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159] 삼국사기(三國史記)
[아! 대한민국-159] 삼국사기(三國史記)
  • 김정남 본지 고문
  • 승인 2018.10.20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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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2018년에 들어 경주 옥산서원소장 보물제525호와 개인소장 보물 제723호인 『삼국사기』가 모두 국보로 승격 지정되었다. 두 종은 모두 조선조 태조·중종 때 만든 목판과 고려시대의 원판을 혼합해 인쇄한 것으로, 당시의 학술동향과 목판인쇄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제525호는 1573년(선조6년)에, 제723호는 1512년에 인쇄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두 『삼국사기』는 모두 9책으로 구성된 완본(完本)이다. 같은 시대에 쓰여진 역사서로는 일연스님이 쓴 『삼국유사』(1281년 편찬)가 있다.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1075~1151)은 경주에서 태어나 스무 살에 과거에 급제한 후 한림원에서 일하며 학자로서 명성이 높았다. 1123년 고려에 다녀간 송나라 사신 서긍은 그의 저서 『고려도경』에서 김부식을 “학식이 넓고 깊어 글을 잘 짓고, 역사를 잘 알아 학자들의 믿음을 받고 있다”고 평했다. 김부식은 이자겸이 권세를 누리고 있을 때 주로 학문에만 열중, ‘예종실록’ 편찬에 참여하면서 순조로운 승진을 거듭했다.

1126년 이자겸의 난 때 개경의 궁궐이 불타는 등 피해를 입자 승려 묘청을 중심으로 서경(평양)으로 나라의 도읍지를 옮길 것을 주장하면서 묘청의 난(1135년)이 일어나자 김부식은 개경세력을 거느리고 나가 반란군을 진압했고 그 공을 인정받아 공신(功臣)으로 책봉되었다. 인종의 절대적 신임을 얻어 최고관직인 문하시중에까지 올랐다.

묘청의 난을 진압하는데 함께 공을 세운 윤언이와의 정치투쟁으로 물러난 김부식을 위로하기 위해 인종은 『삼국사기』를 편찬토록 지시하면서 8명의 관료를 보내 돕도록 했다. 김부식은 5년 동안 열심히 편찬작업에 매달려 1145년, 인종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삼국사기』를 완성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완성한 뒤 임금에게 올린 표(表)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학자와 관리들이 유교경전인 오경(五經)과 제자백가의 서적과 중국 진·한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아 자세히 설명하는 자가 많으나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는 도리어 막막하여 그 처음과 끝도 알지 못하니 한탄스럽습니다.”

인종이 김부식을 시켜 『삼국사기』를 쓰게 한 것은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을 겪은 고려가 어서 안정된 국가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고려 이전에 있었던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 역사를 뒤돌아보고 왕과 신하의 자세를 바로잡아 흔들리던 왕실의 권위를 높이려 함이었다. 김부식 역시 한 왕조의 흥망성쇠는 왕과 신하가 정치를 잘하고 못함에 있음을 역사를 통해서 밝히고자 한 것이다.

『삼국사기』가 일연 혼자 쓴 야사(野史)라면 『삼국사기』는 김부식 등 당대 최고학자들이 쓴 정사(正史)라 할 수 있다. 『삼국사기』는 『삼국유사』와 함께 삼국시대를 연구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최고(最古)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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