(?) 준공식을 한다는 소식에 지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상주시청 홈페이지에는 “이제 이런 거 그만 하면 좋겠습니다. (...) 이제 전쟁 얘기는 이야기 책속으로, 박물관속으로 보내버리고 미래지향적으로 살면 좋겠습니다....”라는 주민 정 아무개씨의 의견이 올라 있다.

그런가 하면 “(이전에 군 출신 인사가 국회의원을 할 때 화령장 전투 기념식 한다면서) 상주 상공에 비행기 쇼하고 시민운동장 전쟁놀이로 난리가 (났었고)... 아무개 시장은 행사 때 전장 유공자 어르신들은 트럭 짐칸에 태우고 시장은 1호차에 올라타서 자기가 주인공인양...”라는 조 아무개씨의 의견이 올라 있는 등등(개별적인 펙트체크는 필요하다), 지금까지 화령지구 전투 기념식이 어떻게 주민들에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글들을 살필 수 있다.

화령장 전투의 전술(戰術)적, 전사(戰史)적 의의를 기리는 것은 유비무환을 담당하는 군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자체가 거액의 예산을 들여 전승기념관을 만들고, 단체장의 취임 100일에 맞추어 준공식과 기념식을 하는 것 등은 참으로 어중되어 보인다. 보기에 따라서는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지진(遲進)이다.

오히려 이 시점에는 화령 지구 전투에서 산화한 양측의 젊은 넋을 달랠 수 있는 유해 발굴 사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장진호에서, 화살머리에서, 파로호에서 그리고 화령장 계곡에서 그런 신원(伸冤)과 화해의 움직임이 일어나야 한다. 이제 실천의 장에서 담대한 발상의 전환과 행동이 요청된다. 그것은 비단 상주시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닐 것이다.

필자소개
방송인, 언론학 박사, MBC 중남미지사장 겸 특파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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