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의 우리詩論-10] 김철교의 내가 그리는 그림
[김필영의 우리詩論-10] 김철교의 내가 그리는 그림
  • 김필영(한국현대시인협회 사무총장)
  • 승인 2018.11.03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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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기억에 남는 시가 있다. 하지만 그런 시를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 감동을 주는 시를 찾아내기란 짚단에서 바늘 찾기와 같을 수도 있다. 필자는 2014년 가을부터 감동시를 찾아내는 작업에 들어갔다. 시를 찾아 감상 평론도 썼다. 다음은 그가 찾아낸 주옥같은 한국 현대시와 그의 평론이다. 본지는 해외한인사회의 우리 문학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김필영의 우리시론'이라는 타이틀로 시와 평을 소개한다.<편집자>

내가 그리는 그림

시간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온몸을 휘돌아 나갑니다
빛은 뒤따라 하얀 향기로
빈자리를 헤집고 달려옵니다
널따란 캔버스가 만들어집니다
시간은 가고 빛은 오고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되어가고 있습니다.

투명한 빛으로 만들어진
그림 속 주인공은
액자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바다에서 대지에서‘
조금도 막힘없이 유영하고 있습니다

말로 글로 보여줄 수 없는
그러나 가슴으로만 명징하게 볼 수 있는
단 하나뿐인 나의 그림입니다
어디엔가 붙박이로 걸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빨갛고 노랗고 하얀 장미로 덮인
미로 속으로
조금도 막힘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김철교 시집, 『사랑을 체납한 환쟁이』 시학시인선 069, 62쪽: 내가 그리는 그림>

“生이라는 캔버스에 詩로 그려낸 자화전(自畵傳)”

예술표현을 화가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 회화적 표현으로 간주하여 생각해 볼 때, 작곡가는 오선지에 그림을 그리고, 문학가는 언어의 활자로 원고지에 그림을 그린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생(生)이 하나의 그림이라고 본다면 어떠한가? 한 사람의 생이 한 폭의 그림이이라면 지구상에 그 그림을 그린 화가는 사람 수 만큼 많다고 할 것이다. 김철교 시인이 생(生)의 캔버스에 시로 그려낸 그림은 어떠한 그림일까, 감상해본다.

화가가 한 폭의 그림을 그리려면 캔버스가 필요하듯, 첫 연은 그 캔버스가 준비되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화자가 그림을 그리려 한다고 캔버스가 저절로 펼쳐지는 것이 아니다. 시인은 이제 자신의 한 평생을 자화전(自畵傳)으로 그려내고자 캔버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시간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온몸을 휘돌아 나갑니다”라고 표현하므로 한 생을 그려내는 캔버스의 공간이 ‘시간’이라는 과정을 통해 주어짐을 알려준다. 시간이라는 과정의 캔버스에 회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은 무엇인가? 이어지는 행간에서 “빛은 뒤따라 하얀 향기로 빈자리를 헤집고 달려옵니다”라고 하므로 생의 화폭에 스스로 그려내는 그림의 필수요소가 ‘빛’과 ‘향기’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빛’의 의미는 회화의 색조를 뜻하는 것이라기보다 생명력을 가진 존재로서의 불의한 삶이 아닌 바른 삶의 활동으로 이루어진 생으로서의 ‘빛’을 묘사한 것이다. 따라서 바르게 살아가는 생의 가치를 그려내고자 하는 뜻에서 불의한 삶의 ‘악취’의 반어적 표현인 ‘향기’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2연은 화자가 생의 화폭에 그려내고자 했던 자신의 존재, 즉 생의 정신세계와 행동양식을 가늠하게 한다. “투명한 빛으로 만들어진 그림 속 주인공은 액자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표현에서 생의 화폭을 그리는 화자가 ‘투명한 빛으로 만들어 진 존재’라는 상징적 표현은, 화자가 시공을 초월하여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려는 다각적인 시도와 부단한 노력을 추구해온 자유로운 영혼임을 알게 한다.

더욱이 그 빛은 “하늘에서 바다에서 대지에서 조금도 막힘없이 유영하고 있습니다”라는 묘사는 화자가 육적인 삶보다 영적인 삶을 더 우선순위에 두고 “조금도 막힘없이 유영하”듯 멈추지 않고 끝없이 그림의 완성단계인 존재의 그날까지 그 붓을 놓지 않을 것임을 예시하고 있다.

이제 3연에서 ‘생의 캔버스에 詩로 그려낸 자화전(自畵傳)’이 어떤 그림인지 설명하려 한다. 허나 그 그림을 정확히 설명하기엔 쉽지 않다. 그 그림은 “말로 글로 보여줄 수 없는”, “가슴으로만 명징하게 볼 수 있는 단 하나뿐인 나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가슴으로만 명징하게 볼 수 있는 단 하나뿐인 그림”이라는 행간에서 화자가 얼마나 진솔하게 생의 그림을 그려왔는지, 얼마나 치열하게 그 그림에 몰입하여 왔는지 가늠하게 한다.

그렇기에 그 그림은 분명 ‘하나 뿐’이라고, 결코 모조품이 있을 수 없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의 캔버스 마지막 행간에 이르러도 그 그림은 완성되지 않았음을 알게 한다. 시의 완성도를 위해 퇴고하듯, 화자는 아직 화폭이 완성되지 않았음을, 더 멋지게 그려가고 있음을 겸허히 밝히고 있다. 생의 자화전(自畵傳)은 “어디엔가 붙박이로 걸려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도 색색의 “장미로 덮인 미로 속으로 조금도 막힘없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 약력]
* 한국현대시인협회 사무총장(2017~8)
* 한국시문학문인회 차기회장(2019~2020)
* 시집 & 평론집: ‘나를 다리다’, ‘응’, ‘詩로 빚은 우리 한식’, ‘그대 가슴에 흐르는 시’
* SUN IL FCS(푸드서비스 디자인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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