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산책] 괴물 따위는 하나도 무섭지 않아!
[달팽이 산책] 괴물 따위는 하나도 무섭지 않아!
  • 현은순 북경한국국제학교병설유치원 원감
  • 승인 2018.11.08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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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하게 뽀족뾰족한 이빨을 보세요.

으르렁대는 무서운 소리가 들리나요?

눈알은 어떤가요? 무섭게 뒤룩거리고 있지는 않나요?

길고 날카로운 손톱과 발톱

머리는 몇 개가 달려있나요? 열 개, 스무 개, 아니면 셀 수 없을 만큼인가요?

얼마나 무서울 지 상상해 보세요.

말만 들어도 왠지 괴물들의 모습은 끔찍할 것만 같다. 괴물이야기는 아이들에게는 무섭고 두려우면서도 늘 흥미로운 이야기꺼리이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궁금하고 알고 싶을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아이들 그림책에는 괴물이 자주 등장한다. 어린 아이들이 읽는 괴물 그림책에는 그리스 신화 이야기처럼 사람들을 해치는 무서운 괴물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놀이친구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괴물은 어둠 속 침대 밑에 혹은 혼내며 잔소리하는 어른들 모습에서 그리고 혼자 있는 외로움이나 심심함 때문에 상상놀이 속에서 만들어지곤 한다. 아이들이 겉모습은 무섭게 생겼지만 괴물 따위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엘 스튜어트(2012)의 『덱스터와 배고픈 괴물』은 혼자 놀고 있던 아이가 커다랗고 파란 괴물을 만나 놀이하는 이야기를 그린 그림책이다. 첫 장부터 놀이를 좋아하는 주인공 텍스터가 허둥지둥 신발을 신고 점퍼를 입으며 급히 서둘러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얼굴표정은 담담한데 점퍼 소매 끝에 달린 몬스터가 묘하게 웃는 얼굴로 보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밖에 나온 덱스터는 고개를 기우뚱한 채로 왼쪽 발을 앞뒤로 쭉 쭉 밀며 신나게 씽씽이를 탄다. 그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같이 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재미있게 놀고 있는 덱스터 앞에 갑자기 커다랗고 푸른 괴물이 나타난다. “아, 커다란 파란 괴물이다.” 덱스터는 너무 놀라 땅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만다. 해가 머리 위에서 지켜보고 있는 대낮에 괴물을 만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 그런데 파란 괴물은 정말 엉뚱하다. “난 커다래, 그리고 심심해. 넌, 참 작고 맛있어 보인다. 아무래도 널 잡아먹어야겠다“ 라고 겁을 준다. 심심하다며 잡아먹겠다니 이게 무슨 황당한 말인가?

“괴물은 왜 심심하다고 했을까?” 아이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일곱 살 나나는 “사람들이 다 무서워해서 안 놀아주니까”라고 말한다. 또래 친구 시우는 “괴물이빨이 날카로워서 너무 무서우니까 사람들이 괴물을 보자마자 자기 집으로 들어가 숨어버려서 길에는 아무도 없어 심심해요.” 때로는 속사포처럼 대답하는 아이들의 말은 생각보다 빠르다고 느껴진다.

아무래도 혼자 노는 건 심심하다. 같은 놀이도 친구랑 함께하면 더욱 신나는 법이다. 텍스터와 커다란 파란 괴물은 씽씽이를 탄다. 커다란 파란 괴물에 비해 씽씽이는 너무 작아 보이긴 하나 괴물의 가늘고 기다란 발은 씽씽이와 너무 잘 어울린다. 괴물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달렸더니 피곤해서 하품이 다 나온다. 둘은 커다란 나무 밑에 누워 한참동안 쉰다. 이로써 텍스터는 심심해서 잡아먹겠다는 괴물을 첫 번째로 달래는데 성공했다.

심심한 것을 참을 수 없는 파란 괴물은 놀이가 심심해지려고 할 때마다 “아무래도 널 잡아먹어야 할 것 같아”라고 한다. 이 때 “잡아먹겠다”는 말은 “더 재미있고 신나는 새로운 놀이를 하자”라는 말로 들린다. 텍스터는 주변에 알록달록한 꽃들이 만발하게 피어 있는 꽃들을 보고 곧바로 두 번째 놀이를 제안한다. 바로 꽃 배달 사업이다. 둘은 여러 가지 예쁜 꽃들을 이리저리 배달하며 한동안 신나게 놀이에 빠진다. 사업이 아주 성공적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두 번째 놀이도 참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사업이 술술 풀리고 많은 돈을 모았지만 이 사업도 싫증이 난다. 뭐든지 익숙해진 다음에는 흥미를 잃기 마련이다. 괴물이 지루한 놀이를 참을 수 없는 건 영락없이 아이들과 닮았다.

괴물은 다시 덱스터를 잡아먹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아마도 괴물은 좀 더 모험적인 놀이를 하고 싶은 모양이다. 덱스터는 세 번째 요구도 무사히 해결할 수 있을까? 모험적인 놀이로는 뭐니 뭐니 해도 사립탐정놀이가 제일이다. 탐정이 된 텍스터와 파란 괴물은 황금 눈덩이 도난 사건, 희귀 원숭이 실종 사건, 고무장감 비행사건, 유령 자전거 사건, 소시지 강도 사건을 해결하고, 아주 교활하고 악명 높은 사기꾼 교수도 붙잡았다가 아깝게 놓치고 만다. 위험하고 수상쩍고 그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할 괴상한 사건일수록 탐정놀이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넘친다. 역시 아이들은 못 말리는 놀이 천재들이다.

한참동안 놀이에 열중하다 갑자기 파란 괴물이 배고프다고 말한다. 텍스터는 친구를 위해 열 계단이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할 만큼 엄청나게 크고 많은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주고 둘은 배부르게 먹는다. 이렇게 네 번째 요구도 채워지나 했더니 커다란 파란 괴물은 “그래도 아직 조금 모자라는데...”라고 한다. 그러나 놀이를 하며 에너지를 다 쏟아버린 텍스터는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번엔 괴물이 자기에게 좋은 생각이 있다며 아주 달짝지근한 막대 사탕을 사서 준다. 커다란 괴물은 덱스터를 목마 태운 채 동산위에서 달과 별을 바라보며 이제는 더 이상 배고프지도 심심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이젠 친구가 생겼으니까.

아이들 세상에서는 자기를 방해하는 누군가에게 “네가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어”라는 말도, “심심해, 같이 놀자”, “재미없어. 새로운 놀이하자”라는 말도 다 ‘널 잡아먹어 버릴 거야’는 말 하나로 통하는 것 같다. 놀이의 귀신인 아이들은 심심한 것을 참을 수 없다. 심심한 호모루덴스인 아이들은 즉시 괴물을 창조해낸 후 그들을 결코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세상에 괴물들이 가득한 것은 아이들이 상상놀이를 마구 마구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만큼 놀이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 호모루덴스다운 상상력을 가진 이들은 없을 것이다. 괴물도 인간의 범주에 서슴없이 끌어들여 마치 자기 친구처럼 생각하는 아이들은 요한 호이징하(Johan Huizinga, 1872~1945)가 말하는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는 놀이’를 할 줄 아는 진정한 호모루덴스들이 틀림없다. 그들은 자기들과 비슷한 종족들을 첫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더듬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북경한국국제학교병설유치원 원감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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